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24시간 긴장이 흐르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분단의 현장. JSA경비대대 장병들은 이곳에서 높이 5㎝, 너비 50㎝의 콘크리트 블록을 경계로 북한군과 마주하며 근무하고 있다. ‘선’ 하나를 놓고 적과 대치하는 이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들의 삶이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장병들의 실제 생활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눈앞에 적을 두고, 등 뒤에 있는 조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임무완수에 매진하는 JSA경비대대 장병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조수연/사진=조용학 기자
지난 18일 JSA경비대대 장병이 캠프 보니파스 내에 설치된 부대마크 앞을 걷고 있다.
연합작전으로 강인한 동맹 구현 경비1중대장 정재훈 대위
육군1보병사단 일반전초(GOP)에 근무하다 JSA경비대대에 지원한 정재훈 대위는 지난달 말 전입해 왔다. 최전방 부대에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막상 JSA경비대대에 선발됐을 땐 어깨가 무거웠다고 한다.
“적과 가장 근접한 곳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비무장지대(DMZ) 내 상시 주둔하는 유일무이의 기동타격대이자 한미 연합대대로서 미군과 함께 현행작전을 한다는 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정 대위는 ‘신병’이라는 자세로 임무수행에 몰두했고, 전입 한 달여 만에 완벽히 적응했다. 그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판문점에서 북한군을 처음 목격한 순간을 꼽았다. 그러면서 경계부대의 어려운 점 중 하나인 ‘매너리즘’과의 싸움도 이곳에선 없다고 말했다.
“북한군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판문점은 언제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란 것을 체감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합니다.”
JSA경비대대원으로 선발되려면 무도(武道)는 필수다. 정 대위 역시 태권도·유도 유단자다. 총기를 휴대하지 않고 비무장으로 근무하는 만큼 자신과 전우를 지키는 근접격투술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대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제압하기 위한 근접전투훈련을 매일 시행하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올해. 정 대위는 연합작전을 수행하는 부대 일원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전투복 매무새를 고쳐 잡은 그는 경비1중대를 이끄는 중대장으로서 다짐을 전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연합작전을 포함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게 곧 강인한 동맹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대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완전작전에 전력투구하겠습니다.”
국가안보 최일선, 준비태세 만전 경비1중대 2소대 부소대장 정우상 상사
군 생활 15년 차인 정우상 상사는 지난해 11월 JSA경비대대에 왔다. 해외파병부대와 JSA경비대대 신청을 고민하다 최전선에서 복무하는 기회를 잡고 싶어 지원했다고. 정 상사의 부대 전입일인 11월 15일은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이기도 했다.
“2년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부대 전입일이 아버지의 첫 기일이었습니다. JSA경비대대에 오게 된 것이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아버지가) 하늘에서 이곳으로 이끌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임무수행에 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신속대응부대(QRF) 부소대장이다.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판문점의 비무장 인원이 위기에 처했을 때 차량으로 빠르게 기동해 지원하는 것이다. 상황 발생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일과 중에는 1분30초, 취침 중에는 2분 안에 출동해야 한다.
“실제로 부대에 와서 보니 적과 대치하고 있다는 압박감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적이 언제 도발할지 몰라 잠을 잘 때도 긴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지체 없이 출동하도록 취침 전에 전투복·전투화·장비 등을 동선에 맞춰 준비해 둡니다. ”
정 상사는 부대원들을 바라볼 때면 동질감과 연대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JSA경비대대는 정예 장병으로 구성됐지만, 늘 준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서다.
이에 정 상사는 전우들에게 국가안보 최일선을 지킨다는 자긍심으로 임무를 완수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 누구나 판문점을 견학할 수 있는 만큼 ‘국민의 군대’로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판문점을 찾아오시면 JSA경비대대를 믿고 뜻깊은 안보견학을 하실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상황 발생 땐 이곳서 모두 종결 전투지원중대 경호소대 이현승 상병
이현승 상병은 판문점 남방한계선 바로 밑 기지인 캠프 보니파스 입구 검문소 ‘브라보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브라보 초소는 캠프 보니파스 주차장 옆으로 지그재그로 놓인 콘크리트 장벽과 통행 차단 막대를 지나면 나오는 검문소다.
지난해 5월 입대한 이 상병은 찌는 듯한 무더위와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부대의 관문을 지켰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검문했다.
“주야간 근무대로 나뉘어 주둔하고 있습니다. 부대의 전방을 지킨다는 책임감, 상황이 발생하면 이곳에서 모두 종결한다는 각오로 경계작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간부 1명과 병사 4명이 상주하는 이곳은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하다. 실탄이 장전된 권총으로 무장한 이 상병은 “브라보 초소에는 빈 탄알집이 없다”며 “차량 침투 등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비상벨을 울리고 수동 바리케이드를 내린 뒤 지침에 따라 조치한다”고 임무를 설명했다.
브라보 초소를 지킨 지도 어느덧 1년여. 복싱선수 출신인 그는 강인한 체력뿐만 아니라 외국어 실력까지 겸비했다. 다양한 국적의 군인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장소이기에 브라보 초소 근무병과 외국어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그는 기억에 남는 방문객으로 지난해 9월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꼽았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느낀 계기가 됐다고.
“두려울 때는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씩씩한 답변을 내놨다. 이 상병은 “JSA경비대대 복무 경험은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전역하는 그날까지 완전작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