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어만 잘했다면 인생이 달랐을 텐데. 영어 좀 잘했으면 좋겠어!”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는 선배의 말이 가끔 생각나 피식 웃는다. 이 선배가 대학교 때 어학당을 얼마나 성실하게 다녔는지, 언론사 입사 시험을 위해 토익·토플을 얼마나 끼고 다녔는지, 가족과 영미권 국가에서 몇 년간 체류했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한다’는 기준은 각자의 실력과 목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제까지 만난 남녀노소 중 영어를 잘하고 싶고 영어 공부에 관심 있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눠 보고 싶어서, 좋아하는 책을 원서로 읽고 싶어서, CNN 뉴스를 이해하고 싶어서 등 다들 현재보다는 영어 실력이 향상되길 원한다. 물론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해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결국 드라마에만 몰입하다 끝났다는 식의 실패기도 종종 듣는다.
그렇다면 영한 출판번역가는 영어를 잘할까? 자신이 번역한 책의 저자가 왔을 때 강연장에서 “헬로!”만 하고 말을 붙일까 봐 얼른 도망 나왔다는 번역가 얘기에 깊이 공감했다는 정도만 이야기해 두자.
회화 같은 실용영어에는 자신이 없는데, 태국여행을 가서 영어를 했더니 중국어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우연히 취미로 삼은 일이 영어와 친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 근래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있으니 바로 영어 팟캐스트 듣기다.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올 이어스 잉글리시(All Ears English)’ 같은 팟캐스트보다는 이야기와 정보가 있는 방송을 권한다.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배우들이 낭독하는 ‘모던 러브(Modern love)’를 지하철에 타거나 산책할 때 들었고, 설거지하면서 미국 공영라디오(NPR)의 ‘업 퍼스트(Up First)’를 청취하며 미국 정치 이슈를 대략이나마 파악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기자 마이클 바바로의 ‘더 데일리(The Daily)’에도 배울 내용이 많다.
가장 즐겨 듣는 방송은 영화와 드라마 등 화제의 대중문화 이야기를 전하는 ‘팝 컬처 해피 아워(Pop Culture Happy Hour)’로 BTS나 뉴진스에 대한 분석이 올라오기도 해 흥미롭다. 기본 실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공부 방법은 맞지만, 어휘 학습도 병행하다 보면 분명 일상에서 자주 쓰는 문장이 귀에 익고 내 입에서도 나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노’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뉴욕대 정치학과 유혜영 교수(현 프린스턴대 교수) 또한 유학 초반에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온종일 이어폰을 끼고 영어 방송을 들었다고 하니 팟캐스트 청취에 더 신뢰가 갔다.
몇 달 전 드디어 영어 실력을 점검할 기회가 왔다.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 영국에서 일하는 친구와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평소 수다스러운 나는 그날 온화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경청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왔다. 그래도 모든 농담에 웃었으니 팟캐스트가 무용하진 않았던 걸까? 요즘엔 작업공간이 있는 홍대 부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을 때 다가가 길을 가르쳐 주고 싶기도 하다.
오늘도 영어 단어를 찾고 영어 팟캐스트를 들으며 꿈을 꾼다. 유창한 영어로 번역한 책의 저자와 대화의 꽃을 피우는 나. 그 자아는 다른 우주에 있는 걸까? 언제쯤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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