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길

입력 2024. 05. 16   16:58
업데이트 2024. 05. 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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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채홍 일병 육군8기동사단 의무대
배채홍 일병 육군8기동사단 의무대

 


2023년 9월 4일, 나는 숫자가 됐다. 엑셀로 만든 띠지 끝에 적힌 ‘101’이 내 새 이름이었다. 입대를 앞둔 날 여느 장병들이 그렇듯 나도 걱정이 많았다. 군율의 엄격함을 견뎌낼 수 있을까, 공중보건의사로 입대할 동기들에 비해 인생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맞닥뜨린 훈련소 생활은 생각보다 그리 막막하지 않았다. 서로 돕고 나누며 웃는,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생활관 동기들과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고 떠들기도 했다. 동시에 훈련받을 때는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면서 서로를 밀고 당겼다.

총성에 벌벌 떨던 신병은 각개 전투장에서 고막이 터질 듯이 크게 깔리는 전장 음향에서도 수신호로 전진할 수 있는 병사가 돼 갔다. 어느덧 훈련은 막바지로 향해 각개 전투의 꽃인 야간 행군을 하게 됐다. 온종일 산을 타던 고단한 몸으로 완전 군장을 차고 행군 대열을 갖추고, 이내 행군이 시작됐다. 앞선 조교의 빨간 형광봉과 내 앞 전우의 등을 보고 걸음을 옮긴다.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은 자연 터널을 지나고 자갈이 카펫처럼 깔린 길을 지나 산길을 걸었다. 산의 정상을 지날 때쯤 무심코 든 시선은 하늘이었다. 빛 공해가 없는 넓은 하늘 검정 도화지에는 누군가 흰색 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별이 박혀 있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도시의 불빛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별빛은 뇌리에 남아 우리를 은은한 흥분으로 인도했다.

누군가의 감탄사로 침묵은 끝이 났다. 그 후에는 속삭임이 시작됐다. 한 훈련병은 나중에 칵테일바를 차리고 싶단다. 우리 분대 분대장은 가공육 회사를 세우는 게 꿈이었다. 어떤 훈련병은 늦은 나이일지 몰라도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쑥스럽게 웃었고, 또 다른 훈련병은 대학원에서 해양학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분대원의 수만큼이나 많은 꿈이 방금 본 별처럼 빛났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나는 내가 살아온 삶밖에 알 수 없다.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꿈이 있다는 것, 수많은 길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걸어온 길이 아닌 다른 길은 쉽게 생각할 수 없으리라.

군대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모든 길은 로마… 아니 군대로 통한다’는 말처럼, 군대에서는 사회에서 겪을 수 없던 다양한 경험과 인생이 교차로처럼 얽힌다.

오늘도 많은 용사가 묵묵히 조국을 지키는 중이다. 영광스럽지만 어찌 늘 즐겁기만 하겠는가. 때때로 관계에서 고통받고 뚜렷하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당신의 마음을 좀먹으려 들 때 가슴을 펴고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경험을 통해 성장하거나 또 다른 꿈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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