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 식수로 인한 각종 질병 극복
1991년 걸프전서 효용 가치 확인
최근 우크라이나군 건강 보장하고
극한 상황 전투력 유지 버팀목 역할
깨끗한 생수의 확보는 전투의 승리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생수병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미 국방부
페트병의 등장과 대량 사용으로 이제 전선의 장병들은 깨끗한 물을 걱정 없이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대민활동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얻게 됐다. 사진=미 국방부
미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당연히 최첨단 무기 개발과 보유 유무였다. 하지만 지난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은 ‘미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꼭 필요한 것’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일례로 과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생수병에 대한 중요성이 갑자기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존과 승리의 필수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 이후 흔히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소재 음료수 보관 용기, 일명 페트병은 장병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전략물자로 인식되고 있다. 생수에서 탄산음료, 과일주스까지 다양한 음료수를 담을 수 있는 페트병은 그 자체로는 전혀 치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페트병은 등장 이후 전투와 보급의 개념 자체를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페트병에 담긴 멸균 처리 생수는 우크라이나군 장병들이 고립된 상황에서도 전투력을 유지할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깨끗한 식수 확보는 단순한 전투력 유지 차원이 아닌, 인간의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인체는 체중의 60%가 수분이며 소변과 땀 등으로 체내의 수분을 주기적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하루 최소 2ℓ 이상의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 만약 수분이 적절히 보충되지 않는다면 어지러움, 인지력 저하부터 구토, 졸도까지 다양한 탈수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더욱이 전장의 극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잘 훈련된 군인이라 해도 최소한의 수분 공급 없이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체력 소모가 심한 전투상황이 지속할 경우 탈수 현상은 평소보다 빠르게 진행되며 탈수 정도가 체중의 10%를 넘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체는 식량 없이 3주, 식수 없이 3일, 산소 없이 3분 이상 버틸 수 없다. 문제는 깨끗한 식수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모든 병사에게 깨끗한 물과 충분한 식량을 보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전투식량의 등장은 전장 한복판에 내던져진 장병들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페트병, 그중에서도 생수병의 등장은 식수 보급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전투와 보급의 개념을 바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깨끗한 식수를 전선의 장병들에게 보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18세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제작된 금속 군용물병 즉 수통은 일단 보관 용기에 대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다. 하지만 여전히 깨끗한 식수를 꾸준히 보급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였다. 여러 대안이 등장했고 그중에는 아예 우물을 파서 깨끗한 지하수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해외 원정작전에 특화된 현대 미군조차도 막대한 장비와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실효성이 낮은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깨끗한 식수를 확보해도 이걸 다시 운반하고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페트병의 등장은 식수 보급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꾼 것은 물론 아예 군장에서 수통을 대체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과거 식수 보급은 큰 물탱크로 운반한 물을 작은 물탱크로 옮기고 다시 식수통 혹은 수통으로 분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곳에 식수가 보급되거나 식수 자체가 오염되는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식수가 너무 많아 목욕이나 세탁에 사용할 정도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식수가 없어서 빗물을 받아 마시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생수병의 등장으로 식수 보급의 고질적 문제들이 이제 거의 모두 해결됐다.
가장 큰 변화는 장병 1인당 정확한 식수 보급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총원 100명에게 50ℓ 식수통 2개’ 같은 방식으로 보급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총원 100명에게 500㎖ 생수병 200개’같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취수원에서 깨끗한 식수를 확보해 전선의 장병들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보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며 생수병에 대한 장병들의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
걸프 전쟁에서 미래 전쟁까지
지난 1991년 벌어진 걸프 전쟁은 생수병의 효용 가치가 확인된 첫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미군은 깨끗한 식수를 생수병에 담아 보급했고 덕분에 전선의 장병들은 식수 걱정 없이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지금도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장병들에게 깨끗한 식수가 담긴 생수병을 지급하고 있다. 덕분에 오염된 식수로 인해 발병할 수 있는 각종 질병을 거의 완벽하게 극복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도 최첨단 기술로 깨끗한 식수를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과 대안을 확보하고 있으며 생수병은 그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가까운 미래에도 미군 장병들은 최소한 식수만큼은 걱정하지 않고 전투에 임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군의 식수 보급체계가 안정돼 있다는 뜻이다.
물론 미군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형태의 생수병과 페트병에 담긴 음료수가 유통되고 있어 군 수뇌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식수 확보는 전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전쟁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지난해 연말부터 생수병과 페트병에 담긴 각종 음료수를 확보해 주요 거점에 비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비축한 생수와 각종 음료수는 주요 전투 국면,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완전히 포위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전투력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
미래 전쟁은 기본을 갖춘 군대가 승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병 전투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적보다 강력한 칼과 창? 튼튼한 갑옷과 방패? 높은 사기? 훌륭한 지휘관?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앞서 언급한 요소 모두 전투력을 유지에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식수와 식량이다. 식수와 식량은 인간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며 굶주린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문제는 깨끗한 식수와 충분한 식량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모든 장병에게 충분한 식수와 식량을 보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전투식량의 등장과 페트병을 활용한 식수 보급은 그동안 불가능해 보이던 충분한 식량과 식수 공급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무력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서 생수병은 각종 질병으로부터 장병 건강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보급이 끊기고 적에게 포위된 극한 상황에서도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불변의 원칙은 미래 전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필자 계동혁은 ‘Aerospace & Defense’ 취재팀장을 지냈으며, 다양한 국방·군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역사를 바꾼 신무기』, 『드론 바이블』(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