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다”

입력 2024. 04. 30   17:27
업데이트 2024. 04. 30   17:32
0 댓글

이영미의 스포츠in -  KBO 역수출 신화 2인방 ‘켈리와 페디’ 

SK 출신 애리조나 투수 메릴 켈리
ML 복귀 후 승승장구 WS 무대 호투
지난해엔 미국 대표로 WBC 출전도
‘천적’ 이정후와 재회 앞두고 큰 관심
부상자명단 올라 대결 불발 아쉬움

NC 출신 시카고WH 투수 에릭 페디

올시즌 벌써 2승…각종 지표 상위 랭크
‘스위퍼’ 앞세워 작년 KBO 20승·MVP
미국 무대서 스플리터까지 위력 과시
“1년 전 돌아가 선택하라 해도 한국행”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투수 메릴 켈리. 연합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투수 메릴 켈리. 연합뉴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투수 에릭 페디. 연합뉴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투수 에릭 페디. 연합뉴스



2014년 12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는 새 외국인 선수로 오른손 투수 메릴 켈리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메릴 켈리의 몸값은 35만 달러. 2010년 MLB 신인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지명된 후 마이너리그 통산 125경기에서 39승 26패,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했던 켈리는 SK 입단 당시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메이저리그 문턱을 넘지 못한 이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켈리는 2015시즌부터 4년 동안 SK에서 통산 119경기에 등판해 729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며 48승32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 에이스로 맹위를 떨쳤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8년에는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하며 우승 반지도 거머쥐었다.

켈리는 2018시즌을 마친 뒤 SK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고향 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년 총액 6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빅리그 경험이 없었지만 애리조나에서의 첫 시즌인 2019년 13승14패 평균자책점 4.42의 활약을 펼쳤고, 코로나19로 단축 시즌으로 진행된 2020년에는 3승2패 평균자책점 2.59로 더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21년에는 27경기에 등판해 7승11패를, 2022년 33경기 200과 3분의 1이닝 13승8패 평균자책점 3.37, 2023년 30경기 12승8패 평균자책점 3.29로 기세를 이어갔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WBC 미국 대표팀에 발탁됐다. 비록 우승을 이루진 못했지만 2023시즌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라 호투를 펼치기도 했다.

올시즌 켈리는 지난달 24일(한국시간) 어깨 문제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는데, 그전까지 4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2.19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그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 전인 지난달 2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오라클 파크를 방문했을 때 인터뷰를 했었다. 당시 켈리는 이틀 후면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와 맞대결이 예정됐었다. 이정후는 KBO리그 시절 켈리를 상대로 타율 0.467(15타수 7안타)로 강한 면모를 보인 터라 두 선수가 빅리그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한 상황이었다.


필자와 인터뷰 하는 메릴 켈리. 필자 제공
필자와 인터뷰 하는 메릴 켈리. 필자 제공



아직 어깨 부상이 드러나기 전이라 켈리는 이정후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기분 좋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정후는 한국에서도 잘했던 선수다. 이렇게 메이저리그에서 대형 계약을 이뤄낸 것만 봐도 그가 공을 배트에 맞추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정후는 어려운 상황에서 어려운 투수와 상대해도 좋은 콘택트를 보이는 선수다. 그게 내가 (한국에서) 몇 년 동안 봤던 이정후의 모습이다.”

이정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메릴 켈리는 한국에서의 맞대결 전적이 좋지 않았던 걸 기억해내고선 “이정후를 마지막으로 상대한 게 2018년이었는데 지금은 나도 이정후도 서로 많이 변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빅리그 커리어가 없었던 선수가 애리조나 팀에서 어떻게 성장을 거듭했는지를 묻자 켈리는 ‘평정심’이란 단어를 꺼내 보였다.

“나는 마운드에 오르면 선발 투수로 6이닝 이상 책임지는 걸 목표로 한다. 그 6이닝 이상을 책임지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 덕분에 WBC 대표팀에도 뽑혔고, 월드시리즈 무대에도 올랐다. 평정심이 없었다면 그런 큰 무대를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현지 기자들과의 인터뷰 때마다 KBO리그에서의 경험이 투수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KBO리그에서는 야구뿐만 아니라 야구 외적인 인생의 기억들이 많다. 내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외국인이라 적응해야 했던 낯선 문화들, 언어 장벽들, 때로는 혼자라는 외로운 기분을 느꼈던 시간들이 전체적으로 나한테 도움이 됐다. 사람한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길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투수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4월 2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탬파베이 레이스전에 화이트삭스의 선발 투수는 8과 3분의 1이닝 동안 7안타를 내주고 9탈삼진 2실점이란 눈부신 피칭을 펼치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그 투수는 시즌 2승을 올렸고,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했다. 바로 지난 시즌 NC 다이노스의 에이스이자 KBO리그 MVP를 수상한 에릭 페디다.

페디는 현재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12위, 투구이닝 공동 11위, 탈삼진 공동 6위,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14위, 피안타율 13위 등을 기록하는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리그 정상권을 차지하고 있다. MLB.com은 지난달 29일 ‘새로 등장한 에이스가 스윕을 완성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에릭 페디가 2017~2022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 작년 KBO리그에서 20승6패, 평균자책점 2.00, 209탈삼진의 압도적인 모습을 통해 올시즌을 앞두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1500만 달러에 계약 후 복귀했다고 소개했다.

페디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배경에는 ‘스위퍼’란 구종이 존재한다. 페디는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만 해도 스위퍼를 던지지 않다가 KBO리그에서 처음 선보였다. 스위퍼로 KBO를 폭격한 후 메이저리그 복귀에 성공해선 현재 옆으로 크게 휘는 스위퍼와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메릴 켈리와 더불어 ‘역수출의 신화’로 꼽히고 있는 에릭 페디한테도 KBO리그에서 보낸 한 시즌은 자신의 야구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시간들이다. 페디는 다음과 같은 말로 NC 다이노스 팀과 팬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만약 내게 1년 전으로 돌아가 팀을 선택할 때 KBO리그에서의 생활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예스’라고 답할 것이다. NC에서의 2023시즌은 내게 굉장한 자신감을 심어준 시간들이었다. 내 야구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건 정말 축복이었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