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갈아 끼웠다, 성대를 갈아 넣었다

입력 2024. 06. 17   16:23
업데이트 2024. 06. 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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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뮤·클 이야기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주·조연 6명의 배우 모두 1인2역 맡아
1막의 선한 인물들, 2막선 악인으로 돌변
지킬과 하이드처럼 또 하나의 나로 겹쳐
10곡 가까운 고난도 넘버…객석 환호·박수
규현·박은태·전수미·이지혜 열연 볼 만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제공=EMK뮤지컬컴퍼니

 


요즘엔 세계무대 어디에 내놔도 목이 꼿꼿해지는 수준작들이 즐비할 만큼 K뮤지컬의 창작 실력이 높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좀 달랐다. 우리 손으로 만든 순국산 대극장용 뮤지컬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던 시절. 오늘 소개할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시기, 2014년에 태어난 ‘괴물’ 같은 작품이었다. 이후 2015, 2018, 2021년에 공연되었고, 현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오연(다섯 번째 시즌)이자 10주년 기념의 막을 매일 밤 올리고 있다.

메리 셸리의 고딕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원작이지만 줄거리만 따라갈 뿐이다. 창작 뮤지컬의 명장 왕용범이 연출과 대본을 맡았는데 상당히 신선하고 파격적인 손질을 가했다. 여기에 또 한 명의 명장 이성준의 음악이 한 몸처럼 붙으면서 ‘프랑켄슈타인’은 K뮤지컬의 어깨를 한껏 치켜올려 주는 명작으로 완성됐다.

누군가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두 가지만큼은 자신 있게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1막과 2막의 캐릭터 변신. 배우 한두 명이 1인 2역을 맡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선수’가 부족한 소극장 작품에서는 매우 빈번한 시도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은 주연과 조연 6명에게 모두 1인 2역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의 ‘투 톱’ 중 한 명인 ‘빅터’는 2막에서 격투장의 남자 주인으로 잔인한 데다 변태 끼마저 느껴지는 ‘자크’로 나온다. 초연 때 보면서는 빅터와 자크가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의 캐릭터 점프였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제공=EMK뮤지컬컴퍼니



1막의 선한 인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2막에서 악인으로 돌변하게 된다. 빅터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인물이자 사랑하고 돌보는 누나 ‘엘렌’은 2막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돈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최악의 악녀 ‘에바’로 대변신(가장 충격적이다)한다. 빅터의 사촌이자 약혼자인 ‘줄리아’는 자유를 얻게 해준다는 꾐에 넘어가 자신을 구해준 괴물을 배신하는 격투장의 하녀 ‘까뜨린느’로 나오며, 빅터의 충직한 집사 ‘룽게’는 격투장의 문지기이자 자크의 심복 ‘이고르’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1인 2역의 캐릭터들이 사하라 사막과 남극만큼이나 다르면서도 어딘가 ‘유사 종’의 냄새를 풍긴다는 점이다. ‘지킬 앤드 하이드’의 느낌이랄지. 너무나 극단적인 두 인물이지만 그 속에는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나’가 보이는 듯하다. 나아가 캐스팅할 때 2막의 캐릭터 쪽에 좀 더 무게를 두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드는 것이다. 특히 ‘에바’와 ‘까뜨린느’가 그렇다.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특징은 넘버다. 그야말로 배우들의 성대를 갈아 넣는 넘버들이 줄줄이 있다. 한 작품에 두세 곡쯤 나올 만한 고난도의 넘버들, 조금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고음을 크고 길게 끌며 극적으로 노래를 마쳐 객석의 환호와 박수를 끌어내는 넘버들이 ‘프랑켄슈타인’에는 10곡쯤 나오는 느낌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뮤지컬 넘버 하이라이트 모음을 보는 듯했을 정도였다.

관극한 날의 ‘빅터’는 규현, ‘앙리(괴물)’는 박은태. 박은태는 초연 때부터 ‘괴물’을 맡은(팬들 사이에서는 은괴로 불린다) 이 캐릭터 연기의 장인이다. 규현 ‘빅터’는 꽤 놀랐다. 규현과 박은태는 캐릭터에 진심인 배우와 배우의 연기적 대립이 만들어내는 시퍼런 불꽃의 아름다움이 어떠한 것인지 실감케 했다. 규현의 ‘빅터’가 1막의 지배자였다면, 2막의 지배자는 박은태의 ‘괴물’이었다. 두 마리의 거대한 고래 사이에서 객석의 관중들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이들의 ‘거대한 충돌’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전수미의 ‘에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전수미=센 캐릭터’의 등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충분히 사악하고 섹시하지만, 이런 캐릭터 배우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버액션이 없어서 좋다. ‘줄리아’와 ‘까뜨린느’를 연기한 이지혜에게선 여전히 스승 옥주현의 느낌(물론 좋은 의미에서)이 난다. 2막에서 부르는 까뜨린느의 ‘산다는 거’는 대단한 절창으로, 전성기 시절의 옥주현을 떠올리게 했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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