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를 살피는 은밀한 시선

입력 2024. 04. 26   16:07
업데이트 2024. 04. 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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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시설 주변 스파이 조심 

군사작전 전날 펜타곤서 주문 폭증
위기 징후 감지하려 배달 동향 살펴

감시 목적 인근 고층빌딩 매입
출입자·내부 움직임 내려다봐

공군기지 보이는 위치서 위장 영업
촬영 드론 소지하고 관광객 주장도


피자 주문량으로 위기 징후 감지

지난 13일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 주변의 피자집에 주문이 폭증했다고 한다. 많은 인원이 비상근무를 하다 보니 야식 주문이 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당일 펜타곤 인근의 피자 주문 동향을 알아보려는 사람도 꽤 많았다는 것이다. 바로 워싱턴 피자지수(Washington DC Pizza Index) 때문이다. 1991년 워싱턴DC 인근에 피자가게 60개를 운영하던 프랭크 믹스가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전날 밤 CIA의 피자 주문이 폭증했다며, 피자 배달 동향으로 위기 발생 징후를 알 수 있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최고 기록은 걸프전 발발 직전 펜타곤의 피자 주문량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백악관의 피자 주문도 3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정보요원(Case Officer)이 정보 수집을 위해 목표에 직접 침투하는 것은 위험하고 힘들 뿐 아니라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내부 인물을 포섭해 스파이(Agent)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방법으로 목표 주변에 암약하면서 간접적으로 내부 동향을 파악할 수도 있다. 피자집 동향도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군사기지 주변에서는 관측을 통해 출동태세, 훈련동향, 신무기 배치, 병력증감 등 일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근 식당이나 술집에서 군인들의 대화내용 등을 통해 작전계획이나 인사, 정보, 군수 등과 관련한 중요 첩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또한 조직 내 불만, 술이나 도박 중독, 경제적 탐욕 등 취약점이 있는 자를 알아내 스파이로 포섭(HUMINT)할 대상을 물색할 수도 있다.

물리적 접근성만 확보된다면 통신감청이나 전자파 수집을 통한 신호정보(SIGINT) 수집도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방첩 측면에서는 이런 점에 착안해 군사기지와 정부 중요기관, 연구소 등 안보상 민감한 시설 주변에 대해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방첩활동이 필요하다. 인근 식당, 술집, 숙박업소 주인, 종업원, 자주 오는 손님 중에서 특이 동향을 보이는 사람의 신원 및 동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물론 피자를 배달시키지 않고 일부러 먼 곳에서 직접 사오는 것도 중요한 방첩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독일 내 미군기지 염탐

정보 수집에서 통신감청, 사이버 해킹, 위성정찰 등 기술적 수단을 통한 정보수집(TECHINT)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지만, 주요 시설에 대한 물리적 접근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한 방법이다.

독일 연방검찰청은 18일 형법상 군사적 사보타주(파괴공작) 목적 스파이 활동, 외국 정보기관을 위한 간첩 활동 등 혐의로 30대 독일계 러시아인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 러시아 스파이는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 정보요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독일 내 우크라이나군 훈련 장소로 쓰이는 미군 기지를 염탐하고, 군사시설과 방산업체 등에 방화, 폭파 등 공격을 계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독일에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군수물자 보급로 등을 파악한 뒤 파괴 공작을 꾸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저지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독일 주둔 미군 기지를 촬영해 러시아 정보기관에 넘겼는데, 미군이 우크라이나 장병들에게 에이브람스 전차 운용을 교육하는 독일 남동부 그라펜뵈어 미군 기지도 포함됐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러시아가 독일 군 고위 장교들의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회의내용 감청자료를 공개하며 독일 국민들의 전쟁 공포감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방해하려는 여론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영국 비밀정보부 인근의 러시아 감시 거점 

지난해 12월 영국에서는 해외정보기관 MI6 건물이 자세히 내려다보이는 인근 건물 펜트하우스의 소유주가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러시아 기업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러시아 기업 ‘프레소그룹’의 모스크바 주소지가 2018년 발생한 망명 러시아 정보요원 세르게이 크리스팔 암살 시도 사건에 사용된 치명적 독극물 노비촉을 만든 화학공장 바로 옆이어서 러시아 정보기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 의회 외교위원장인 엘리셔 컨스는 “나도 MI6건물 주변 고층빌딩에서 일해 봤는데 출입자와 행동 패턴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었다”면서 “적대국이 감시 목적으로 건물을 사들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주변 건물의 주인들과 협조해 이것을 막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MI6 건물은 2000년 테러단체 ‘리얼IRA’에 의해 로켓 공격을 받아 7, 8층 유리창이 모두 파손되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BBC방송이 MI6 정문 건너편 가로등에 중국산 CCTV가 설치돼 출입하는 직원들을 촬영하고 있다며, 해킹시범을 통해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모든 중국산 CCTV를 민감한 시설 주변에서 철거하도록 지시했다.

중국의 스위스 공군기지 감시 공작 

지난해 7월 스위스 연방정보부(FIS)와 경찰은 운터바흐에 있는 마이링겐 공군기지 인근 호텔 뢰슬리의 주인인 왕다웨이 부부와 아들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이 기지에서는 2018년부터 미국의 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의 비행시험을 해왔다고 한다. 스위스 공군은 2025년부터 F-35 전투기 36대를 도입할 계획인데 실전 배치를 앞두고 군 당국이 주변 시설을 점검하던 중 근거리에서 기지 내부가 자세히 관측되는 이 호텔을 발견해 방첩기관이 호텔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이들은 2018년에 80만 스위스프랑(약 12억 원)을 주고 이 호텔을 매입, 운영해 왔는데 이들이 진짜 가족인지도 불확실하다고 한다. 스위스 당국은 이들에게 불법체류 등 혐의로 과태료만 내게 하고 석방했는데, 석방 직후 3명은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 내에서 기지배치 및 무기통제시스템 등과 관련된 대량의 문서가 발견되면서 호텔 운영은 사실상 스파이 활동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미국의 첨단 전투기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중국 정보기관이 감시 거점을 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미 국방부와 FBI도 중국인들이 길을 잃어 미군 기지에 침입(?)한 사건이 최근 수년간 100건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촬영용 드론을 소지한 경우도 많지만 관광객이라고 주장해 딱히 처벌하기가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가안보 차원의 관리 대책 필요 

미국은 16개 정부부처로 구성된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외국인의 투자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승인을 심의하는데, 강화된 관련법 제정으로 2020년 2월부터는 외국인의 국가안보상 민감한 주요 시설 인근 부동산 거래(매입, 양도, 임대)도 그 대상에 포함했다. 우리도 군사시설보호구역, 국가보안목표시설 지정 등으로 중요 시설을 보호하고 있지만, 특별히 외국인의 경우에는 군사시설, 중요기관, 연구소, 첨단산업시설 등 민감한 시설 주변에 접근할 수 없도록 국가안보 차원의 추가적인 관리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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