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삶_정연호 중령] 각자 자기 발밑을 살펴보라

입력 2023. 01. 20   16:21
업데이트 2023. 01. 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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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호 공군본부 군종실장 법사·중령
정연호 공군본부 군종실장 법사·중령

 

3명의 제자와 밤길을 가다가 등불이 꺼지자 스승이 제자들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겠냐고 묻자 제자 중 한 사람인 원오 스님이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답했습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에 놓였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발밑을 잘 살피는 것’뿐입니다. 먼 곳으로 시선을 빼앗기면 발아래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찰에서 스님들이 신발을 벗어 놓은 마루 토방을 보면 ‘조고각하’라고 쓰여 있고, 신발이 가지런히 정돈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 발밑을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신발을 벗을 때 제자리에 놓았는지, 나갈 때 바로 신을 수 있게 뒀는지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신발 하나 벗어 놓은 것도 수행의 한 단면입니다. 신발 정돈이 잘돼 있는 집은 도둑도 그냥 간다고 합니다. 결국 ‘조고각하’라는 말에는 ‘우리의 삶 전체를 살피고 돌아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왔던 쪽을 한참 바라본다고 합니다. 잠시 그런 뒤 다시 말을 타고 달려갑니다. 자신이 너무 빨리 달려서 자기의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영혼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스트레스로 허덕이는 존재, 삶에 찌들어 있는 존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초라한 존재, 달리기만 하는 삶 등 우리 자신을 말합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에서 돈과 명예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방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방식은 ‘나’란 존재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겁니다.

미국의 명상가인 스콧 니어링(1898~1987)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가진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를 사유하는 일이다.”

하루 중 오롯이 자신이 머물러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느 즈음에 행복을 맛볼 수 있을까요? 삶은 유한한 것이고, 인생의 리허설(예행연습)은 없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이 소중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행복을 느끼십시오. 현재 느끼는 행복이 삶의 목적지입니다.

앞만 보고, 위만 보고 달려가는 하루하루입니다.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성공을 이뤘다고 자부하는 우리입니다. 하지만 뿌리의 고투 없이 꽃과 열매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나의 행보에 늘 든든히 나아갈 수 있게 묵묵히 역할을 다하는 발이 있듯이 나를 지탱해 주는 고마운 전우와 인연들도 함께 살펴야겠습니다.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는 올 한 해도 주어진 삶의 목표와 과업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려 합니다. 행복의 성질은 쫓아가면 멀어진다고 했습니다. 내가 행복을 쫓아가지 않고 행복이 내게 오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선택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쉬어 가며 자신을 살피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야 하듯이 새해엔 우리가 딛고 선 발밑을 돌아보고 큰 뜻이 뿌리박고 있는 작은 일상생활과 함께하는 귀한 사람들을 돌아보며 토방 툇돌 위 신발 정리를 하듯 정직하게 자기 정리를 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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