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6건 → 2021년 84건 → 2022년 92건. 국민 배심원이 참여하는 형사재판인 국민참여재판의 최근 3년간 실시 건수다. 2013년 345건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여파로 다중이 모이기 어려웠던 사정을 고려해야겠지만, 공중보건 위기 상황이 한결 나아진 지난해에도 국민참여재판이 그리 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국민참여재판 대상으로 정하는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함이 원칙이다. 그런데 법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의 일정한 사유가 존재한다면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결정, 즉 배제 결정을 할 수 있다.
‘적절하지 아니하다’는 기준에 대해서는 법원에 지나치게 많은 재량을 부여한다는 비판이 있고, 절차 지연을 위한 수단으로 제도를 악용함을 막기 위해 필요한 장치라는 견해도 있다. 사건의 특성을 기준으로 본 배제 사유는 전부 혹은 대부분 자백한 사건 기타 특별한 쟁점이 없는 사건의 경우, 신문할 증인이 너무 많거나 쟁점이 복잡하거나 장기간 심리가 예상되는 사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너무 간단한 사건, 너무 복잡한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 부적절하다고 볼 소지가 다분하다. 예외가 폭넓어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느낌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배제 사유를 구체화하는 방향이 제안된다.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권리를 분명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고도의 법리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경우 등으로 배제 사유를 한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법원이 피고인의 의사에 반해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하려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아무래도 품이 많이 든다.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돈도 많이 써야 한다. 여러 날에 나눠 진행할 재판을 가급적이면 하루 안에 마쳐야 하므로 긴장감도 높다. 최근에는 국민참여재판의 심리에 충실하기 위해 심야까지 무리하게 재판하기보다는 여러 날에 걸쳐서 재판을 여는 방법이 제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배심원들도 하루에 끝나는 재판을 선호하리라 추정되고, 파격적인 보상 같은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배심원의 부담을 가중하는 형태의 절차 진행은 호응을 얻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판사, 검사, 변호인 모두가 공판준비절차에 정성을 들여 배심원의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현시점의 대안인 듯싶다.
영국은 2003년 중대하거나 복잡한 사기죄 사건(Serious or Complex Fraud Case) 재판은 배심원의 참여를 배제하도록 규정했다가 2012년에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일본은 2009년 배심제에 가까웠던 종전 방식을 변경해 일반 국민 중 선임된 재판원이 판사와 함께 심리하는 참심제에 가까운 제도를 시작했다.
이러한 사례에서 나라마다 국민이 사법에 참여할 적정한 수준을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배심제 또는 참심제 등 다양한 형태로 국민이 사법에 참여 가능한 방법을 궁리해 온 까닭은 사법권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를 모색하되 국민이 직접 사법권을 행사하는 길을 어느 정도 열어둠이 마땅하다. 배심원이 법관보다 범죄 성립 여부를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관찰된다는 실증적인 연구 결과처럼 다채로운 경험을 겪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이 재판에 반영되는 순기능을 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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