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여유

입력 2024. 04. 01   16:29
업데이트 2024. 04. 01   16:43
0 댓글
김동환 육군3사관학교 건설공학과 교수·중령
김동환 육군3사관학교 건설공학과 교수·중령



겨울이 가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옵니다. 봄이 오면 수업시간에 춘곤증이 몰려옵니다. 졸린 눈꺼풀은 아무리 뜨려 해도 쉽게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봄의 현상을 마주하다 보니 몇 년 전 구병모 작가의 책에서 읽은 여유에 관한 짧은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여유는 삶이 살 만해야 비로소 생겨나는, 대체로 그윽하고 고상한 감정에 속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떠올리고 보니 춘곤증도 어느 정도 이해됐습니다. 생도가 수업을 듣는 여유와 교수가 수업을 가르치는 여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생도 입장에서 수업을 듣는 여유란 ‘생도 생활이 할 만해야 비로소 생겨나는, 대체로 지적인 호기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 교수 입장에서 생도를 가르치는 여유란 ‘지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해 교육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데서 비로소 생겨나는, 일련의 시·공간적 마음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실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생도와 교수, 교수와 생도가 상호작용하는 데는 지적인 호기심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러한 공통분모가 성립되지 않으면 같은 현실도 서로 다르게 인식하기 마련입니다.

지리정보체계(GIS)에서 실제 세계(real world·reality)는 추상화(abstraction)와 일반화(generalization) 과정을 거쳐 GIS 모델로 바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란 실제 세계가 아닌 개개인의 추상화와 일반화 과정을 거친 재해석된 세계(representation of the world)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추상화와 일반화 과정에서 자신이 간직하고 싶은 것 또는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마음의 지도(map)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마음의 지도를 패러다임 또는 관점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과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그 공간과 사람, 사물 모두 재해석된 자신만의 세계인 것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봄에 개나리·진달래가 언제 피고 지는지도 몰랐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그 꽃들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을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실시하는 소통과 공감시간에도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 사물들이 존재하므로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사물을 재해석할 때 어떤 중요한 것을 남겨 둬야 할지, 어떤 부분은 단순화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즉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또는 바뀌지 않아야 할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시간에 쫓겨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순간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오늘 이 순간, 이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재탄생시킬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슬픈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의 지도입니다.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어느 작가의 말을 되새깁니다. “당신의 감정은 당신이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Your emotions result entirely from the way look at things).”

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봄의 여유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마음의 지도는 어떻습니까. 잠시 봄의 세계를 각자 관점에서 재탄생시켜 보는 시간을 가지길 기원합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