틀을 깨면 보일걸? 내 안의 수많은 나!

입력 2024. 06. 25   16:48
업데이트 2024. 06. 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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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다른 그녀’ 1차원적 웃음에 숨긴 의미

8년째 공시생의 엉뚱한 소원 성취
딴사람 되길 바랐더니 50대로…
낮엔 50대 부캐-밤엔 20대 본캐로
판타지로 포장된 코믹 범죄스릴러
츤데레 검사·평범한(?) 연쇄살인마
곱씹을수록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맛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스틸컷. 사진=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스틸컷. 사진=JTBC

 


8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이미진(정은지)은 20대의 마지막 시험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좌절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 길고양이를 구하려고 뛰어든 우물 깊은 곳에서 문득 이런 생각에 빠져든다. ‘이대로 딴사람이 되면 좋겠다’. 간절한 그녀의 소원이 결국 이뤄진 것일까. 아침에 눈을 뜬 이미진은 자신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정은)이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식간에 노화라도 진행된 것인지 이미진은 50대로 변해 버렸다. 지난 15일 첫선을 보인 JTBC 토·일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판타지한 초반부 스토리다. 

당사자인 이미진도 놀랐지만, 주변 반응은 더욱 격렬하다. 자신의 집 소파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신원미상의 50대 여성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이미진의 엄마 임청(정영주)과 아빠 이학찬(정석용), 이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1996년생이라고 주장하는 50대 이미진(이정은)이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밤에는 본래의 20대 외모로 돌아온다는 사실 정도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그렇게 시작된 50대 부캐 ‘임순’과 20대 본캐 ‘이미진’의 낮과 밤 공존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내용을 보면 타이틀이 상당히 직관적이다.

자고 일어났는데 나이가 변한다는 스토리는 의외로 꾸준히 존재했다. 20년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2004)에는 ‘소원의 가루’를 통해 13세 생일 다음 날 30세로 깨어난 제나(제니퍼 가너)가 등장한다. 이보다 16년 전 세상에 나온 영화 ‘빅’(1988)에는 놀이공원 아케이드 머신에 ‘키가 크고 싶다’는 소원을 빌어 하루 만에 13세에서 30세로 초고속 성장한 조슈아(톰 행크스)가 있다. 한국엔 칠순의 할머니(나문희)가 신비한 사진관에서 영정 사진을 찍고 스무 살 청춘(심은경)으로 회춘한 ‘수상한 그녀’(2014), 자고 일어나면 나이와 성별이 랜덤하게 바뀌는 ‘뷰티 인사이드’(2015) 등이 있었다. ‘나이가 변한다’는 것 외에는 작품마다 설정과 상황적 디테일이 제각각이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 포스터. 사진=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포스터. 사진=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포스터. 사진=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포스터. 사진=JTBC



모든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것은 변화 이후의 삶이다. 단지 나이와 외모가 변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빠르게 재편된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주인공 이미진도 예외는 아니다. 취직이 평생의 목표였던 그녀는 곧장 ‘시니어 인턴 채용’에 (최연소이자 수석으로) 합격하고 검찰청에 입성한다. 자아와 능력치는 동일한데, 외면의 변화가 빚어낸 일이다. 20대 이미진에게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된 게 50대 부캐 임순에게는 특기이자 강점이 되기도 했다. 좌우 시력 2.0, 임플란트 없는 건강한 치아,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 초고속 타자, 간단한 영어와 중국어 가능, 현란한 최신 애플리케이션 활용 등. 그러한 과정에서 만능인 그녀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은 상황적 웃음을 유발한다.

인간은 누군가를 속단하는 데 특화된 동물이다. 특히 나이와 외모는 즉각적이다. 주어진 몇 가지 단순 정보를 입력하면 고정된 틀에 넣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선입견’에 한껏 물든 탓이다. 100% 동일한 자아와 능력치를 지녔음에도 20대 취업준비생 이미진과 50대 시니어 인턴 임순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놀라울 만큼 상이한 이유다. ‘사회적 편견’은 타성에 젖어 다면적 인간 본연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은 다면적이다. 인간의 다면성은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여러 성격과 감정, 행동패턴, 가치관 등을 포괄한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반응을 보일 수 있고, 때로는 사회적 역할이나 특정한 역할 수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면을 쓰기도 한다. 20대와 50대를 오가는 이미진, 공적으로는 냉정하지만 사적으로는 자상한 계지웅(최진혁) 검사, 팬들 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지만 실제론 불안감과 공허함에 괴로워하는 인기 아이돌 고원(백서후), 잔혹한 살인을 반복적으로 저지르지만 일상에선 이를 숨기고 평범한 사람인 척 생활하는 사이코패스 등의 면면은 사실상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시다. 낮과 밤, 겉과 속, 외면과 내면, 공(公)과 사(私) 등은 고정된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다면적 특성을 은유적으로 반영한다.




인간의 다면성을 무시한 채 보이는 모습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행위는 마치 책의 겉표지만 보고 그 속의 내용을 모두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면 인간의 다면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폭넓고 풍성한 인간 관계를 형성하고 공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서로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과 같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판타지로 잘 포장된 로맨틱 코미디이자 범죄스릴러 작품이다. 낮시간대 50대로 변하다는 독특한 설정과 거기서 야기되는 웃음, 잔혹한 연쇄살인마를 붙잡기 위해 연대하는 주인공들의 서사는 누구라도 작품에 쉽게 몰입해 즐길 수 있도록 이끈다. 하지만 그 안을 한 꺼풀 더 벗기고 들어가 보면 인간의 편견, 본질, 정체성, 다면성 등이 복잡하게 얽혀 똬리를 틀고 있다. 웃음 속에 숨겨진 이러한 인간성 본연에 관한 고찰은 말하자면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히든 피스(Hidden piece)다. 즉시 반응이 가능한 단순한 맛도 좋지만, 곱씹을수록 오묘한 맛이 입안에 맴돌아 다양한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맛도 매력 있다. 이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처럼 말이다.

※7월부터 ‘박현민의 연구소’ 게재일이 매주 수요일에서 화요일로 변경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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