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문고+ 정준원 상병] 상실의 시대…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입력 2023. 01. 11   16:46
업데이트 2023. 01. 11   16:54
0 댓글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정준원 상병 육군31사단 비호여단 고경병대대
정준원 상병 육군31사단 비호여단 고경병대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번역
민음사 펴냄



추운 겨울날, 부모님과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입대했다. 훈련소 첫날엔 외로움과 싸우는 일이 가장 버거웠다. 홀로 덩그러니 놓인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훈련도 받고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 갔지만, 감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어떤 커다란 상실감과 싸우고 있노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큰 상실감과 마주해야 했다. 자유를 잃은 후 찾아온 상실감은 물질적인 것과는 비견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소설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17세에 단짝 친구 기즈키를 잃는다. 사유는 자살. 그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찾을 수 없자 와타나베는 혼란의 시간을 겪게 되고 상실감에 빠진다. 당시 기즈키에겐 여자친구 나오코가 있었다. 와타나베는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인연을 이어간다. 와타나베는 작은 울림에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오코를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친언니와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또 다른 상실의 시대를 살아 내고 있었다. 나오코마저 삶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는 상실감을 품은 채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상실감을 이겨 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같은 건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 상실의 시대를 먼저 겪어 낸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당신이 느끼는 쓸쓸한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 준다.

“우리는 살아 있고, 살아 있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다.”

훈련소 때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이었다. 당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며 하루라도 더 의미 있게 보내려 노력했다. 소설이 말하는 바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진행되는 구조를 살펴보면 끝내 세상을 떠난 기즈키와 나오코의 시점은 없고 살아남은 와타나베가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사가 이어진다. 기즈키와 나오코는 이 이야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와타나베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뿐이다. 결국은 삶의 가혹한 지점들을 견뎌 내고 살아 낸 사람의 이야기라는 게 이 소설이 내포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훈련병이 있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지난 1년간의 군 생활을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만큼 의미 있는 순간도 많았다. 매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며 최선을 다한 덕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삶이 주는 짓궂은 회의감을 견뎌 낼 때, 그것이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잘 살아 내고 싶어서라는 점을 이 글을 읽는 국군장병 여러분이 꼭 기억하기 바란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