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페르소나 - 일본 드라마 ‘아이 러브 유’로 횹사마라 불리는 채종협
일본서 인기 폭발 ‘횹사마’로 불려
한국어 대사·한국식 손가락 약속…
의도된 연출로 문화적 매력 어필
채종협의 ‘멍뭉미’ 판타지 극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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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로 배용준은 욘사마가 됐다. 너무나 친절하고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 ‘겨울연가’의 준상이라는 인물에 일본의 전후세대 중장년 여성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인 것. 일본 남자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면모에 매료됐다고나 할까. 욘사마 신드롬은 ‘겨울연가’ 촬영지인 남이섬을 일본 관광객이 반드시 찾아가야 할 ‘성지’로 만들 만큼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욘사마의 뒤를 이은 건 ‘미남이시네요’로 일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근석이었다. ‘근짱’으로 불렸던 장근석의 매력은 배용준과는 사뭇 달랐다.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지만 공연 등을 통해 다양한 끼를 보여 주는 모습으로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아들 같은 매력을 발산했다. 배용준이 중장년 일본 여성들에게 어필했다면 장근석의 팬층은 젊은 세대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특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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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TBS에서 방영 중인 일본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로 주목받고 있는 채종협은 ‘횹사마’로 불리며 이들의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채종협이 일본 팬들에게 어필하게 된 방식은 여러모로 배용준·장근석과는 다르다. 배용준·장근석이 마주한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은 사건에 가까웠다. 의도했다기보다 우연한 계기로 반응이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겨울연가’는 국내에서 방영될 때까지만 해도 욘사마 열풍이 생길 정도로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터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방영 당시 국내 반응은 다소 소소한 편이었지만 일본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거꾸로 역주행 효과를 누린 작품이었다. 하지만 ‘아이 러브 유’는 다르다. 이 작품은 현재 TBS와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고 일본과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반응이 쏟아진다. 특히 이 일본 드라마에 출연한 채종협이 횹사마로까지 불리게 된 건 우연이 아니고 다분히 이 작품이 의도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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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유’에서 채종협이 연기하는 윤태오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처럼 자신을 챙겨 준 일본인을 따라 일본에 유학 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멸종위기 동물을 연구하는 한국인이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초콜릿숍 사장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는 사랑이 시작된다. 이처럼 ‘아이 러브 유’는 아예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설정을 통해 한국 음식이나 언어 같은 한국 문화 자체를 드라마 속으로 가져오고, 일본 문화와의 차이를 오히려 매력으로 바꿔 놓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한국식 손가락 약속 장면이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손도장을 찍고 복사하는 우리 식 문화를 극 중 윤태오가 모토미야 유리와 시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일본 여성 시청자들의 반응이 폭발했다. 그 방식을 모르는 그녀에게 윤태오는 검지로 엄지손가락을 끌어 도장을 찍는 모습을 보여 줬는데, 일본 시청자들은 그 장면에서 마치 상대를 끌어당겨 껴안는 것 같은 설렘을 느꼈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작품은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궁금증이나 설렘 같은 걸 서사로 활용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좋아해’와 ‘사랑해’의 차이, 누나라고 부르는 것에 담긴 정서적 의미, “밥 먹었어?”라고 물어볼 때의 의미 등 같은 것들이다. ‘아이 러브 유’는 사고를 당한 후 모토미야 유리가 상대방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인물로 설정돼 있는데, 이 지점 역시 한국인인 윤태오를 그녀가 좀 더 편안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이유로 그렸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비즈니스로는 유용하지만,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어 가는 데는 오히려 불편한 기능이 된다. 그 사실을 고백하자 모토미야 유리의 전 남자친구는 이를 두려워하고 결국 떠나갔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는 일본인에게 그녀의 능력은 어떤 두려움과 불편함을 안겨 주는 것이다. 말은 일본어로 하지만 속내는 한국어로 떠올리는 윤태오는 그래서 모토미야 유리에게는 더 편안한 관계가 가능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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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오가 모토미야 유리를 보며 속으로 “귀여워”라고 한국말을 할 때 그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궁금해하다가 그 의미를 알아채곤 설렌다. TBS 본방에선 윤태오가 하는 이 한국말에 의도적으로 자막을 넣지 않는 전략을 썼는데, 그건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일본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인이 이런 한국말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만듦으로써 좀 더 드라마에 빠져들게 했던 것.
윤태오란 인물은 실제 한국 남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일본 여성들이 드라마를 통해 갖게 된, 한국 연하남 판타지가 극적으로 투영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일본 남자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대시하면서도 매너를 지키는 윤태오는 마치 끝없이 꼬리 치고 달려드는 ‘멍뭉미’의 인간화처럼 보인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저런 한국 남자가 어디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일본 팬들에게는 바다 건너에서 왔기에 오히려 그 판타지가 진짜처럼 여겨진다. 물론 거기엔 이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에 설득력을 부여한 채종협의 아우라가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이토록 ‘멍뭉미’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인물이라니!
채종협이 불러일으키는 ‘횹사마’ 신드롬은 달라진 현 시대의 문화적 풍경이 담겨 있다. 그건 글로벌화된 콘텐츠 시장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고, 그 위에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 같은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치는 지점에서 의외의 시너지가 만들어지는 그런 풍경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는 이 글로벌한 콘텐츠 환경 속에서 갈등을 야기하는 게 아니라 매력으로 어필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새로운 문화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생겨난 새로운 변화 위에서 채종협이 만들어 낸 ‘횹사마’라는 ‘현상’이 생겨났다고나 할까. 어쩌면 채종협이란 이름은 향후 콘텐츠 업계에서 불게 될 글로벌 협업의 성공사례로 계속 언급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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