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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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번역
민음사 펴냄
추운 겨울날, 부모님과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입대했다. 훈련소 첫날엔 외로움과 싸우는 일이 가장 버거웠다. 홀로 덩그러니 놓인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훈련도 받고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 갔지만, 감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어떤 커다란 상실감과 싸우고 있노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큰 상실감과 마주해야 했다. 자유를 잃은 후 찾아온 상실감은 물질적인 것과는 비견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소설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17세에 단짝 친구 기즈키를 잃는다. 사유는 자살. 그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찾을 수 없자 와타나베는 혼란의 시간을 겪게 되고 상실감에 빠진다. 당시 기즈키에겐 여자친구 나오코가 있었다. 와타나베는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인연을 이어간다. 와타나베는 작은 울림에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오코를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친언니와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또 다른 상실의 시대를 살아 내고 있었다. 나오코마저 삶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는 상실감을 품은 채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상실감을 이겨 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같은 건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 상실의 시대를 먼저 겪어 낸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당신이 느끼는 쓸쓸한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 준다.
“우리는 살아 있고, 살아 있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다.”
훈련소 때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이었다. 당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며 하루라도 더 의미 있게 보내려 노력했다. 소설이 말하는 바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진행되는 구조를 살펴보면 끝내 세상을 떠난 기즈키와 나오코의 시점은 없고 살아남은 와타나베가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사가 이어진다. 기즈키와 나오코는 이 이야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와타나베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뿐이다. 결국은 삶의 가혹한 지점들을 견뎌 내고 살아 낸 사람의 이야기라는 게 이 소설이 내포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훈련병이 있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지난 1년간의 군 생활을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만큼 의미 있는 순간도 많았다. 매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며 최선을 다한 덕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삶이 주는 짓궂은 회의감을 견뎌 낼 때, 그것이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잘 살아 내고 싶어서라는 점을 이 글을 읽는 국군장병 여러분이 꼭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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