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스타 연주자...그녀의 커튼콜은 현재진행형

입력 2024. 05. 20   16:28
업데이트 2024. 05. 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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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뮤·클 이야기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9세 서울시향 협주로 데뷔·13세 미 유학길 올라 세계 무대서 활동한 영재
1994년 ‘한예종’ 교수 부임…젊은 세대에겐 교육자로 더 유명
전성기 화려한 프로필 무슨 의미 있으랴…황홀한 그 연주 여전한데

 

'이성주와 프렌즈' 리허설.
'이성주와 프렌즈' 리허설.

 

'이성주와 프렌즈' 커튼콜 모습.
'이성주와 프렌즈' 커튼콜 모습.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의 연주회를 오랜만에 다녀왔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연주회는 ‘이성주와 프렌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고, 객석은 가득 차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는 젊은 세대에게는 ‘연주자’보다 ‘교육자’로 더 알려져 있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1993년 문을 연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1994년 교수로 부임해 2021년 정년 퇴임하기까지 다수의 제자를 길러 냈고, 이들은 현재 한국 클래식계에서 커다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미국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전성기를 보내던 그를 한예종의 이강숙 초대 총장이 삼고초려해 귀국하게 만든 일화는 클래식계에서 유명하다. 이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이성주는 늘 “내가 왜 와서 그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웃곤 한다. 지금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이성주는 5세 때 바이올린 활을 처음 잡아 9세에 ‘서울시향 소년소녀 협주곡의 밤’으로 첫 무대 데뷔를 했고, 13세(중2)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영재였다. 지금이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도 많고 어려서부터 영재교육을 받는 학생이 적지 않지만 이성주가 유학을 떠난 1960년대 후반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줄리아드대 음대에서 정경화, 이츠하크 펄먼을 키운 명교수 이반 갈라미언, 도러시 딜레이에게 사사했고 1977년 미 뉴욕 카프만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통해 연주자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는다.

뉴욕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우승을 비롯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시벨리우스 콩쿠르 등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국제대회에서 입상 또는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며 빠르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갔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30여 년간 연주자로서 전성기를 보낸 그의 프로필을 이곳에 늘어놓아 지면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번은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프로그램북에 나오는 이력(그나마 중요한 것만 모아 놓은 것)을 다 기억하시냐고.

“앞에 어느 정도까지는 외우는데, 그 뒤는 나도 잘 모른다”고 했다.

‘이성주와 프렌즈’는 이성주가 친한 후배 연주자 5명과 함께 꾸민 연주회였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각각 2명씩 1부에 두 곡, 2부에 한 곡을 연주했는데 모두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실내악 작품이었다.

연주회 시작 전 활 대신 마이크를 잡은 이성주는 연주곡을 소개하면서 “은퇴하고 나니 음악에 대한 의욕이 다시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학자로 살아온 사람답게 그는 꽤 ‘학구적인’ 프로그램을 즐기는 편인데, 필자가 그의 연주를 처음 본 것은 2009년 베토벤 소나타였다. 당시 이성주는 베토벤이 남긴 무려 10곡에 달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전곡을, 그것도 하루에 완주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오후와 저녁 두 차례에 걸쳐 각 5곡씩 총 4시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지금도 ‘이성주’ 하면 그날의 연주회가 선하다.

‘이성주와 프렌즈’에서 연주한 드보르자크도 이성주가 애정하는 작곡가. 2004년 드보르자크 서거 100주년을 맞아 체코 프라하 드보르자크홀에서 열었던 드보르자크 협주곡 연주 이야기는 지금도 그가 종종 꺼내는 것으로 보아 각별한 추억임에 틀림없다.


지중해 느낌이 물씬한 파란색 반팔 실크 상의에 검정 하의를 입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선 이성주는 이날 드보르자크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네 개의 소품’ ‘현악 4중주 12번 바장조 아메리카’ ‘현악 6중주 가장조’를 연주했다. 드보르자크 특유의 약동하는 리듬, 음과 음의 선명한 대비, 천국 길을 걷는 듯 아련하면서도 황홀한 음색은 확실히 이성주의 것이자 누가 들어도 드보르자크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소녀풍의 외모와는 꽤 다른 반전 연주 스타일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는데, 전함을 이끄는 여전사의 이미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세계적인 1세대 한국 스타 바이올리니스트에서 한국 클래식 바이올린계의 ‘대모’로, 다시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와 인생 3막을 열어젖힌 이성주의 행보를 환영하고 응원한다. 그의 커튼콜은 아직 멀었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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