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만든 ‘KBO 인간극장’

입력 2024. 06. 11   15:58
업데이트 2024. 06. 1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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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스포츠in - 원성준이 소환한 ‘낭만야구’

최강야구 ‘아픈 손가락’에서 영웅의 ‘검지 세리머니’로…
- TV 예능 ‘최강야구’ 출연…활약과 화제몰이
- 함께 뛴 동료들 하나 둘 신인 드래프트 통과
- 대학 기숙사서 발표 중계 시청…혼자만 미지명
- 꽃다발 준비했던 어머니 “이제 집에 가자” 눈물
- 김성근 감독, 추석 연휴에 불러내 혹독한 특훈
- 입단 테스트 거쳐 육성 선수로 키움 입단 성공
- 지난 6일 잠실서 1군 데뷔전…첫 타석부터 안타
- 다음날 데뷔 첫 홈런을 역전 스리런으로 장식

 

원성준. 키움 히어로즈 제공
원성준. 키움 히어로즈 제공



지난 6일 잠실 LG전에 키움 히어로즈의 7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선수는 이 경기가 1군 데뷔전이었다. 전날 밤 콜업 소식을 듣고 이날 자신의 차로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던 그는 1군 첫 경기를 선발로 나가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프로 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이라면 한 번쯤 마음에 품었을 ‘잠실야구장’.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던 야구장에서 키움 유니폼을 입고 LG를 상대하기 위해 몸을 풀었다. 그리고 맞이한 첫 타석. 그는 프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한다. 이날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맹활약을 펼친 그는 다음날인 7일 홈구장인 고척스카이돔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날도 7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6회말 2루타로 출루 후 최주환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으며 프로 데뷔 첫 득점을 기록했다. 그는 4-5로 키움이 끌려가던 7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삼성 김태훈의 시속 145㎞의 직구를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겼다. 프로 데뷔 첫 홈런이 역전 3점 홈런이었고, 이날 경기의 결승 홈런이었다.

홈런을 확인하고 1루를 돌던 그는 검지를 휙휙 돌리며 세리머니를 했다. 자신의 이름인 ‘원’을 의미하는 세리머니였다.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역전 스리런으로 장식하며 팬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안긴 주인공은 키움 히어로즈 원성준이다.

원성준의 데뷔전과 활약에 많은 관심이 쏠린 데에는 그가 JTBC ‘최강야구’에서 활약했던 것이 크다. 거기다 올 시즌을 앞두고 황영묵(한화)·고영우(키움)·정현수(롯데) 등 함께한 ‘최강 몬스터즈’ 선수들이 모두 프로에 지명됐지만, 원성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발표 당일 대학 기숙사에서 현장 중계를 지켜보던 원성준과 혹시나 그가 지명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어머니가 아들 몰래 밖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다가 결과를 알고 나서 아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한 장면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후 원성준은 성균관대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했고, 최강야구에서도 선배들의 격려를 받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속마음은 프로 미지명에 대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키움 히어로즈 원성준이 지난 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뒤 관중의 환호 속에 데뷔 첫 홈런을 의미하는 세리머니를 하며 달리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 제공
키움 히어로즈 원성준이 지난 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뒤 관중의 환호 속에 데뷔 첫 홈런을 의미하는 세리머니를 하며 달리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 제공



어느 날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성근 감독이 원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성준은 잔뜩 긴장했는데, 김 감독은 원성준에게 추석 연휴 나흘 동안 개인 훈련을 하자고 제안했다. 원성준은 김 감독의 제안에 깜짝 놀랐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훈련 장소에 나갔다. 

김 감독은 원성준과 훈련할 장소를 직접 알아봤다. 경기상고 야구부의 배려로 원성준은 4일 내내 펑고와 타격 연습을 반복했다. 김 감독은 최강야구 출신의 신인 드래프트 도전자 중 유일하게 미지명된 원성준의 존재를 몹시 마음 아파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최강야구 경북고와 경기에서 3볼 상황에 체크 스윙을 했다가 아웃된 원성준을 따로 부른 김 감독은 “너 정신이 있는 놈이냐? 야구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라며 호되게 질책했었다. 그때 김 감독은 단순히 원성준의 플레이를 지적했던 게 아니라 프로 선수가 됐을 경우 어떤 마음가짐으로 타석에 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김 감독은 이미 신인 드래프트는 종료됐지만, 입단 테스트를 통해서라도 원성준을 프로에 보내기 위해 특별 훈련을 생각했다. 그래서 추석 연휴에 방송 카메라 없이 둘이서만 땀을 흘리며 선수의 성장을 도왔다.

김 감독의 열정과 원성준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원성준은 키움 히어로즈 입단 테스트를 통해 육성 선수로 프로의 문턱을 넘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 프로 문을 열고 들어섰고, 이때 김성근 감독에게 큰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전한 바 있다.

원성준은 키움 유니폼을 입고 지난해 가을 마무리 캠프에 입성했다.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스프링캠프를 경험했고, 올 시즌을 퓨처스리그에서 시작했다. 퓨처스리그에서 원성준은 펄펄 날아다녔다. 6월 5일 전까지 타율 0.317(60타수 19안타), 3홈런, 12타점, 15볼넷, 4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999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마침내 원성준은 6월 5일 밤 1군 콜업 통보를 받았고, 6일 원정 경기로 치르는 잠실야구장에서 키움에 합류했다. 데뷔전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 다음 날 데뷔 첫 홈런을 역전 스리런으로 장식한 원성준의 활약에 야구팬들이 뜨겁게 응원을 보냈다. 원성준의 야구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잠재돼 있던 ‘낭만 야구’가 다시 요동친 것이다.

원성준은 전화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님한테 받았던 펑고는 몸으로 기억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었다”며 “그 훈련 덕분에 프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강야구 출신의 황영묵, 고영우, 원성준의 활약과 서사는 감동 스토리로 진한 여운을 안기고 있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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