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병영] 차이

입력 2024. 06. 05   15:45
업데이트 2024. 06. 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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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서 시인
한재서 시인



나는 너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 
내가 보지 못한 빛깔들이 
일제히 비산하여 
일찍이 내가 유일한 밝음이라 알았던 
순백의 색을 
눈이 부시도록 물들이기에 
나는 너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조금은 두렵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보고 웃는다 
너의 눈썹, 눈매, 귓가, 콧볼, 입술, 두 뺨, 턱선, 목선까지 
눈을 감고도 너를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더듬었던 만큼 
나는 너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너의 말투, 어조, 습관, 기억, 울음, 웃음, 기쁨, 아픔 전부 다 
나에게 오는 것이 두려웠고 
내가 싫어했던 너의 차이를 
나는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다 


<시 감상>

시적 화자인 ‘나’는 시적 대상이며 청자인 ‘너’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이 “일제히 비산(飛散)하여” 내가 “일찍이” “알았던” 것들조차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이해하려는 적극성보다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그러나 “눈을 감고도 너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알게 됐을 때, 그 두려움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차이”였다고. 그 진실을 깨닫고 진정 “좋아하게 되었다”고.

시인은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자아(自我)의 세계관과 태도를 드러낸다. 화자의 목소리로 내보인 시적 언술은 자아의 태도와 감정 등에 따라 여러 유형의 어조를 띤다. 시인은 ‘너’로 함축된 “차이”를 좋아하게 된 일련의 사연을 관조적(대상을 잔잔히 바라보는 태도)·사색적(깊이 생각해 판단하는 태도)·독백적(혼자 말하는 태도)·교훈적(깨우침을 주는 태도) 어조로 솔직히 고백한다. 자아의 진솔한 태도와 적절한 어조가 녹아 있는 서정시는 강한 호소력으로 멀리 오래간다.

시인은 “차이”가 극복할 수 없어 외면·배척할 대상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을 열어 공감과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차이”는 타자의 세계가 아니라 에고(ego·자아)에 갇힌 나의 세계를 가일층 풍부하게 꾸밀 수 있는 기회의 통로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대면할 즐거운 “차이”. -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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