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후배 찬스로 ‘범고래 물벼락’ 추억…전우애가 최고

입력 2024. 06. 16   15:08
업데이트 2024. 06. 1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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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2002 해군순항훈련 -미국 로스앤젤레스

계미년 첫날 산페드로항에
사관생도·승조원 외박 허락돼
할리우드·유니버설 스튜디오 누벼
한국이 선물한 ‘우정의 종각’도 방문
부사관 군 후배 덕분에 씨월드까지
웅장한 범고래·아기자기 돌고래쇼
성공한 중산층이 된 후배 집구경도
군 친목단체 다수 교민사회 인상적

샌디에이고 씨월드의 범고래 공연.
샌디에이고 씨월드의 범고래 공연.


디즈니랜드와 코리아타운, 세계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가 있는 곳. 계미년(2003년) 새해가 시작된 1월 1일 오후 3시 ‘2002 해군순항훈련함대’는 우리에게 친숙한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 산페드로(San Pedro)항에 입항했다.

새해를 시작하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200명이 넘는 교민과 현지 주요 인사들이 환영식에 참석해 순항훈련함대의 LA 방문을 반갑게 맞이했다. LA가 치안이 잘 유지되고, 우리에게도 친근한 곳이라서 그런지 항해 중 처음으로 사관생도와 승조원들에게 공식 외박이 허락됐다. 물론 친척이나 친구 등 지인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였지만.

교민들이 마련해준 환영 만찬을 즐기고, 다음 날부터 사관생도와 장병들은 LA 명소를 방문했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할리우드(Hollywood) 대로에 있는‘명예의 거리(Walk of Fame)’였다. 영화배우, TV 탤런트, 뮤지션 등 전설적 스타 2000여 명의 이름이 별 모양 브론즈로 보도 위를 장식한 거리다. 저마다 관심을 갖고 있던 스타들의 흔적을 찾느라 모든 관광객이 아래를 보고 걷는 것은 또 하나의 흥미 있는 광경이었다.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있는 유명 인사들의 사인.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있는 유명 인사들의 사인.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기증한 우정의 종각.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기증한 우정의 종각.

 


당연히 우리도 동참했다. 도널드 덕(Donald Duck), 내털리 우드(Natalie Wood), 잭 니컬슨(Jack Nicholson), 덴절 워싱턴(Denzel Washington), 리처드 기어(Richard Gere) 등 스타들의 이름과 사인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선물한 커다란 종이 있는 ‘우정의 종각(Korean Bell of Friendship)’, 세계적인 명품을 파는 로데오 거리, 부자들만의 동네 베벌리힐스(Beverly Hills), 한때 박찬호가 활약했던 다저스타디움(Dodger Stadium)도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는 명소다.

그렇지만 할리우드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곳은 누가 뭐라 해도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s)다. ‘죠스’ ‘ET’ ‘터미네이터’ ‘백 투 더 퓨처’ 등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영화를 만든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영화 촬영소라기보다 하나의 유원지로 변모한 지 오래였다.

 

친숙한 영화 세트를 견학하고, 특수 촬영 장치의 설명을 듣고, 긴장감 넘치는 스턴트 쇼를 보고, 영화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등 영화의 묘미를 여러 각도에서 즐길 수 있게 해줬다. 이곳에서 만큼은 모두 동심의 세계에서 헤쳐 모였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세트 전경.
유니버설 스튜디오 세트 전경.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스파이더맨.

 

LA 인근의 해변.
LA 인근의 해변.

 


3일 차는 하루 정도 함정에서 쉴 생각이었다. 시내 교통편이 여의찮고, 전날 열심히 돌아다닌 탓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무산됐다. 아주 즐거운 방식으로.

항해 중 친해진 부사관이 “오늘 뭐 할 거냐?”고 물어봤다. “그냥 푹 쉬려 한다”고 답하자 “같이 나가자”고 했다. 군 생활을 함께했던 후배가 자동차를 가지고 왔다는 것. 갑자기 마음이 동한다.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고 기쁜 마음으로 쫓아 나갔다.

후배의 안내로 어제 보지 못했던 몇몇 곳을 둘러본 뒤 샌디에이고의 유명한 해양 테마파크 ‘씨월드’까지 갔다. 그래서 보게 된 범고래와 돌고래 쇼. 범고래 쇼는 덩치에 맞게 호쾌하고 웅장하다면, 돌고래 쇼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공연 도중 범고래에게 물벼락을 맞는 것은 두고두고 기억되는 추억이다. 

후배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뒤편에 작은 야외 수영장이 있는 성공한 중산층의 표본이었다. 그는 전역하고 미국에 와서 조경 관련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고생했지만 이제는 기반을 잡아 여유 있게 생활한다고 한다. 그래도 예전 군 생활 선배가 왔다고 이렇게 마중 나오고 시간을 투자해 안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역시 많고 많은 애(愛) 중에서 최고는 전우애다.

LA에는 우리가 보관한(?) 술도 있다. 현지 클럽을 가볼 기회가 생겼다. 오후 8시30분쯤 들어가 2시간 정도 머물렀다. 새해 연휴라서 그런지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은 우리를 포함해 총 4팀에 불과했다. 텅 빈 무대를 보며 홀짝홀짝 잔을 비우다가 술을 남기고 나왔다. 보관 기간은 얼마나 될까? 그 술은 아직 남아 있으려나.

LA에는 65만 명에 이르는 한국 교민이 거주할 뿐만 아니라 많은 군 출신 친목단체가 활동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들 단체는 LA 기항 중 제반 행사를 주도하고, 적극 지원함으로써 결속을 다졌다. 해군사관학교 동문회와 해군·해병동지회 등은 순항훈련함대 환영 만찬에도 함께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생도·장병들과 대화를 나누며 대한민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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