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염원 담아 도입한 건국기 애국심 품은 조종사 588명 양성

입력 2024. 02. 21   15:50
업데이트 2024. 02. 21   16:43
0 댓글

모형으로 만나는 항공기 세상 - 하버드 Mk2 & AT-6G 텍산

구국의 신념으로 3억5000만 원 모금
캐나다산 하버드 Mk2 10대 구입 결정
기관총·탄약·부속품·연료 함께 도입
이탈리아 이탈레리 출시된 키트 구입
건국기·훈련기 버전 2가지 모두 제작
배기구·캐노피 형상 차이점 두드러져

필자가 제작한 하버드 Mk2 기체로 라운델 및 은색 기체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필자 제공
필자가 제작한 하버드 Mk2 기체로 라운델 및 은색 기체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필자 제공

 

필자가 제작한 AT-6G 기체로 라운델 및 수직미익의 스트라이프 패턴을 볼 수 있다.
필자가 제작한 AT-6G 기체로 라운델 및 수직미익의 스트라이프 패턴을 볼 수 있다.



한민족에게는 고대로부터 구국의 DNA가 존재하는 것 같다. 신라 화랑도, 고려 삼별초, 조선 의병, 일제강점기 광복군 등 민족의 위기 앞에서 이 DNA는 우리 민족을 구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1949년 10월 육군으로부터 분리돼 독립한 공군은 공군력의 절대적 요소인 전투기 확보가 절실해지자 미국 정부에 전투기 원조를 여러 번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한국이 과도한 군비(軍費)로 경제적 부담을 져서는 안 된다며 거절했다. 그보다는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북진 외침을 더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미국 측의 이런 냉담한 반응에 한국 정부는 항공기를 자력으로 구입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1949년 9월 범국민적인 애국기 헌납운동을 선언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해 총 3억5000만 원을 모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성금으로 수소문 끝에 캐나다에서 생산한 ‘AT-6G 텍산(Texan)’ 고등연습기 10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항공기에 탑재하기 위한 M2 기관총 20정과 탄약 5000발, 1년분 부속품과 연료도 함께 구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텍산 항공기는 여러 나라의 형식을 갖고 있는 기체다. 캐나다에서 라이선스 생산된 기체의 정확인 명칭은 ‘하버드(Harvard) Mk2’로 후일 추가로 도입하는 AT-6G와는 형식이 약간 다르다.

1950년 5월 국민 성금으로 도입한 하버드 Mk2 항공기 명명식이 이승만 대통령과 국내외 귀빈, 학생과 시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기지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날 서울 상공을 편대 비행하는 하버드 Mk2를 본 이 대통령은 “이 비행기 10대는 전국의 동포가 자기 주머니를 털어 산 것이므로 각 도를 대표해 이름을 지어 비행기를 사는 데 희생적인 공헌을 한 사람들의 정신과 애국심을 표시하게 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이에 국가 건설과 국민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건국기’라고 총칭하고, 각 항공기는 다음과 같이 명명했다.

건국기 제1호(교통 제1호), 건국기 제2호(전남학도 제1호), 건국기 제3호(전북학도 제1호), 건국기 제4호(전매 제1호), 건국기 제5호(충남 제1호), 건국기 제6호(체신 제1호), 건국기 제7호(국민 제1호), 건국기 제8호(농민 제1호), 건국기 제9호(전남 제1호), 건국기 제10호(경북 제1호).

이처럼 많은 역경 속에 구입한 하버드 Mk2 건국기는 6·25전쟁 초기에는 폭격작전에 투입됐으며 주로 정찰, 대지 공격, 조종사 훈련용으로 운용됐다. 1950년 7월 F-51 머스탱 전투기가 한국 공군에 도입되기까지 전투기 겸 조종사 훈련기로 사용됐으며, 1962년 12월 퇴역할 때까지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한 항공기가 됐다.

필자는 건국기를 제작하고자 여러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초창기 도입 당시 기체와 향후 연습기로 사용되던 기체 형식이 다름을 확인하고 두 가지 버전을 제작했다. 초기 버전인 캐나다에서 생산된 하버드 Mk2와 미국에서 도입한 AT-6G 텍산, 두 기체의 외형적 차이가 몇 가지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배기구다. Mk2는 동체 중간까지 길게 확장된 배기구를 갖고 있는 반면 AT-6G의 배기구는 상대적으로 짧다. 두 번째는 캐노피 프레임의 형상과 프레임의 개수 차이다. 사실 이전에도 여러 번 건국기를 제작했지만 기존 AT-6G를 일부 수정해 Mk2를 재현했었다. 하지만 캐노피 형상의 차이점은 두 키트를 놓고 비교하기 전에는 알기 힘들었고, 수정해 제작하기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제작을 위해 키트는 이탈리아의 제작사 이탈레리에서 출시된 48분의 1 AT-6G 두 대를 구입했다. 시작 단계에서 캐노피 형상 문제로 고민하던 중 지인이 갖고 있던 이탈레리 48분의 1 하버드 Mk2 키트를 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한민국 공군의 초기 버전인 건국기와 훈련기 버전의 AT-6G 버전 두 가지 모두를 제작할 수 있었다.

항공기 프라모델 제작사인 이탈레리는 오랜 전통을 지닌 회사이기는 하나 디테일과 부품 간 조립성이 떨어지고, 플라스틱 강도 문제도 있었다. 이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데칼(스티커의 일종)의 다양성인데, 본작업에선 항공기 데이터 마크 외에는 사용하지 않으니 키트의 장점은 없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두 대를 동시에 작업하기 위해 파트 부품이 섞이지 않도록 나눠 러너에서 분리하고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탈레리 키트의 특징은 부품들의 미성형이나 성형 찌꺼기가 많아 다듬는 작업이 필수다. 이후 작업은 큰 문제가 없었으나 실기체와 디테일 부분을 확인하면서 수정 혹은 추가 작업을 위해 부품 제작이 진행됐다.

구국의 신념으로 모금을 해 구입한 건국기.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항공기를 제작하면서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작업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스케일이 큰 건국기를 다시 한번 제작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작업이었다.


건국기 제1호 교통호 모습. 사진=국방홍보원 블로그
건국기 제1호 교통호 모습. 사진=국방홍보원 블로그



외형적 특징 비교

하버드 Mk2 
1. 전체적으로 은색의 동체에 태극마크가 크게 그려져 있는데, 공식 라운델이 적용되기 전이라 태극마크의 양 날개 부분이 없다. 
2. 수직미익에는 K마킹이 굵은 글씨로 써져 있다. 
3. 동체 중간에는 건국 글씨와 10개의 모금 단체명이 그려져 있다.
4. 엔진 머플러가 우측에 길게 나와 있다.
5. 캐노피 프레임이 잘게 나뉘어 있다.

AT-6G 텍산 
1. 전체적으로 은색의 동체에 대한민국 공군의 정식 라운델이 적용돼 그려져 있다. 
2. 수직미익에는 기체 번호와 적색 스트라이프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는 훈련기를 의미한다.
3. 동체 중간에는 영문으로 대한민국 공군과 훈련기 번호가 굵은 글자로 써져 있다.
4. 엔진 머플러가 우측에 짧게 나와 있으며 캐노피 프레임이 Mk2보다 적다.


필자 유승용은 동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이며, 항공기 관련 스케일 모델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ROKAF COLORS VOL.1 대한민국공군 특수비행팀 블루세이버 1956~1966』 등이 있다.
필자 유승용은 동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이며, 항공기 관련 스케일 모델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ROKAF COLORS VOL.1 대한민국공군 특수비행팀 블루세이버 1956~1966』 등이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