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감사 전하기 위해 70년 세월 역사 퍼즐 맞춘다

입력 2024. 06. 17   17:23
업데이트 2024. 06. 1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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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동행 르포 

옛 기록 판독…지역주민 만나 끈질긴 탐문

신원 특정 어려운 수훈자들 찾아 훈장 수여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의 하루는 ‘70년 전 기록’과 함께한다. 이들의 임무는 생사가 오가는 처절한 전쟁터에서 본보기가 될 만큼 공을 세운 무공훈장 수훈자들을 찾는 것. 훈장의 무게와 희생정신의 숭고함을 알기에 70여 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역사의 퍼즐을 꿰맞추는 이들과 함께해봤다.
글=조수연/사진=한재호 기자 

 

6·25전쟁 당시 국군8사단에 배치돼 인제지구전투에서 활약한 무공훈장 수훈 대상자 고 안정희 옹의 자력기록표 너머로 고인의 아들 안재홍 씨가 부친의 수훈 배경을 경청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국군8사단에 배치돼 인제지구전투에서 활약한 무공훈장 수훈 대상자 고 안정희 옹의 자력기록표 너머로 고인의 아들 안재홍 씨가 부친의 수훈 배경을 경청하고 있다.

 


‘촉’ 좋은 형사처럼 작은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아

지난 12일 아침 경기도 파주시 운정1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늘 그렇듯 북적이는 민원인 사이로 정복을 차려입은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묵직한 서류철을 옆에 놓은 이들은 센터 공무원의 지원을 받아가며 모니터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관공서 안 군인. 이질적인 풍경의 주인공은 이철성(대령)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장, 총괄기획장교 허정태 중령과 탐문2팀 주명하(군무사무관) 팀장, 김만식(상사) 조사관이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분들이 95세, 100세의 고령이시기 때문에 지치지 말고 뛰어야죠. 하루빨리 모두 찾아드려야 합니다.”

조사관 중 유일한 ‘민간인’인 주 팀장이 말했다. 간호장교 출신 군무사무관인 주 팀장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다.

이들이 이날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것은 2022년 탐문활동에서 신원을 확인했던 수훈 대상자 고(故) 안정희 옹의 유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얼마 전 각고의 노력 끝에 장남의 주소지를 찾은 조사단은 관할 주민센터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조사단원들의 주 근무처는 사무실이 아닌 현장이다. 때로는 고고학자처럼, 때로는 형사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훈자를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실 컴퓨터보다 주민센터 컴퓨터가 더 익숙하다는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이제 행정기록과 신원이 일치하는 수훈자에게는 훈장이 모두 수여된 시점.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만 남아 있어 업무 난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진다고 한다.

매일 귀를 쫑긋 세우고 살아가다 보니 이들은 ‘촉’ 좋은 형사가 다 됐다. 작은 단서로 수훈자를 찾는 과정이 마치 형사의 수사 같기 때문. ‘안정희’ 옹의 이름도 병적 자료에 ‘이정히’로 적혀 있어 신원확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헷갈리는 글자가 많아 옛 기록을 일일이 판독해 군번부터 대상자를 찾아야 한다. 휘갈겨 쓴 글자가 난무하는 고문서 한 장을 달랑 들고 유족과 지역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는 것이 이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고 안정희 옹에게 수훈된 화랑무공훈장.
고 안정희 옹에게 수훈된 화랑무공훈장.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발간 안내 책자.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발간 안내 책자.

 


고 안정희 옹 장남 자택에서 단출하지만 정중한 수여식

“선친의 참전 사실만 알고 훈장 수훈 여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늦게나마 무공훈장을 받게 돼 큰 영광입니다.”

