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하기

입력 2024. 06. 21   15:26
업데이트 2024. 06. 2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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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양 번역가
노지양 번역가


9년 만에 돌아온 속편 ‘인사이드 아웃2’에서는 주인공 라일리가 사춘기를 맞이하고 새로운 감정 캐릭터들인 불안, 부럽, 당황, 따분이가 등장한다. 졸지에 본부에서 쫓겨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가 맹렬하게 활약하는 불안을 막고 원래의 단순하게 좋은 사람인 라일리로 돌리려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들의 충돌과 갈등은 인간의 모든 복잡다단한 감정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예상이 가능하지만 감동적인 결론으로 이어지고, 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나온다. “We love all of our girl. Every messy, beautiful piece of her(우리는 라일리의 모든 면을 사랑하지. 그 모든 엉망이고 아름다운 조각들을).”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도 ‘Every messy, beautiful part of her(엉망이고 아름다운 라일리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사실 ‘messy’ 는 ‘지저분한, 엉망진창’이란 뜻으로 보통은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단어다. 바로 다음에 ‘아름다운(beautiful)’이 나오려면 ‘엉망이지만 아름다운’처럼 중간에 ‘그러나(but)’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는 쉼표로만 연결됐고 영화 주제를 생각해도 ‘그리고’로 해석해야 맞다.

여기서 잠깐 멈춰 생각해 볼 것. 부정적인 단어와 긍정적인 단어를 언제나 ‘그러나, 하지만’ 같은 대립의 접속사로 이어야 할까.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 캐서린 슐츠는 2022년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본질적인 앤드니스(fundamental AND-ness)’에 대해 이야기한다. ‘앤드니스(And-ness)’ 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그리고 하기 혹은 그리고함’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슐츠는 우리가 상실도 큰 상실과 작은 상실로 구분하고, 인생도 늘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별하려 하며, 항상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한다고 한다. “나는 외롭고 고립돼 있어. 하지만 운이 좋지. 내 주변 사람 중 팬데믹으로 죽은 사람은 없으니까.” “일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 하지만 적어도 직업이 있으니 괜찮지.” 이럴 때의 ‘하지만’이란 단어는 그 앞에 나온 모든 감정을 부정한다. 우리의 정신건강에 해롭다고 판단하고 어떤 감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척한다. 슐츠는 우리 인간은 그보다 복잡하고 모호한 존재이고 감정을 깔끔하게 분류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한 가지 이상의 상황을 동시에 마주하고 한 가지 이상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타인을 동정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지고 행운을 느끼면서 좌절하고 감사하면서 슬퍼한다. 이 모든 것이 말하는 건 우리 인생의 본질적인 ‘그리고함(AND-ness)’이다.

우리는 수많은 모순적인 것과 아무 관련 없는 것을 동시에 경험하며 ‘그리고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이것이 우리 존재를 이루는 기본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광과 불행으로 가득하고 우리 동료 인간들은 똑똑하고 훌륭하고 이기적이고 사악하다. 우리 자신은 어떤가. 복잡한 동기와 감정을 지닌 혼합물이 아닌가.”

사실 우리 인생을 돌아보거나 하루를 묘사하면서 ‘그러나’ 대신 ‘그리고’를 넣으면 굉장히 산뜻해진다. 엉뚱한 전공을 공부했고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 상사에게 혼났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인생은 더하기, 빼기가 아닌 모든 것의 총합이 되고 색색의 실로 이뤄진 엉망이고 아름다운 문양의 태피스트리(실로 짠 그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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