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마,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살고 있단 걸… 

입력 2024. 04. 30   16:47
업데이트 2024. 04. 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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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 ‘선재 업고 튀어’, 만약 최애를 구할 기회가 온다면?

타임슬립해 최애 스타 살리려는 임솔

현실서 멀었던 그가 동급생으로 곁에…
선재 구하려 홀로 매일 고군분투하지만
무료하고 따분하게 여겼던 평범한 날이
얼마나 빛나는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돼
오랜만에 ‘풋풋한’ 로코물 보는 재미도 

 

‘선재 업고 튀어’ 스틸 컷. 사진=tvN 제공
‘선재 업고 튀어’ 스틸 컷. 사진=tvN 제공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남자, 그 남자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여자. 절절한 로맨스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두 남녀는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 스타와 팬의 관계다. ‘만약 당신의 최애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해 최근 MZ세대의 관심을 꼭 붙들고 있는 tvN 월·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로그라인이다. 제목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피어나는 장르적 상큼함은 주연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변우석·김혜윤과 만나며 한층 시너지를 내고 있다. 불륜과 살인 등 ‘마라맛’으로 점철된 도파민 유발 작품들 틈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었던 청춘 남녀의 풋풋한 로맨틱 코미디라니 그저 반가움부터 앞선다. 이는 오히려 ‘달콤함’이라는 신선한 즙을 짜내며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게다가 그 달달한 온기 속에는, 우리가 놓친 중요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선재 업고 튀어’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2023년 서른넷의 임솔(김혜윤)이 2008년 열아홉의 고3 임솔 시절로 돌아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서사의 중심축을 이룬다. 다만 전술한 이유로 임솔은 2023년 죽게 되는 자신의 최애 아이돌 류선재(변우석)의 비극을 막고자 15년 전으로 회귀한 상황을 파악한 시점부터 곧바로 이를 위한 고군분투에 돌입한다. 물론 녹록지 않다(이게 쉬웠더라면 드라마가 16부작일 리가 없을 테니깐). 미래에 벌어진 사건 이야기만 꺼내면 마법처럼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흑백으로 멈추는 현상 탓에 직접 설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접근해 서서히 영향을 주는 방법 정도가 최선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5년 후의 세상에서 결코 닿지 않을 정도로 아득히 먼 존재였던 류선재가 2008년엔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임솔 자신에게 닥친 사고가 일어나기 전이라 휠체어 없이도 원하는 곳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


 



과거로 회귀한 모습에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질 수 있다. 올해 초 방영됐던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역시 회귀물 형태를 취했던 작품이었다. 다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불륜을 저지르고 자신을 죽인 남편에 대한 처절한 복수가 회귀의 주된 목적이었으니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한 ‘선재 업고 튀어’와 체감되는 온도 차는 분명하다. 타임슬립이란 점에서는 ‘반짝이는 워터멜론’(2023)도 떠오른다. 회귀는 아니었지만, 과거로 타임슬립함으로써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정이나 교복을 입은 학창 시절을 배경으로 밴드와 음악 등을 소재로 한다는 공통분모가 수두룩하다. 주인공의 개입으로 변한 과거가 현재까지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극 중 세계관에선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2013)이 소환되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줄줄이 거론한 작품들이 모두 다 tvN 월·화 드라마라는 사실이다(이는 10여 년에 걸친 집요한 tvN 월·화 유니버스인가).

‘시간’과 함께 이번 작품에서 은근히 강조되는 것은 ‘기억’이다. 여느 회귀물과 상이한 점을 꼽자면 2023년의 임솔이 2008년의 임솔과는 전혀 다른 존재처럼 그려진다는 것이다. 작중 캐릭터들이 임솔을 이중인격으로 느끼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각각 다른 시기의 임솔은 좋아하는 남자도, 성격이나 태도도 확연하게 구분된다. 열아홉부터 서른넷까지 15년 동안 축적된 임솔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니 ‘서른넷 임솔’은 자신이 떠나고 난 뒤 남겨진 본래의 ‘열아홉 임솔’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입장에 처한다. 이러한 구조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와 맞닿는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막는 것이 주요한 목적인 대목 역시 그렇다. 두 작품은 회귀와 빙의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억이라는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서로 다른 시간대의 임솔을 별도 인격체처럼 구분 짓는 과정에서 생겨난 유사성이다.

시청자들은 기억의 중요성에 관해 최근 막을 내린 tvN 토·일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이미 학습한 바 있다.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수술을 거부한 주인공 홍해인(김지원)은 백현우(김수현)에게 이런 말을 건네지 않았나. “살아 있다는 건 그 기억들을 연료 삼아 내가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깐 그 기억들이 나고, 내 인생이야”라고. 기억이 곧 자아란 소리다. 당초 ‘선재 업고 튀어’는 ‘기억을 걷는 시간’이라는 가제로 먼저 대중에게 알려진 바 있다. 제목은 방영 전 현재의 타이틀로 교체됐지만, 여전히 스토리 뼈대에는 기억과 시간이 주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는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지나 버린 과거, 무료하고 따분했던 평범한 일상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스타 류선재가 동갑내기 학생이 돼 곁에 있는 것은, 결국 이러한 맥락의 형상화인 셈이다. 사소하게 지나친 일들이 나중에 돌이켜 보면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하고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좀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우리는 어땠을까. ‘선재 업고 튀어’가 회귀라는 판타지 장치를 동원해 꼭 말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부여하는 특별함이 아니었을까.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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