이날 자택에서 무공훈장 수여식을 한 안옹의 장남인 안재홍 씨의 말투는 덤덤했지만 표정은 감격으로 가득해 보였다.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단정히 정돈된 거실이 바로 행사장이 됐다. 안옹은 육군소위로 임관했고, 국군8사단에 배치돼 인제지구 전투에서 활약했다. 이 단장이 안옹의 전적을 낭독한 뒤 안씨에게 훈장을 전하고 경례했다. 주 팀장이 뒤늦게 훈장을 수여하게 된 배경과 안내사항을 꼼꼼히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안씨는 “이천호국원에 모신 아버지께 수훈 사실을 알려드리고 비석에 각인해드릴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웃음 지었다. 유가족의 미소 덕분일까? 함께한 조사단의 얼굴에도 그동안의 노고를 씻는 웃음꽃이 번졌다.

 

수훈자 관할 지자체와 협조를 통해 탐문 활동을 하고 있다.
수훈자 관할 지자체와 협조를 통해 탐문 활동을 하고 있다.

 

수훈자 탐문에 나선 조사관들.
수훈자 탐문에 나선 조사관들.



많은 거절에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활동 

조사단원들은 잦은 출장에서 오는 피로보다 심적 스트레스가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유가족에겐 보이스피싱 범죄로 오해받기 일쑤고, 필연적으로 거치는 관공서 협조 과정이 쉽지 않아서다.

처음 조사단의 연락을 받았을 당시 반신반의했던 안씨도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좋은 일 하시는데 오해를 해서 죄송합니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관공서 인트라넷으로만 조회할 수 있는 제적정보시스템을 협조받는 일도 어렵다. 수개월 전부터 공문을 발송하고 읍·면·동사무소를 방문하더라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허 중령은 “자신이 업무 보는 자리를 넘겨주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시는 제적정보시스템 담당자들이 많다”며 “번호표를 뽑고 줄 선 민원인들이 있는 와중에 협조해야 하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라고 털어놨다.

이런 이유로 조사단원의 필수 조건은 ‘도전 정신’이 됐다. 여러 차례 거절을 당해도 굴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처받을 시간도 아깝다”는 이들은 딱딱해진 굳은살을 딛고 오늘도 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
- 이철성 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장(대령)

“생존자 대부분 80~90세 이상 고령 여유 부릴 틈 없어요”


지난 12월 조사단장에 취임한 이 단장은 호탕하고 수더분한 인상으로 수훈자들에게 훈장을 하나하나 직접 전달하고 있다. 이제 전역까지 2년 남았다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생기가 가득했다. 이 단장은 2014년 중령으로 인사사령부 인사처리과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는 조사단이 창설되기 전이라 상훈 업무 담당자가 2명밖에 없었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1년에 한두 번씩은 현장에 따라 나가는 식이었죠. 저도 경상북도 봉화군의 한 면사무소에 가서 고문서에 적힌 한자를 거의 그려가며 탐문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화랑지구전투에서 전사한 분의 신원을 찾았을 때 ‘이게 내가 군복 입고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구나’ 생각했습니다.”


대령으로 진급한 그는 2018년 과장으로 같은 사무실에 돌아왔다. 기막힌 운명이었다. 인력 부족 등 애로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터라 지금의 조사단을 있게 한 ‘6·25전쟁 무공훈장 수여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보훈지원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2명이 (수훈자를) 찾고 있는 거예요. 국회에 대면보고 하러 갔을 때 우연히 좋은 기회로 우리 사정을 설명하고 3개월 만에 공청회를 하고 입법을 하게 됐습니다.”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은 한시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2027년 종료된다. 또 생존자 대부분이 80~90세 이상 고령이기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저도 한 달에 10여 회 훈장 수여 등을 위해 출장 나갑니다. 살아계신 분이 점점 더 줄고 있으니 하루라도 더 빨리 한 분이라도 더 명예롭게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마음이 급합니다. 사무실에 있을 시간이 없죠.”


이 단장은 국민에게 관심과 응원을 호소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군 생활의 마무리를 조사단에서 호국영웅들을 찾아뵙는 일로 봉사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굉장한 영광입니다. 저와 조사단이 열심히 뛸 테니 국민들께서 ‘우리 군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호국영웅을 기억하고 무공훈장을 찾아드리는 일을 끝까지 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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