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경비대장에게 살해당했다. 얼마 전 젊은 후처를 들인 아버지를 증오하는 어머니가 몰래 시킨 짓일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까? 바람피우는 아버지를 꺼리고 야심 찬 어머니를 따르던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6년, 스무 살의 나이에 필리포스 2세에 이어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랐다. 알렉산드로스 3세, 널리 알려진 ‘알렉산더 대왕’이다.
호사로운 아버지는 아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선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아들은 귀족 자제들과 함께 3년 동안 호화로운 교육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에서 왕조를 세운 프톨레마이오스도 이때 같이 배운 친구다. 아들은 스승이 필사해 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베개 아래 깔고 잘 정도로 탐독했다. 아킬레우스를 외가 쪽 먼 할아버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야심만만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끝없는 야망의 불을 지폈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아킬레우스처럼 페르시아를 정벌하라는 사명이다. 스스로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라고 여겼던 여장부 어머니는 아들을 가졌을 때 품속에 떨어진 벼락이 온 세상을 환하게 불태우는 꿈을 꿨다. 아들이 확장한 헬라제국에서 피어오른 헬레니즘(Hellenism)의 태몽이었을까?
대왕은 술을 끼고 살았다. 하루에 와인을 원액으로 4L씩이나 마셨다. 권력을 잡기 위해, 또 다지기 위해 흘린 피가 그렇게 많았을까? 페르시아와 이집트에 이어 인도 원정에 나서면서 마케도니아의 시노마브로 품종 레드와인을 전쟁터까지 실어 나르며 마셨다. 스스로 ‘아킬레우스의 후예’, 곧 신의 아들이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와인은 아킬레우스가 즐겨 취한 술이다.
정말 아킬레우스를 닮았을까? 아킬레우스는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격노해 트로이전쟁에 말려들었고, 결국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도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같이 배운 단짝 헤파이스티온이 갑자기 병사했다. 열병에 걸렸는데도 와인을 퍼마신 탓이다. 친구의 죽음에 상심한 대왕은 몸과 맘이 갑자기 쇠약해졌다. 기원전 324년의 일이다.
이듬해 대왕은 모기에게 물렸다. 유프라테스강이 홍수로 범람할 것에 대비해 배를 타고 바빌론 서쪽 늪지대를 둘러본 게 화근이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말라리아가 횡포를 부리는 곳이다. 인도 원정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풍토병이 많은 인도에서 모기에게 물렸다는 추측도 있다. 말라리아가 아니라 장티푸스에 걸렸다는 주장도 있다.
잠복기가 얼마나 지났을까? 대왕도 열병으로 드러누웠다.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2세의 궁전에서 아무리 열이 나도 대왕은 꿋꿋하게 목욕하고 제사를 지내고, 매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아킬레우스의 후예’는 건재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건강을 걱정하는 장교들의 문병을 받고, 대왕은 와인을 큰 잔에 부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원액 6.5L다. 그런데 바로 이틀 뒤부터 대왕은 와인을 찾지 않았다. 향년 32세.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정복하려고 하는 사람이 옆자리로 가는 것도 못해 넘어지다니!” 아들은 술자리에서 취해 넘어진 아버지를 조롱했다. 후처를 들이면서 왕위 계승을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중해에서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한 영웅이 어떻게 모기 한 마리를 당해 내지 못했을까? 아킬레우스가 급소에 화살을 맞았듯 대왕도 모기에게 혹시 발뒤꿈치를 물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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