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기자가 간다] 해군 손상통제훈련

입력 2022. 08. 02   16:48
업데이트 2022. 08. 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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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기자가 간다
⑩ 해군 손상통제훈련
 
불날 틈 없이 물샐 틈 없이…
뜨겁게 도전하고 쿨하게 제압한다
 
20년 만에 화재진화훈련 동참
트라우마 이기고 화마 잠재워

온몸으로 물줄기 맞으며 방수훈련
함정 전투력 보전 위해 수마와 사투

 

  국방일보 노성수 기자가 화재진화훈련 동참을 위해 소화 장구를 착용한 뒤 화재훈련장으로 향하고 있다.
국방일보 노성수 기자가 화재진화훈련 동참을 위해 소화 장구를 착용한 뒤 화재훈련장으로 향하고 있다.
화재진화훈련을 무사히 마친 노성수 기자가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화재진화훈련을 무사히 마친 노성수 기자가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해군8전투훈련단 손상통제훈련장에서 진행된 손상통제훈련에서 광양함 승조원들이 화재진화훈련(위)과 방수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8전투훈련단 손상통제훈련장에서 진행된 손상통제훈련에서 광양함 승조원들이 화재진화훈련(위)과 방수훈련을 하고 있다.
82육상훈련대대 관찰관 이영재 상사가 화재진화훈련 후 땀을 닦고 있다.
82육상훈련대대 관찰관 이영재 상사가 화재진화훈련 후 땀을 닦고 있다.
광양함 승조원들이 함정 파공 상황에서 도구를 활용해 구멍을 메우고 있다.
광양함 승조원들이 함정 파공 상황에서 도구를 활용해 구멍을 메우고 있다.
해군8전투훈련단 손상통제훈련장에서 진행된 손상통제훈련에서 광양함 승조원들이 화재진화훈련(위)과 방수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8전투훈련단 손상통제훈련장에서 진행된 손상통제훈련에서 광양함 승조원들이 화재진화훈련(위)과 방수훈련을 하고 있다.
광양함 승조원들이 함정 침수 상황을 가정한 방수훈련을 하는 모습.
광양함 승조원들이 함정 침수 상황을 가정한 방수훈련을 하는 모습.

바다를 주 무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위협에 노출돼 있다. 그렇기에 해군 장병들에게는 어떠한 해상 위기 상황도 극복하고, 함정 전투력을 복원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해군은 함정과 승조원의 생존성을 확보하고, 대처능력을 함양하는 손상통제훈련을 연중 시행한다.

손상통제훈련은 함정에 화재·침수 등 위기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피해 확산을 차단하고, 손상 부분을 신속하게 복구해 임무 수행능력을 유지하는 해군의 핵심 훈련 중 하나다. 실전적인 훈련으로 필승해군 건설의 자양분 역할을 하는 손상통제훈련을 체험했다. 글=노성수/사진=김병문 기자


오전 화재진화훈련, 오후 방수훈련 동참


피하고 싶은 순간은 피하고 싶어도 언젠가는 또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내게는 손상통제훈련이 그랬다. 20여 년 전 해군 훈련병 때 기자는 난생처음 엄청난 화염을 마주했다. 화재진화훈련이었지만 극도의 공포감에 위축된 나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교관은 그런 나를 지목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교육에 임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맨 앞에서 불길을 진화할 것을 명령했다. 세월이 흘러 군 복무 시절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비자발적으로 전면에서 불길을 진화했던 그날의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폭염경보가 발효된 지난달 27일 해군8전투훈련단 손상통제훈련장. 이날 광양함 승조원 80여 명은 손상통제훈련에 투입됐다. 기자는 오전·오후로 나눠 화재진화훈련과 방수훈련에 동참했다.

“직접 체험하신다고요? 함정 근무 경험도 있으니 아마 수월하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82육상훈련대대 김병일(준위) 소화방수반장이 긴장한 기자를 안심시키려 말을 건넸다. 하지만 기자에게 군 복무의 기억은 전역과 함께 대부분 지워졌다. 특히 생명의 위협마저 느꼈던 화재진화훈련이라면 기억회로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던 터다. 그러나 훈련은 내 앞에 주어졌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사전교육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화재훈련장으로 이동해 소화 장구류를 착용했다. 사실 기자가 해군병이던 ‘라떼’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소화 장구류 없이 판초 우의만 입고 화염에 맞서야 했다. 그래서인지 무더운 날씨에도 두툼한 소방복 상·하의를 입으니 내심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이어 양압식 공기호흡기와 소화헬멧·보호장갑까지 착용하니 실제 훈련이라는 게 실감 났다.

