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의 또 다른 의의, 전자기전 발전을 당긴 불꽃

입력 2024. 03. 28   16:48
업데이트 2024. 03. 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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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소령 육군정보학교 전자기전발전센터
유승호 소령 육군정보학교 전자기전발전센터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0년 전인 1904년. 일본 제국이 중국 뤼순항과 우리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제국의 전함을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면 우리 땅에서 외세의 총탄에 의해 무고한 우리 국민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교훈을 남겨준 것 외에도 이 전쟁이 갖는 의의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전자기전이 이 전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난 1904년 3월 8일, 중국 뤼순항에 정박한 러시아 함대를 항구에 가둬놓은 채 궤멸시키기 위해 일본의 전투순양함 카수가호와 니신호가 뤼순항 앞바다로 출격했다. 일본 해군은 당시의 최신 군사기술이라 할 수 있는 무선통신으로 함정 간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러시아 기지의 한 무선 통신사가 일본 함정을 오가는 통신 내용을 우연히 감청하게 됐다. 이어서 그는 해당 주파수를 지속적으로 간섭하고 교신을 방해했고, 일본 해군은 정상적으로 임무수행을 할 수 없게 돼 결국 해상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일본의 승리로 귀결된 러일전쟁의 전체적인 판세를 바꾸진 못했으나, 무선통신 감청과 간섭이 군사적으로 처음 활용된 사례로 남아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전자기전은 그 중요성이 점차 증대됐으며, 이제는 현대전에서 전쟁 승리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갈수록 높아지는 적과 주변국의 전자기전 위협에 대비하고, 기존의 전파 영역에서 확장된 전자기스펙트럼 환경에서 적보다 우세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육군은 전자기스펙트럼작전의 종합 발전을 추진해오고 있다. 육군정보학교는 전자기전발전센터를 통해 씽크탱크 역할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육군정보학교 전자기전발전센터의 일원으로서 전자기전의 시초가 됐던 러일전쟁 120주년을 맞아 의의와 교훈을 되짚어봤다. 전자기전발전센터는 국방혁신 4.0과 육군기본정책서 2024~2040에서 강조하는 신(新)영역(우주·사이버·전자기스펙트럼 영역) 작전수행개념 발전을 위해 각 분야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존의 전자기전과 신호정보 교육에 더해, 전자기전 관련 학술세미나와 교리·전력발전업무를 지원하고, 해외의 전자기전 사례 및 무기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상과 민간요소에 구애받지 않는 전자기전 과학화 훈련장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과학기술발전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준비한 국가들만이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자신의 국익을 지킬 수 있었다. 120년 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우리 땅에서 일어난 전쟁을 남의 총탄에 맞아 피를 흘려가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전자기스펙트럼 영역에서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이러한 과오를 막는 일이라는 굳은 다짐으로 러일전쟁 전사(戰史)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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