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공군39비 서예동아리 ‘문방스케치’

입력 2023. 12. 07   16:34
업데이트 2023. 12. 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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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길 따라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오늘도 묵묵히 갈고 쓴다


점과 획으로 표현하는 병영 생활 
좋은 의미 담긴 글 적어주며 전우애 쌓아
한 글자 한 글자 집중…정신력에 도움 
군 생활도 마음만 앞서면 실수하기 마련
부대 곳곳에 걸린 작품 ‘뿌듯’ 
“전시회에 걸리다니” 자신감도 충전
예쁘게 쓰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마음으로 쓰는지가 중요할 뿐

공군39비행단 ‘문방스케치’ 동아리원들과 여민 손용현 선생이 서예 활동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군39비행단 ‘문방스케치’ 동아리원들과 여민 손용현 선생이 서예 활동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언제라도 일촉즉발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는 군인에게는 냉정한 판단력과 고도의 순발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군인도 인간인지라 마음만 급하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항공기 정비 임무를 수행하는 공군39비행단 131정비대는 자체적으로 서예(書藝) 동아리를 만들어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점과 획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며 장병들의 ‘정신근육’을 키우고 있는 131정비대의 서예동아리 ‘문방스케치’를 소개한다. 김해령 기자/사진=부대 제공


서예. 말 그대로 ‘글로 행하는 예술’이다. 문방스케치도 장병의 사상·감정을 붓글씨로 표현하면서 정서 함양, 명랑한 병영문화를 조성하고자 만들어졌다. 하지만 문방스케치는 단순히 예술 표현에만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군 본연의 임무인 ‘전투 준비태세’와도 연관돼 있다.

정비대 장병들은 완벽한 항공작전 지원을 위해 매 순간 집중해야 한다. 순간의 실수가 인명피해를 동반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문방스케치에서 서예 기본기를 다지고 깊은 가르침을 받으며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고 집중력과 섬세함을 기르고 있다.

문방스케치 동아리를 만든 131정비대 전운표 주임원사는 “보통 정비업무를 할 때는 안전하면서도 정확한 정비 지원을 하기 위해 모두가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한다”며 “그때 경직된 몸이나 마음을 서예 활동으로 해소하고, 실제 업무를 할 때도 이런 소양이 많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문방스케치는 전 주임원사가 중심이지만 동아리장은 초급간부들이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지민 중사가, 올해는 김지연 하사가 리더 역할을 수행 중이다. 현재 고정 동아리원은 병사·간부를 합쳐 15명이다. 하지만 정비 일정에 따라 추가로 참여하고 싶은 부대원들이 중간중간 동참하고 있어 유동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 동아리장은 “부대원들이 서예 강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며 “계급을 떠나 모두가 함께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어 부대 내 화목한 분위기 조성에도 이바지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주임원사는 애초 동아리를 만들기보다는 단기적인 외부 강사 초청강연 정도로만 운영할 계획이었다. MZ세대가 잘 접하기 어려웠던 서예의 기초를 닦고 전문적인 이론을 배우면서 옛 문화를 익히고 이어 나가자는 취지였다.

그러다 관심을 갖는 인원이 점차 많아졌고, 자연스레 동아리가 구성돼 주기적으로 서예를 접하고 직접 붓을 잡아 보는 환경까지 만들어졌다.

전 주임원사는 “점과 획을 이용해 병영 생활을 표현하다 보면 부대원에게 보다 뜻깊은 군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인원을 모집하게 됐다”며 “이제는 서로에게 좋은 의미가 담긴 글자를 적어 주면서 서예를 통한 소통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고 부연했다.


전 131정비대장인 최주영 중령이 동아리 활동에 참여해 남긴 서예 작품.
전 131정비대장인 최주영 중령이 동아리 활동에 참여해 남긴 서예 작품.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는 ‘문방스케치’ 동아리원들.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는 ‘문방스케치’ 동아리원들.



동아리 활동시간은 매주 화·목요일 일과를 마친 뒤 한 시간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비행 일정 등이 추가되는 일이 많은 정비대 특성상 모임은 유동적으로 운영된다.

문방스케치는 서예 전문성을 키우고자 매달 1회 외부 강사로 여민 손용현 선생을 초청해 붓 잡는 방법부터 간단한 문장을 쓰는 법까지 서예 기초를 배우고 있다. 강의 내용을 토대로 동아리 모임 시 각자 연습해 보는 시간도 갖는다.

서예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장병들은 붓 잡는 법을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一(한 일)’ 자부터 한 자 한 자 새하얀 한지에 써 내려간다. 처음에는 모두 붓 잡는 법뿐 아니라 글자 한 획을 긋는데도 영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집중해 붓을 올바르게 잡고 한 글자씩 무수히 써 내려가다 보면 누구라도 어느새 제법 글씨다운 글씨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동아리원 정상수 하사는 “한 글자를 쓰더라도 마음을 낮추고 한곳에 집중하는 게 바로 서예의 시작과 끝이라는 가르침을 깨닫고 나서야 미숙하게나마 붓글씨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며 “마찬가지로 군 생활도 맡은 임무를 마음만 앞서 급하게 처리하면 실수가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동규 병장은 “서예뿐 아니라 글씨 쓰기 전에 인문학을 배우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익혔던 것 중 ‘충(忠)’과 ‘서(恕)’가 기억이 남는다”며 “각각 하나하나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을 의미하고,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배웠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글자이고 ‘충’과 ‘서’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리원들이 남을 존중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말자는 목표를 갖고 쓴 한글 ‘겸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동아리원들이 남을 존중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말자는 목표를 갖고 쓴 한글 ‘겸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식 동아리 운영이 2년째 이어지면서 제법 멋진 서예 작품이 여러 개 나오기도 했다. 동아리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부대 내부 벽 곳곳에 게시해 부대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병영도서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한 해 동안 써 내려간 부대원들의 서예 작품을 선보이며 전 부대원과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올해는 매 활동 시 39비행단 홈페이지 ‘행복합시다’에 동아리 활동사진과 작품을 실어 일과 중에도 부대원들이 열람할 수 있게 했다.

김 동아리장은 “강사님께서 ‘예쁘게 쓰지 않아도 된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어떠한 의미를 담고 어떠한 마음으로 쓰는지가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며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한 가지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서예 활동을 통해 다시금 군 생활의 교훈으로 깨닫고 있다. 서예를 하면서 부대원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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