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눈부신 희생에 시들지 않는 존경을…

입력 2024. 04. 26   16:37
업데이트 2024. 04. 2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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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

머리 센 아비는 푸르던 아들이 그리워 32년을 하루처럼 울었다

국방의 의무 다하다 순직한 청춘들
가족들 세상 떠나도 잊히지 않기를
이제는 국민 모두가 함께 기억해야

지난 26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의무군경인 고(故) 이태석 이병 어머니가 아들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의무군경인 고(故) 이태석 이병 어머니가 아들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 소원은 정부가 순직의무군경의 날을 지정해 먼저 떠나 보낸 아들을 저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추모하고 기억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꿈이 이뤄졌네요.”

지난 26일 오전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이 거행된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 행사 내내 눈물을 보이던 한 순직의무군경 부모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부모는 자신의 아들이 키 크고 훤칠했지만 애교가 많아 딸 같은 아들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입대한다고 했을 때도 원만한 성격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이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졌다고 하니 큰 상실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형제도 없어 자신들이 떠나고 나면 기억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슬픔은 더욱 컸다.

순직의무군경의 날은 이러한 유족들의 아픔을 보듬고 나라의 부름에 응답한 젊은 청춘의 희생·헌신을 국가와 국민이 존중하고 기억하고자 지정됐다.

군 정신전력교육에서 자주 소개되는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에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예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2004년 9월 이라크에서 19세 나이로 전사한 미 해병대 챈스 펠프스 일병의 유해를 유족에게 운구하는 책임을 맡았던 마이클 스트로블 해병중령이 신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에선 스트로블 중령이 챈스 일병을 운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물론 미국 시민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어떠한 예우와 존경심을 표하는지를 보여준다.

전투 중 사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 우리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다가 훈련 등으로 사고를 당했다는 점에서 순직의무군경 역시 존경과 예우의 대상이다.

‘첫 번째 봄, 영원히 푸르른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거행된 이날 행사에선 그러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행사 첫 순서인 여는 영상에서는 순직의무군경의 아버지가 집에 남겨진 아들의 흔적을 살펴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기념식 참석을 위해 나서는 모습을 소개했다. 아들의 흔적을 살피는 아버지는 “매년 4월 넷째주 금요일에는 온 국민과 나라가 기억해줄 거야. (기념식에) 잘 다녀올게”라며 슬픔을 삼키는 동시에 이제 매년 기념식에서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을 표현했다.

이어 행사장 화면에는 1991년 순직한 고(故) 전새한 이병이 복무 중 부모님께 남긴 편지 내용이 송출됐다. 전 이병은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서 “며칠 전 이곳 자대에 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아버지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보고선 아버지, 어머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다닐 때 부모님 속 많이 끼쳤죠? 그때는 제가 철이 덜 들었는가 봅니다. 아마 다음에 만나뵐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드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그의 아버지 전태웅 씨가 무대 위에 올라 답장을 낭독했다. 전씨는 아들 순직 이후 지난 32여 년간 900여 통의 답장 없는 편지를 보냈다.

전씨는 “나는 지금도 군복을 입은 병사를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너를 보는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네 엄마에게 신발과 잠바를 사달라고 했을 때 공부나 열심히 하라면서 나무라던 일이 정말 한이 된다. 그때 일을 후회하고 후회해도 아빠는 너무 독선적이었고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살아 있을 때 단 한번이라도 네 행동에 칭찬하고 너가 원하던 모든 것을 해줬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가슴아프지 않았을텐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네가 생각나 맛나게 먹을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새한아, 너와 헤어진 지 벌써 32년이 됐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신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 뒤늦게 이 말의 깊은 뜻을 알겠구나. 아빠도 이제 80대 중반으로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구부정하고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해 50이 넘은 너를 가슴에 담고 있는데 네 몸이 무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훗날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 네가 반갑게 아빠 손을 잡아줄 때 내 품에 너를 안고 싶다. 아들아 사랑한다”고 담담히 자신의 감정을 털어놨다. 

이들 부자의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이어지는 영상에선 평범한 꿈을 꾸었을 순직의무군경을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또 한번 참석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행사는 가수 박정현이 깊은 아픔 속에서 지냈을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 ‘미아’와 순직의무군경과 비슷한 나이대인 20대와 부모세대로 구성된 ‘순직의무군경 기억합창단’이 순직군경의 날 노래를 참석자들과 제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보훈부 출범 이후 첫 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순직의무군경의 날을 맞아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꽃다운 나이에 생을 달리한 청춘들의 넋을 기리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보훈부는 순직의무군경들의 숭고한 희생을 모든 국민이 함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의미 있는 기념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보훈부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처음 기념식이 진행된 만큼 행사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국민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다채로운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그랜플루언서 등을 활용한 영상 업로드, 퀴즈 행사,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디지털 홍보와 함께 지난 24일에는 순직의무군경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작은 음악회 ‘JTBC 비긴어게인’ 특집방송을 제작해 방영했다.  임채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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