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 전문가로 거듭나다
2014년 유재기 준위와 아내 이선희 군무주무관 결성
로스팅부터 핸드드립·드립백 제작까지 ‘파고 또 파고’
회원 30여 명 바리스타 자격 취득…선배들 후원도 한몫
잠에서 덜 깬 직장인이 습관처럼, 또는 점심을 먹은 후 친구와 담소를 나누기 위해, 혹은 야근 때 둥그렇게 떠 있는 달을 보며 동료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찾는 것. 어느새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커피다. 어디든 상관없으니 그저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은 날엔 떠오르는 도시도 있다. 강원도 강릉이 바로 그곳. 산과 바다, 커피는 무조건 봐야 한단 말이 있을 정도로 강릉 커피는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공군 강릉기지 곳곳에 커피 향이 가득하다. 강릉에 있는 부대에 딱 어울리는 동아리, 공군18전투비행단(18전비) ‘커피동아리’를 소개한다.
취향 저격 향·맛 찾으며…다 함께 커피타임
가을 햇살에 강릉 바다의 윤슬이 반짝이던 어느 토요일 오후 1시 공군 강릉기지. 살짝 열린 부대 동아리방 문틈 사이로 향긋한 커피 향이 뿜어져 나왔다. 매주 토요일은 18전비 커피동아리 활동이 있는 날이다. 동아리원 전체가 모여 로스팅부터 드립, 드립백 제작까지 한다.
특히 제조 과정에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커피 향과 맛 차이를 느끼며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 맛을 연구한다. 무엇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커피 레시피를 찾아가고 있다. 로스팅 과정부터 대륙·나라·농장별, 드리퍼(여과필터와 원두를 고정하는 깔때기), 정수기·생수 등 물 종류, 물 온도, 커피 분쇄도까지 다양한 향과 맛을 비교한다.
커피동아리는 단순 연구활동에 그치지 않고 커피를 사람들과 나누고 즐기는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봉사활동은 핸드드립으로 만든 커피를 제공하거나 핸드드립법을 알려 주는 체험행사 방식으로 진행한다. 매년 해맞이 행사와 스페이스챌린지, 병사의 날, 공군작전 전승기념행사 등 비행단 행사 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 달 1일 전승기념행사 때도 지역주민과 부대원에게 핸드드립법을 알려 주고, 본인이 내린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부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군인·군무원 부부의 커피 사랑으로 탄생
커피동아리는 2014년에 만들어졌다. 커피를 향한 18전비 유재기 준위의 사랑과 열정이 시작점이다. 현재는 그의 아내이자 동료인 이선희 군무주무관이 동아리 운영을 맡고 있다.
2010년 강릉에서 근무하게 된 부부는 강릉 커피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접하고 인근 문화센터로 향했다. 이들은 곧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본격적으로 커피를 배웠다. 부부는 비행단 면회실의 빈 공간에 작은 카페를 설치하자고 부대에 건의했다. 이에 따라 마련된 카페는 한국장애인개발원과 창업형 일자리지원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카페는 커피동아리 탄생의 배경이 됐다.
이 주무관은 “어느 날 장애인 직원을 도와줄 커피를 잘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비행단 안에 김유신 등 신라의 화랑이 차를 마시던 오래된 차 유적지인 ‘한송정’이 있는데, 그런 강릉의 전통을 잇고 특성을 살린 동아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그렇게 남편과 함께 커피동아리를 만들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동아리 가입하려면…“줄을 서시오!”
커피동아리는 병사 15명, 영외자 15명으로 한정해 운영된다. 로스팅, 드립 등 실습이 많은 동아리의 특성상 많은 인원을 수용하지 못해서다. 공석이 발생하면 대기 순으로 입회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 주무관은 “동아리 병사가 핸드드립법을 배워 휴가를 나가 부모님께 커피를 내려 줬더니 행복해하셨다는 얘기나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드립백으로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부대 안팎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커피동아리는 ‘좋은 경험’을 뛰어넘어 장병들에게 ‘실질적인 도움’도 주고 있다. 커피동아리는 가톨릭관동대 링크사업 예산을 받아 동아리원들에게 무료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도록 돕고 있다. 지금까지 30여 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군사경찰대대 장재환 병장은 “그저 커피가 좋아 가입했던 동아리에서 자격증도 따고, 사람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며 “같은 원두와 도구로 내린 커피 맛이 내린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을 보고 인간관계에서도 다른 사람의 특징을 인정해야겠다고 느꼈다”는 감상을 전했다.
현직 바리스타들 사이에서 당당히 4등
커피동아리는 취미활동을 넘어 전문성을 갖춘 체계적인 동아리로 성장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바리스타로 유명한 박이추 선생의 수제자이자 골든커피어워드 조직위원장인 커피 실력자 ‘보헤미안박이추커피’의 황광우 실장은 특강을 통해 커피동아리원에게 드립법을 전수하고 있다. 황 실장은 1990년대 초 18전비 공보실 병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황 실장은 “군에서 취미생활을 찾아 즐기는 후배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 대견해 하나라도 더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또 황 실장은 ‘병사의 날 행사’에 동아리 병사들이 사비를 털어 행사를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두와 물품을 지원하는 등 후배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지역 커피대회에서 동아리원이 수상하는 성과도 거뒀다.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강릉커피축제 때 열린 강릉핸드드립커피어워드에서 수송대대 조성우·김형준 일병이 각각 4·5등을 기록한 것이다. 1등은 카페 운영자가 차지하고, 그 밖에도 현직 바리스타나 대학교 바리스타학과 교수 등 쟁쟁한 인물들이 참가한 대회에서 당당히 달성한 기록이다.
조 일병은 “전투복을 입고 대회에 참가하니 모든 관객이 박수를 보냈다”며 “국민을 지키는 군인이라는 자부심에 정성을 다했더니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고 비결을 밝혔다.
부대 배려·지지로 성장한 커피동아리
커피동아리가 이렇게 전문적인 동아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부대 측의 배려와 지지 때문이다. 올 초 공보정훈실의 배려로 커피동아리 방이 새롭게 생기면서 동아리 환경이 더욱 쾌적해졌고, 이에 따라 동아리 활동도 활성화됐다.
더욱이 지난주 강릉커피축제 참가는 부대 지원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이 주무관은 “병사들이 영외에 나가 활동하는 건 지휘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고 감내해야 할 일이 많다”며 “그럼에도 흔쾌히 보내 준 지휘부와 모든 부대원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홍균(준장) 비행단장은 “커피를 통해 시민들 가까이에 든든한 공군이 있음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며 “보람차고 행복한 병영생활과 지역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비행단 건설을 위해 더 많은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해령 기자/사진=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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