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人사이트] 꽃다운 수행자로… 군종법사 사명으로… 법향 가득한 꽃피운다

입력 2024. 05. 13   18:10
업데이트 2024. 05. 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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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人사이트 - 해군 군종법사 용정원 대위(범정스님)

별명은 ‘꽃스님’
은사님 제안으로 SNS 활동 시작
법구경 ‘화향품’서 생각한 계정 이름
인스타그램·유튜브 등으로 소통
팔로어 3만 명 넘는 ‘MZ 스님’


두 번의 입대
육군병장 전역 후 군종법사로 재입대
‘군종법사 선배’ 막냇동생이 적극 추천
병사의 마음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어
나만이 가진 무기이자 자부심


한국 불교는 호국 불교
장병 사기 진작·무형 전투력 증강 앞장
군복 입을 때, 군화 끈 동여맬 때도
항시 전시 대비, 군인의 마음가짐 중요


‘꽃스님’. 요즘 SNS에서 가장 ‘핫’한 스님이다. 팔로어가 3만 명이 넘는다. 인스타그램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DM으로 그들의 고민을 들어준다. ‘넷플릭스’도 즐겨 보고 ‘배달의민족’ 앱으로 음식도 시켜 먹는다. 소위 불교는 딱딱하고, 스님은 어렵다는 편견을 와장창 깨트렸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쉬운 길은 선택하지 않았다. 바로 장교인 군종법사로 입대할 수 있었지만, 병사로 입대해 육군에서 군 복무를 했다. 지금은 해군 군종법사로 재입대해 진해기지사령부 해안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병사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꽃향기 물씬 나는 용정원 대위(범정스님)를 만나 봤다.
글=송시연/사진=양동욱 기자

‘꽃스님’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해군진해기지사령부 군종법사 용정원 대위(범정스님)가 부대 내 해안사를 거닐고 있다.
‘꽃스님’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해군진해기지사령부 군종법사 용정원 대위(범정스님)가 부대 내 해안사를 거닐고 있다.



-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꽃스님’이다. 꽃스님은 언제부터 어떤 의미로 쓰게 됐나.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지어 준 별명이다. 이후 『법구경』에서 꽃을 다루는 구절인 ‘화향품’을 보게 됐는데, 그것이 발심의 계기와 맞물려 ‘꽃스님’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수행자는 꽃답게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품은 법향을 누군가에게 맡게 해 주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 팔로어가 3만 명이 넘는다. 활발한 SNS 활동,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떻게 하면 불교를 보다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해 왔다. 그러던 중 은사스님이 유튜브를 해 보라고 제안하셨다. 당시엔 유튜브를 즐겨 보지 않았다. 유튜브 특성이 저의 포교 방식과도 안 맞았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아무리 큰 사찰이어도 법회 때 오는 신자는 10명 남짓이다. 이제는 제가 라이브 방송을 켜면 100~200명은 기본으로 참여한다. 시대에 맞는 포교 방식이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제가 올린 글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기에 게시물 하나를 작성하는 데도 신중을 기한다. 라이브 방송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꼼꼼하게 준비한다.”


- 진로, 고민 상담도 많이 들어올 것 같다. 주로 어떤 내용인가.

“인간관계 고민, 부모님과의 갈등, 직장에서의 어려움 등 다양하다. 요즘 세대 친구들을 ‘MZ’라고 부르지 않나. 보통 ‘MZ’라고 하면 미래보다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다. 군에 있는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군에서 ‘종교’ 하면 제일 중요한 게 ‘간식’이었다. 지금 병사들은 단순히 먹을거나 물질적인 것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제가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도 간식을 지급하지 않는 일이었다. 불교 사상과 진리를 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병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웠다. 더 많은 관심을 쏟았고, 더 많이 소통했다. 밥을 안 먹었다고 하면 라면을 끓여 주고, 삼겹살도 구워 줬다. 그들이 이곳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까 병사들도 마음을 열고 다가오더라. 군 생활의 고충, 전역 후 진로 등 이곳에서 하지 못하는 얘기는 DM으로 보낸다. 병사들이 원하는 건 간단하다. 정신적인 지주와 보살핌이다.”

 

 

 


-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아버지의 권유가 시작이었다. 막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갔을 때였다. 세 남매를 앉혀 놓고 출가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당시 종교가 있던 집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의아했지만, 신뢰가 워낙 두터웠기에 큰 거부감 없이 세 남매 모두 화엄사로 갔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절로 들어갔다. 막상 부모님과 이별하고 나니 너무 힘들더라. 스님이 무엇인지, 부모와의 이별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컸다. 외딴곳에서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도 시달렸다. 한 달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뎠나. 

“노스님과 은사스님의 사랑 덕분이었다. 그분들을 보면서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다.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살라고 하셨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저를 믿고 보듬어 주셨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대학에 진학하고 입대하면서 그분들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됐다. 부모님께 이별을 배웠다면, 노스님과 은사스님께 사랑을 배웠다.”


- 함께 출가한 동생들이 의지가 많이 될 것 같다.

“많은 의지가 된다. 서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막냇동생이 군종법사 선배이다 보니 지금도 큰 도움이 된다.”



- 육군 병사와 해군 군종법사로 두 번의 입대를 했다. 어떤 이유에서였나.


“스님이라고 특혜받는 것이 싫었다. 처음부터 군종법사로 입대할 수 있었지만, 제 마음이 떳떳하지 못했다. 그런 마음이 창피했다. 그래서 2017년 병사로 육군에 입대했다. 6보병사단에서 경계병 임무를 수행했다. 전역 이후 군종법사였던 동생이 제가 갖고 있는 경험치를 장병들과 나누면 좋겠다고 재입대를 적극 추천하더라.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지원했다.”

 



- 병사 복무기간이 군종법사로 복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병사의 삶을 살아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안다. 저만이 가진 무기이자 자부심이다. 누구도 병사들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없다. 99%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1%는 이해할 수 없다. 장교는 꿈과 목표를 위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지만, 병사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다. 애초에 시작부터가 다르다. 제가 병사들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군대에 군종법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간혹 군종법사가 하는 일을 수치로 계산하려는 분들이 있다. 군종법사는 종교라는 신앙심을 통해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무형의 전투력을 증강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죽음과 생명에 대한 바른 가치관, 윤리, 도덕을 형성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런 일들은 시간과 장소가 필요한 게 아니다. 병사들이 잠잘 때도, 일어날 때도, 일과시간에도 모든 상황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


- 군종법사로서의 사명은. 

“한국 불교는 호국 불교다. 나라가 전쟁에 빠지고 백성들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승병들은 창을 들고 왜적을 물리쳤다. 나라가 없는데 불교가 무슨 소용인가. 백성이 없는데 중생이 무슨 소용인가. 제가 군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머리를 밀고 있지만, 군번줄을 찰 때나 군화를 신을 때는 군인이라는 것을 상기한다. 전문적인 지식과 목적을 갖고 병사들을 교육해 그들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 싸울 수 있도록 제 몫을 다할 것이다.”


- 병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군인은 항상 전시에 대비해야 한다. 기본자세와 몸가짐, 옷차림을 바르게 해야 한다. 전투복을 단정히 입고 군화를 깨끗이 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을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겁먹고 도망치면 첨단 장비가 무슨 소용인가. 군복을 입을 때 군화 끈을 동여맬 때 자신이 군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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