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전투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

입력 2024. 04. 24   15:40
업데이트 2024. 04. 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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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상사 육군53보병사단 기동대대
박은석 상사 육군53보병사단 기동대대



“하루에 영어 단어 1개씩만 외우면 1년에 365개를 외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얼핏 듣기엔 쉽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기본적인 성실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실천하지 못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한한 헌신을 감내해야 하는 군인의 특성상 어떤 주기적인 일에 몰입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가족을 꾸리고 현재 생후 28개월 된 아이를 양육하는 기혼자 입장에선 더더욱 여유가 없었다. 자기계발은 ‘선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큼 큰 깨달음을 얻은 일이 있었다. 미군 부대에서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전투부상자처치(TCCC) 교육에 참여했는데, 교육이 영어로 이뤄졌다. 주변에 통역요원이 있었지만 모두 실습을 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는 간단한 회화로 소통했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할 때는 보디랭귀지로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교육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통역요원이 보이지 않았다. 온통 영어만 들리는 낯선 곳에서 기본 단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아주 간단한 식사도 눈치를 봐야 했고, 타인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는 모습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때 ‘이렇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한미 연합전력이 전장에 투입됐을 때 온전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려면 ‘선택’보다 ‘필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교육훈련이나 작전도 마찬가지다. 전장 또는 전투에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선택이라는 말은 없다. “했다 치고” “늘 하던 대로”라는 관성을 버리고 임무 완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느 한 지휘관으로부터 “전투력은 시켜서 하면 약해지고, 느껴서 하면 강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군 생활을 마냥 피로하고 힘든 일이라고 여기기보다는 국토를 방위하고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느 한 사찰에 있는 둥글게 푹 파인 모양의 바위가 떠오른다. 처음엔 바위가 그런 모양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두 방울의 물이 낙하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강하고 단단한 바위를 이겼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군 임무도 그와 같다. 자신이 맡은 분야는 물론 잠재역량 계발에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적과 싸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도 헌신과 성실성을 기본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자세를 갖고,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군 생활에 임할 것을 다짐한다. 오늘도 퇴근 후 아이의 잠든 얼굴을 매만지며 새벽불을 밝힌 채 늦깎이 수험생의 심정으로 펜을 들고 나만의 전투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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