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수색대 - 복제 M2 카빈 소총 시제품 1번
국방과학연구소 첫 사업 결과물
청계천 상가 등 뒤져가며 연구·설계
당시 10정 제작…9정 소재 불분명
현재 1정만 전쟁기념관에서 보관 대신
서양인 체형에 맞는 M1 개런드
작가 가벼워 휴대 편한 ‘카빈’ 선택
장착된 탄창은 15발 들어가는 모델
자동·반자동 모드 선택 가능 차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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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의 역사가 담긴 소장품을 소개하는 ‘박물관 수색대’. 오늘 소개해 드릴 무기는 ‘작지만 큰 한 걸음’으로 요약될 것 같습니다. 아무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한 달 반 만에 제작에 성공한 복제 M2 카빈 소총 시제품 1번이 그 주인공입니다. 우리 기술진의 열정과 기술력이 담긴 복제 M2 카빈 소총은 훗날 M16 소총의 라이선스 생산, 국산 소총인 K2 소총 제작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세상에 단 한 정만이 남은 M2 카빈 소총 시제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맹수열 기자
복제 M2 카빈 소총 시제품 1번은 현재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지하 총기 수장고에 보관돼 있습니다. 이 총기는 원래 국군정보사령부가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2021년 전쟁기념관과 국군정보사령부 사이의 업무협약(MOU)에 따라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지게 됐죠. 1971년 12월 복제 M2 카빈 소총 시제품을 제작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총 10정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이 시제품 1번 외에는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총기 자체가 가진 역사적 의미가 아주 큽니다.
M2 카빈 소총은 7.62㎜ 자동연발사격 방식입니다. 6·25전쟁은 물론 베트남전쟁, 가까이는 10여 년 전 예비군 훈련에까지 오랜 시간 사용된 총기죠. ‘카빈(Carbine)’은 경기병(Carabin)이 사용하는 소총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작고 가벼운 것이 특징입니다. 미국에선 주로 특수병과 장병들의 호신용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반면 M2 소총의 전신인 M1 개런드(Garand) 소총은 카빈에 비하면 상당히 덩치가 컸습니다. 서양인들에 비해 체구가 작았던 우리 장병들은 M1 개런드 소총 휴대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런 이유로 카빈 소총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M1과 M2의 가장 큰 차이는 ‘자동사격’ 여부입니다. M1 소총은 반자동 방식을 차용하고 있었는데 M2에 와서 비로소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이는 노리쇠를 당겨 장전하는 볼트액션 방식에 비해 전투 지속성 측면에서 상당히 큰 강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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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M2 카빈 소총을 만들게 된 계기는 여러 차례 설명해 드린 당시의 안보 상황과 맞물려 있습니다. 1·21사태로 불거진 북한의 도발 위협, 미군 철수 움직임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독자적인 무기 개발 능력을 갖추기 위해 ADD를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ADD의 첫 미션인 ‘번개사업’의 결과물이 복제 M2 카빈 소총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이 ‘따발총’, ‘파파샤’란 별명으로 유명한 PPSh-41 슈파긴 기관단총을 주력 개인화기로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 역시 자동소총으로 맞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이 녹아있다는 평가입니다. M2 카빈 소총이 위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음에도, 탄막으로 이를 보완하겠다는 전략도 담겨 있다는 후대의 분석입니다.
ADD 창설과 번개사업을 지시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카빈 소총 마니아라는 소문도 있는데요. 실제로 “태릉 국제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정부 각 부처 대항 사격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시범사격을 했다”는 뉴스 영상 등 박 대통령이 카빈 소총을 들고 사격하는 기록이 다수 있습니다. 마니아까지는 아니어도 애용했다는 정도는 사실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시제품 1번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시제품 1번에 장착된 탄창은 15발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모델입니다. 자동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30발이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고, 실제로 30발짜리 시제품용 탄창이 있지만 1번에는 장착되지 않았습니다. 이 탄창에는 고정대 역할을 하는 2개의 홈이 있는데, 30발짜리 탄창은 이보다 길고 무거워서 구멍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작동구조는 M1 카빈 모델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가스 블로우 백을 조절해 자동·반자동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전쟁기념관은 내부 점검 결과 본체는 M2보다 M1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개머리판 끝에 부착된 ‘칼빙 M2 試製品(시제품) 製作番號(제작번호) 1番(1번)’이란 황동각인도 시제품 1번만이 가진 특징이죠.
복제 M2 카빈 소총 시제품 1번은 우리 방위산업의 우수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ADD 연구진에 ‘두 달 안에 M2 카빈 소총을 복제하라’는 임무가 주어진 것은 1971년 11월. 이때만 해도 ADD는 창설 초기라 아직 완벽히 체계가 자리 잡히지 않았고, 국내에는 전혀 총기 생산 기반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M2 소총과 동일한 성능을 갖춘 복제품을 만든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연구진은 청계천 상가를 뒤지고, 미군에 자료를 요청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설계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예정 기일보다 2주가량 빠른 12월 중순 제작에 성공, 사업을 종료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는 연구진의 열정과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었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M2 카빈 소총의 복제는 단순한 복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해 순식간에 복제에 성공한 우리 연구진의 능력에 주목한 미국은 결국 M16 소총의 라이선스 취득을 허락했습니다. 현재 우리 장병들의 손에 들린 K2 소총은 이런 노력이 집약돼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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