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행의 8할은 F-4였다…고마웠다, 잘가거라 ‘전우여’

입력 2024. 06. 04   16:20
업데이트 2024. 06. 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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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F-4 팬텀(Phantom)Ⅱ - 이왕근 주콜롬비아 대사가 추억하는 팬텀

F-4 조종사에서 공군참모총장까지 
막강 무장·독특한 조종간…힘들게 익힌 기억 생생
비상대기실만 나가면 비상출격 명령 떨어지던 날들
전술훈련 초급과정 1등·레드플래그 훈련 ‘이젠 추억’
청춘 다 바친 비행기, 든든한 뒷배 없어진 듯 아쉬워

한·콜롬비아, 연대 이어가다
노후화 심한 공군 전력 현대화 시급
국산 FA-50 전투기 도입 지속 조언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능력을 보유한 전투기를 향한 열망은 최초의 3세대 전투기 ‘F-4 팬텀(Phantom)Ⅱ’를 만들어냈다. F-4는 한시대를 정복한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기억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 1969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F-4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열세였던 북한과의 공군력을 역전시켰다. 55년간 조국 영공방어에 빈틈을 내주지 않은 팬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에 팬텀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이를 만나 팬텀을 추억해본다.
김해령 기자/사진=공군 제공

 

주콜롬비아 한국대사관 제공
주콜롬비아 한국대사관 제공

 


이왕근(예비역 공군대장) 주콜롬비아 한국대사는 F-4 조종사 출신으로 36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사실상 ‘마지막 F-4 조종사 출신 총장’이다. 이 대사는 3435시간의 비행시간 중 F-4만 2800시간 탔다. 종류도 F-4D·F-4E 전투기부터 RF-4C 정찰기까지, 국내에 들어온 F-4 계열 항공기를 모두 조종했다. 긴 비행시간만큼이나 추억도 많다. 


- F-4는 어떤 항공기인가? 

F-4는 무궁무진한 매력을 지닌 항공기입니다. 특히 기체 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엄청난 양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멋지죠. 500파운드의 MK-82 일반목적용 폭탄을 무려 24발 탑재할 뿐만 아니라 공대공·공대지·공대함 미사일을 운용합니다. 공군의 거의 모든 임무 수행이 가능한 항공기죠.


- 무장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F-4는 F-16 도입 전까지만 해도 전방에서 쏠 수 있는 레이다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유일한 항공기였습니다. 과거 ‘도그파이트(Dogfight·전투기 간 근접전)’는 상대 항공기 후방의 엔진 열을 추적해 적외선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F-4는 어려운 기동 없이 전방에서 레이다로 적기를 자동추적(Lock on)해 무장을 발사, 명중시킵니다. 적기는 상대를 보지도 못하고, 이유도 모른 채 격추당하는 거죠. 특출난 무장 능력 덕에 ‘F-4가 비무장지대(DMZ) 부근에서 초계비행을 하면 북한 항공기가 급하게 착륙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곤 했죠.


- 조종 특성은 무엇인가?

F-4 조종간은 독특합니다. ‘고받음각(High Angle Of Attack)’에서 조종간을 잘못 쓰면 조종통제불능(Control Loss)상태가 되는데, 이점이 다른 항공기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F-4 교관조종사들은 이 특성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제가 F-4로 전환하던 1985년 당시 대대장이셨던 분도 이를 정확히 배워야 한다고 무섭게 가르쳤습니다. 대대원들은 그분과 같이 비행하지 않는 게 그날의 행복이었을 정도였죠. 지금 회상하면 힘들게 익힌 F-4 조종 특성 덕분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늘 그분을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특성을 인지하지 못해 비행사고로 이어지는 여러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교관이 돼서는 이 특성 만큼은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이왕근 주콜롬비아 한국대사가 공군참모총장 시절 F-4 팬텀 편대를 지휘비행하며 천안 독립기념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이왕근 주콜롬비아 한국대사가 공군참모총장 시절 F-4 팬텀 편대를 지휘비행하며 천안 독립기념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 F-4와 관련된 추억을 공유한다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이왕근 대위, 비상대기실 나가면 비상출격’ 정도로 정할까요?

대구 공군기지 비상대기실에는 10여 명의 조종사가 비상출격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비상대기를 하면 자꾸 비상출격이 명령이 내려왔던 겁니다. 오죽하면 저하고는 비상대기실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조종사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동해 독도 외곽에서 러시아 정찰비행기가 무단으로 우리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내로 진입해 이를 추격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TU-95 폭격기로 기억하는데 우리가 측후방에 위치해 러시아 항공기가 더 진입을 못 하도록 추격하는 상황에서 TU-95 후방에 장착된 기총(Tail Gun) 사수가 우리를 보면서 기총을 우리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아찔했습니다. 여차하면 나도 미사일을 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숨죽이며 상황을 예의주시했습니다. 다행히 추격 비행으로 종료가 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죠.