“훈련장에 들어서면 불길에 놀라 간혹 도망가려는 장병들도 있습니다. 불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관찰관 전민훈 중사는 노즐을 든 요원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전에 최대한 유의한 상태로 훈련 군기를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1소화반에 편성된 기자는 호스요원들과 소화호스를 잡고 소화로에 진입했다. 다행히 소화호스 뒤편에 자리 잡은 덕에 불길과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진화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이처럼 체험은 조용하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소화호스 끼고 전진 또 전진…온몸이 땀으로

그 순간 관찰관 이영재 상사가 다가왔다. “기자님, 그래도 직접 불길을 잡아 봐야 제대로 된 손상통제훈련 체험 아니겠습니까? 다음 조 훈련 땐 맨 앞에서 소화호스를 잡으시죠.”

‘아, 악몽이 되풀이되는구나’. 쉽게 끝날 수 없다고 예상은 했지만, 그때 그날처럼 훈련을 두 번 경험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관찰관 요청에 마지못해 또 한 번 훈련 참여를 수락했지만, 긴장감이 엄습해 왔다. 그렇게 두 번째 훈련에서는 소화반 가장 앞에 서서 화재진화를 이끌게 됐다.

“기관실 B급 화재 발생!” 화재 상황이 부여되자 나는 양압식 공기호흡기의 조정장치를 양압 모드로 전환하고, 소화호스를 오른쪽 겨드랑이에 밀착시킨 뒤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이어 소화호스 노즐을 개방하고, 불길이 점화된 소화로에 접근했다. 그때였다. 눈앞에 1200도가 넘는 화염이 솟구치는 모습이 보이자 내 몸의 모든 세포와 근육이 경직됐다. 턱에는 미세한 떨림마저 느껴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내 몸은 반사적으로 불에 대한 공포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내 인생의 트라우마를 모두 털어 버릴 기회’라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소화로에 진입했지만, 자욱한 검은 연기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자 공포심은 더해졌다. 하지만 내 뒤에는 나를 믿고 따르는 대원들이 있었다. 만약 이 순간 내가 불길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전우들도 생명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소화호스를 좌우로 흔들며 필사적으로 화마(火魔)를 진압해 나갔다. 몇 분이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치솟던 불길을 모두 잠재우고, 소화로를 빠져나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뒤범벅돼 있었다.


차디찬 물속으로 풍덩…파손 부위 말끔하게

해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번에는 손상통제훈련장에서 방수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함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침수 상황을 가정한 훈련으로 생존성을 배양하는 공간이다. 함정과 유사한 격실 구조와 통제시스템을 구축해 각종 상황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승조원들은 화재·침수 위기를 맞은 함정에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손상 부분을 신속·정확하게 복구해야 한다.

손상통제본부가 디젤기관실 화재 및 파공(破空) 상황을 부여하자 광양함 승조원들은 ‘전투배치’를 복명복창하며 지정된 위치로 달려갔다. 소화반이 화재를 진압하는 사이 기자를 비롯한 대원들은 각종 기구를 챙겨 파공이 생긴 격실로 향했다. 격실은 이미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나와 전우, 함정의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체할 틈이 없었다. 대원들은 한 치 주저함 없이 차디찬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세찬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파공을 메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대원들은 작은 나뭇조각(플러그)과 방수함을 이용해 구멍을 막은 후 커다란 나무 기둥을 지렛대처럼 받쳤다. 다른 대원들도 매트·방수함·부판·지주 등을 활용해 각양각색의 파공을 메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숙련된 대원들 덕분에 지주 설치를 완료하자 격실로 유입되는 물줄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함정에 해수·청수를 공급하는 파이프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파이프 패칭도 병행됐다. 파이프 패칭은 파손 종류와 위치에 따라 연성·쥬브리식·플라스틱·고압 스트랩식 등으로 나뉜다. 광양함 승조원들은 나뭇조각·고무판·금속판 등 온갖 종류의 도구와 수리법으로 파손 부위를 말끔히 메웠다. 이로써 수마(水魔)와 사투를 벌인 방수훈련이 막을 내렸다.

김윤환(중령) 광양함장은 “유사시 수상함 구조함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즉각 대응능력이 요구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평소 실전적인 훈련이 중요하다”며 “우리 승조원들은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필승해군 건설에 일조하기 위해 부여된 임무를 100% 완수하는 능력 구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성수 기자 < nss1234@dema.mil.kr >
김병문 기자 < dadaz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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