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정의로운 특수부대…실상은 채굴권 노린 러 용병들

입력 2023. 09. 20   17:03
업데이트 2023. 09.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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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 밀리터리 맨(원제 Tourist, 2021) 
감독: 안드레이 바토프
출연: 세르게이 파블로프, 올렉 포두브니, 알렉세이 셰브첸코프

2020년 대선 앞둔 중아공서 반군 몰아낸 와그너 
러시아, 다른 국가 반발 우려 민간군사기업 파견
영화 제작 지원…전쟁범죄 지우고 영웅화 작업
아프리카 내 서방 밀어내고 영향력 확대 노려

영화 ‘밀리터리 맨’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정부군 전술훈련 교육을 위해 파견된 러시아 최정예 특수부대와 반란군과의 퇴로 없는 전투를 그렸다. 영화 ‘밀리터리 맨’ 스틸컷.
영화 ‘밀리터리 맨’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정부군 전술훈련 교육을 위해 파견된 러시아 최정예 특수부대와 반란군과의 퇴로 없는 전투를 그렸다. 영화 ‘밀리터리 맨’ 스틸컷.



“외국 열강과 초국적 기업들은 독재정권과 상대하기를 좋아한다. 기관을 통한 감독이 느슨해서 계약이 훨씬 더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원주민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독재자의 이익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부는 빨려 나가고 땅은 광산 개발로 퇴화하고 석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가스 불빛이 동물의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한다.” (『오브 아프리카』 중, 월레 소잉카 지음, 삼천리 펴냄)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키워가는 러시아

“충성을 원한 푸틴, 아프리카에서 그것을 찾다(Putin Wants Loyalty, and He’s Found It in Africa).” 뉴욕타임스 2022년 12월 25일 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도대체 아프리카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아프리카에서 발을 빼는 기미를 보이자 러시아 용병 와그너그룹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중아공)의 통제권을 장악한 것. 중아공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나라다. 2013년 기독교계인 프랑수아 보지제 전 대통령이 이슬람 반군으로부터 축출된 이후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2014년 4월부터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유엔평화유지군보다 러시아 용병들을 더 신뢰한다. 뉴욕타임스의 인터뷰에 응한 한 현지인은 “그들은 폭력적이지만 효율적”이라며 “반군 단체가 누군가를 죽이면 유엔군은 사진만 찍지만, 러시아인은 그 사람들을 죽인다”고 말한다.

와그너그룹은 2014년 설립하자마자 대박을 터트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는 과정에서 선봉장 역할을 한 데 이어 중동과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대타로 개입하면서 막대한 이권과 세력을 얻었다. 이들이 중아공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2016년. 포스탱아르캉주 투아데라 대통령의 재선 성공을 도운 덕분에 금과 다이아몬드, 목재를 채굴·채취 및 수출할 수 있는 이권도 확보했다.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아프리카 중서부에서는 중아공,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차드, 수단, 니제르, 가봉 등 8개국에서 쿠데타가 발발했다. 대부분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독립 후 미국과 가까웠으나 최근엔 와그너그룹을 앞세운 러시아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졌다.


와그너가 제작 지원한 러 ‘국뽕’ 영화 

2020년 12월. 중아공에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전의 기운이 감돈다. 중아공 정부가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자 러시아는 정부군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특수부대를 파견한다. 일명 코드네임 ‘투어리스트’. 그러던 중 반군의 수도 진군이 시작되고 특수부대원들은 정부군과 이를 저지하려 하지만 정부군의 도주로 위기 상황에 놓인다. 특수부대 지휘부는 퇴각을 명령하지만, 부대원들은 ‘정의로운’ 교전을 선택한다. 영화 ‘밀리터리 맨’ 얘기다.

영화의 목적은 분명하다. 과거 할리우드가 그랬듯 이번엔 러시아가 미국을 대신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돕는다. 실화를 살짝 곁들인 러시아판 ‘국뽕’ 영화다. 원제는 ‘турист(Tourist)’. 실제로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중아공에 반군의 움직임이 감지되자 러시아는 와그너그룹을 파견해 정부군의 훈련을 책임졌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정의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러시아인의 활약을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그랬을까? 러시아가 파병을 결정한 이유는 딱 하나. 다이아몬드 채광권을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다른 국가의 반발을 우려해 민간군사기업을 활용한 것일 뿐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러시아 정부와는 관련이 없는 민간기업이 한 일이니까.

와그너그룹은 실화를 강조하며 영화 제작을 지원했다. 자신들이 수도로 몰려오는 반군을 막아낸 덕에 대선이 무사히 치러졌다면서. 하지만 비용 절감과 인권 유린 책임을 피하려고 파견한 와그너그룹의 악행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2021년)가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가 ‘국뽕’에 젖어 만든 영화의 주인공들은 영웅처럼 묘사됐지만, 실상은 정반대란 말씀.

이처럼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군사 협력을 체결하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아프리카 54개국 중 28개국과 군사 협력을 맺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교관 업무를 할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는 전략과 ?아프리카에서 서방을 밀어내려는 푸틴의 포부가 먹혀들어 간 것. 이런 맥락을 알고 보면 영화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


입김 약해진 미국·프랑스…사헬 지대 ‘쿠데타 벨트’ 커진다

아프리카 사헬 지대(Sahel zone)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 벨트(Coup Belt)’가 점점 확대되는 모양새다. ‘사헬’이란 아랍어로 가장자리라는 뜻. 아프리카 대륙을 북부와 중부로 나누는 사하라사막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반건조기후 지대를 가리킨다.

나라로는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차드, 나이지리아, 수단 등이 해당한다. 이들 중 수단만 영국 식민지를 거쳤고, 나머지 나라들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가뭄, 식수 부족으로 살기가 척박해지고,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헬 지대 국가들은 최근 쿠데타가 빈발, ‘쿠데타 벨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1990년 이래 사헬지역에서 27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일부에서는 프랑스가 구식민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쿠데타를 자초한 것이란 비난도 제기된다.

7월 26일 민주적 절차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민주주의를 운영해온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발생, 쿠데타 벨트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니제르는 사헬 지대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던 도미노였다. 8월엔 가봉의 권력을 군부가 장악하면서 ‘쿠데타 벨트’가 남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사헬 지대에서 유독 쿠데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이슬람 무장세력으로 인한 치안 불안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똬리를 틀었던 알카에다나 이라크·시리아 지역의 이슬람국가(IS)가 서아시아를 떠나 이곳으로 옮겨 왔다. 장기 집권과 경제난에 염증을 느낀 국민의 심리를 파고든 공통점이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입김이 예전만 못한 틈을 와그너그룹을 앞세운 러시아가 메우며 쿠데타를 부추기는 것도 한 이유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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