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 전술훈련 초급과정에서 1등을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비행시간 300시간이 넘어갈 때쯤 다양한 기종의 전투조종사를 소집해 전술 집중훈련을 하는 29전대 ‘전술훈련 초급과정’에 입과해 1등으로 수료한 경험이 있습니다.

전술훈련 초급과정은 조종사로서 긴장도 되고 정말 힘든 과정입니다. 더구나 제가 탔던 F-4D는 당시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 중에서 기동성이 제일 떨어지는 기종이라서 1등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그런데 1등을 해냈습니다. 사실 1등의 비결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카드게임’입니다. F-4는 24시간 내내 비상대기하다 출격명령 시 8분 이내에 이륙해야 합니다. 비상대기실엔 조종사의 긴장감을 완화하고자 당구대와 주사위 놀이 등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또 졸음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몰래 카드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비행전대장님의 순찰 때 저를 포함해 카드게임을 하던 조종사들이 발각된 거죠. 그로 인해 일주일간 근신이라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카드게임하다 발각된 것이 29전대 교관들에게 알려져 교육 기간 내내 숙소에서도 밀착 감시를 받았습니다. 저는 꼼짝없이 비행연구에만 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등의 영예를 안게 됐습니다.

1등을 계기로 1990년 미 공군 레드플래그 훈련에 F-4로서는 마지막으로 참가하게 됐고, 후에 29전대 교관으로 발탁돼 4년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카드게임 사건은 저에게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사례가 된 거죠.

 

 

이왕근 대사가 공군참모총장 시절 F-4 팬텀 전투기에 탑승한 모습.
이왕근 대사가 공군참모총장 시절 F-4 팬텀 전투기에 탑승한 모습.

 


- F-4를 보내는 소감은? 

F-4는 ‘꿈과 희망, 젊은 청춘을 다 받쳤던 비행기’이자 ‘늘 활력을 불어넣어 줬던 항공기’ ‘살아야 할 존재의 이유’ ‘인생의 동반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종사들은 자신의 기종에 대한 애착심이 무척 강합니다. 흔히 ‘조종사는 기종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F-4가 오래됐고, 최근 기종에 비해 여러 능력 면에서 뒤처지지만 제게는 매우 애착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죠. 항상 뒤를 돌아보면 F-4가 저를 지원하고자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든든한 뒷배가 없어진 것 같아 무척 아쉽습니다.


- 주콜롬비아 대사로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콜롬비아는 6·25전쟁 때 남미에서 유일하게 전투병 5062명을 파병해 준 나라입니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고 자유민주주의 연대를 위해 참전해 준 고마운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참전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고자 참전용사와 후손을 위한 보은사업과 군사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위로행사와 장학금 전달, 참전용사의 한국 재방한 행사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콜롬비아에 연 2000만 달러 이상의 공적개발원조(ODA)를 해주고 있습니다. 2014년과 2020년에는 해군 초계함(PCC) 안양함·익산함을 무상으로 양도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1150만 달러를 투입해 설립한 우호재활협력센터(DIVRI)는 장애를 입은 콜롬비아 군·경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돕는 대표적인 ODA 사업이라 할 수 있죠.

콜롬비아군 지휘부는 제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대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무척 호의적입니다. 합동군사령관을 비롯한 각 군 사령관과 면담·만찬을 통해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콜롬비아군의 현대화 사업과 관련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 콜롬비아군 현대화 사업 중 하나가 TA-50, FA-50 도입인가?

지난 이반 두케 정부(~2022년 7월) 말에 국산 FA-50 전투기 도입을 유력하게 검토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현재 구스타보 페트로 정부(2022년 8월~)는 민생이 정책의 우선순위라며 군 현대화에 속도가 나질 않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공군은 이스라엘제 전투기 ‘크피르(Kfir)’를 20여 대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후화가 심해 가동률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공군에서는 강력히 교체를 원하고 있지만, 예산과 우선순위 문제로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공군은 예산 부족에도 경공격기 사업이 아닌 전투기 사업을 원하고 있고, 상부 보고를 통해 결심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여러 차례 공군 주요 직위자를 만나 FA-50의 우수성, 부족 예산과 지리·지형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의 적정성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최근 선점 차원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 요청으로 FA-50 가격과 기술제안서를 콜롬비아 공군에 제출했습니다. 수개월 내 전투기 혹은 경공격기 사업에 대한 상부의 결심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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