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군대이야기' 북한 도발 시리즈 ①천안함 피격사건

입력 2023. 10. 31   17:45
업데이트 2023. 11. 2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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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어뢰 피격…함체에 고스란히 남은 증거들
2010년 천안함 침몰 집중 조명
최원일 당시 함장·최정준 박사 출연
여러 증거 보며 다양한 오해 풀어
5개국 전문가 민군합동조사단 구성
과학적 근거 바탕 북 소행 사실 밝혀
“음모론 여전, 진실 수호가 더 힘들어”

그날군대이야기 화면 캡처.
그날군대이야기 화면 캡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하는 장병들에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강한 정신전력입니다. 강한 정신전력은 적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에 국방홍보원은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와 함께 최근 북한의 도발 역사를 되짚어 봅니다. 정전협정 이후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포격한 최초의 사건인 연평도 포격전이 발발했던 11월을 맞아 국방TV를 통해 ‘그날군대이야기 특별편 북한 도발 시리즈 4부작’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1일 천안함 피격사건을 시작으로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 등 북한 도발사를 ‘그날군대이야기 특별편’ 방송 일정에 맞춰 소개합니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서남방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은 북한군 중어뢰에 피격돼 두 동강 난 채 침몰했다. 당시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한 천안함 피격사건이다.

‘그날군대이야기 북한 도발 시리즈’ 첫 회 천안함 피격사건 편에선 당시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예비역 해군대령) 326호국보훈연구소장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최정준(선임연구원) 박사가 화자로 출연한다. 두 사람은 육·해·공군과 해병대 장병들에게 당시 사건을 설명하고, 1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한 오해를 하나씩 해소해 나간다.

육군6보병사단 옹성우 일병, 해군본부 이규빈 대위, 공군사관학교 이하은 중위, 해병대2사단 김민규 하사가 청자로 등장한다. 영상 속 배경은 해군2함대에 있는 천안함기념관. 실제 피격됐던 천안함이 전시된 곳이다. 어뢰 폭격으로 함정 곳곳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찢긴 모습이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게 한다.


그날군대이야기 화면 캡처.
그날군대이야기 화면 캡처.



1987년 건조된 1000톤급 초계함(PCC) 천안함은 당시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사건 당일 저녁 9시22분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몸이 30㎝ 정도 붕 떴다가 떨어졌습니다. 외부로 나왔을 때 함미가 사라지고 함정이 두 동강이 나 있었죠.” 최 전 함장의 기억이다.

북한군은 1970년 이후 지속해서 서해 도발을 자행해 왔다.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대표적이다.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하기 4개월 전인 2009년 11월엔 대청해전이 있었다. 북한 경비정 1척이 NLL을 침범해 발발한 대청해전은 우리 해군이 대승을 거둔 전투다. 아군은 부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북한 경비정은 반파된 채 북상했다. 최 전 함장은 “대청해전에서 패배한 북한군이 보복하기 위해 천안함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천안함 피격에 대한 여러 의혹이 존재한다. 영상에서 최 박사는 전시된 실제 천안함에 남아 있는 여러 증거를 가리키며 오해를 하나씩 풀어간다. 먼저 천안함이 암초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좌초설’에 대해 최 박사는 “천안함은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고 좌우로는 움직이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암초에 걸리면 함정 밑부분이 세로로 찢어져야 하는데 천안함은 중앙 부분만 가로로 절단돼 있다. 또 좌초됐다면 함정 앞부분 소나돔이 파손될 수밖에 없는데 지금 소나돔은 멀쩡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 전 함장은 “사건 지점은 천안함이 수백 번 이상 기동한 해역인데 해당 지점에는 암초가 없다”고 부연했다.

두 번째 의혹은 ‘충돌설’이다. 천안함이 이스라엘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일각의 주장이다. 하지만 천안함 어디에서도 충돌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최 전 함장은 “지금까지 수상함이 잠수함과 충돌해 두 동강 난 사례는 없다”며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적으로 ‘본국엔 핵추진 잠수함이 없다, 본국 잠수함이 한반도에 간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날군대이야기 화면 캡처.
그날군대이야기 화면 캡처.



세 번째 의혹은 ‘천안함 내부 폭발설’이다. 내부 폭발이 아니라는 증거는 천안함 중앙 밑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 동강 난 천안함 밑부분이 아래에서 위로 휘어진 것. 최 박사는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바깥쪽으로 터져나가는 형태로 철판이 안에서 바깥쪽으로 휘어야 하는데 바깥에서 안쪽, 한 방향으로 휘었다는 건 내부폭발이 아니란 결정적 증거”라고 말했다. 최 전 함장은 “천안함을 인양한 후에 내부에 남아 있는 탄약을 수거했는데 폭발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천안함 피격의 진실은 뭘까. 당시 우리 정부는 사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영국·호주·스웨덴 총 5개 나라 전문가로 구성된 민군합동조사단을 꾸렸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사진, 영상을 비롯한 증거물을 수집하고 폭발 유형을 분석한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천안함이 북한군 중어뢰 공격으로 피격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어뢰가 수중폭발하면서 버블제트가 분출돼 천안함이 두 동강 났다는 것이다. 이를 말해주는 증거 역시 천안함 함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 박사는 함정 밑바닥에 있는 동글동글한 자국을 가리키며 “이 자국들을 버블흔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당시 외부에서 아주 강력한 수중 폭발이 있었단 명백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어뢰는 함정을 직접 타격하지 않고 함정 아래에서 폭발한다. 이때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고압의 가스 버블이 발생한다. 물로 전파된 충격파가 함정 밑바닥을 때려서 손상을 주는 동시에 엄청나게 거대한 버블이 함정 아래서 팽창, 수축, 재팽창 과정을 거쳐 결국엔 버블제트가 분출, 고압의 물대포가 함정을 날려버리는 방식이다. 최 전 함장은 “어뢰 1발로 천안함보다 3배나 큰 4000톤급 호위함 함체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는 영상을 미 국방부가 공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천안함 피격사건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있다. 천안함 잔해물을 인양하면서 어뢰추진 동력장치를 찾았는데 이 장치는 북한이 2002년 수출용으로 개발한 CHT-02D 중어뢰 설계도면과 일치했다. 이 어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이라는 푸른색 글자가 한글로 표기돼 있는데 이는 2003년 국군이 수거한 북한군 훈련용 어뢰에 검은색으로 ‘4호’라고 표기된 것과 유사하다.

윤종성(예비역 육군소장) 전 민군합동조사단 과학수사분과장은 “사력을 다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혔으나 여전히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나온다.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진실을 수호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수호하다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전사한 46명의 장병은 물론 58명의 생존 장병도 기억해야 한다. 당시 이들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임무를 수행했으며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옆의 전우를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아직까지 전사한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최 전 함장은 “구조되는 과정에서 먼저 살겠다고 나서는 승조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로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부상한 환자와 계급이 낮은 승조원부터 먼저 구조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전우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출연자들은 천안함 46용사 추모비 앞에서 13년 전 서해를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한 천안함 46용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출연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이규빈 대위는 “북한군이 많은 도발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끔찍한 수준으로 도발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며 “서해를 지키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다가 전사하신 분들의 희생정신을 본받아서 항상 대비태세를 갖춘 국군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민규 하사는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적이 북한임을 명심하고 군 복무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안승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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