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바다를 든든히 지키는 해군. ‘해군’하면 역시 ‘함정’이 떠오른다. 최근 열린 2022 환태평양훈련(RIMPACㆍ림팩)에서도 우리 해군의 정예 함정들이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DDG-991, FF-953 등 해군 함정을 이르는 용어는 낯설고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많다. 해군 함정의 이름과 용어에 대해 최대한 정확하고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 함정의 분류와 약호
해군의 함정은 대체로 크기와 임무, 기능에 따라 분류된다. 크기로 볼 때 배수톤수를 기준으로 만재 배수톤수가 500톤 이상이면 함(艦), 그 이하면 정(艇)으로 구분한다. 다만 잠수함정은 수중 배수톤수 150톤을 구분 기준으로 삼는다.
임무에 따라서는 크게 전투함, 전투지원함, 전투근지원정 등으로 나누고 이어 함종(艦種·ship type)이라는 유형별로 분류한다. 즉 귀에 익숙한 잠수함, 순양함, 구축함, 호위함, 초계함, 기뢰전함, 고속함 등은 전투함으로 분류되고 군수지원함, 구조함, 정보함 등은 전투지원함에 포함된다. 함정을 분류할 때는 영문으로 된 함정약어 또는 약호가 많이 쓰인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함정의 탑재 무기와 배수톤수를 기준으로 한 분류기준이 적용됐고 그 이후 현대적 개념에서는 함정의 기능면을 강조한 나토(NATO) 분류기준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나토 기준을 준용하되 국가별 특성에 맞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함종에 따라 구축함이나 호위함처럼 단어의 이니셜을 겹쳐(DD, FF) 쓰거나 DE(호위 구축함)처럼 이니셜과 기능을 나타내는 문자를 더해 만든다. 영문자가 세자일 때는 함의 성격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광개토대왕함이나 충무공이순신함은 크기는 다르지만 DDH로 쓰이는데 헬리콥터 탑재 구축함(Destroyer Helicopter), 세종대왕함은 구축함+유도탄을 의미 DDG(Destroyer Guided Missile)이다.
▶ 함급, 형태·톤수·기능 같은 함정 그룹
함종은 함급(艦級·Class)으로 또다시 나뉜다. 함형과 톤수, 그리고 기능이 비슷하며 연속적으로 건조된 함정의 경우 이를 한 그룹으로 보고 ‘함급’이라 하여 그 첫번째 함정(선도함 또는 1번함)을 그 함급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배수톤수(경하) 1800톤급의 한국형 호위함은 울산·서울·충남 등 모두 9척이 있는데 이를 하나로 지칭할 때는 선도함인 울산함의 이름을 따 ‘울산급’ 호위함으로 부른다. 따라서 구축함의 경우 3200톤급인 광개토대왕·을지문덕·양만춘 등 세 척을 ‘광개토대왕’급으로, 6척인 4400톤급은 ‘충무공이순신’급으로, 7600톤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은 ‘세종대왕’급으로 호칭한다.
그런데, 미국의 함정을 보면, 미국 해군의 현역 항공모함 중 1972년의 니미츠함부터 2001년 로널드레이건함까지의 항모들은 건조시기와, 톤수, 무장에 차이가 있음에도 이 모두를 묶어 니미츠급(Nimitz class)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같은 운용 개념으로 건조된데다 적용된 기술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2017년 취역한 제럴드포드함에 이르러서야 함급을 달리했다.
▶ 함명과 선체번호
군에서 부대의 이름에는 고유명칭, 약칭, 별칭, 통상명칭 등이 존재한다. 부대의 번호와 성격, 규모를 포함해 제정된 이름이 고유명칭, 부대의 규모와 임무 등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통 4자리 숫자로 부여된 이름이 통상명칭이다. 해군 함정은 통상명칭에 속하며 함종·함형에 따라 함명과 선체번호가 부여돼 진수식 때 공식 명명된다.
함명은 함정의 유형별로 제정 기준을 정해 부여하고 있다. 기준 사례를 보면, 구축함은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이나 호국 인물, 유도탄고속함에는 해군 창설 이후 전투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 잠수함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바다와 관련된 국난극복에 공이 큰 인물, 호위함은 대도시, 초계함은 중소 도시, 상륙함은 육지 상륙 후 고지탈환의 의미를 내포한 산봉우리 등이다.
해군은 최초의 함명으로 ‘서울정’을 부여한 이후 고유명사만을 함명으로 부여하다 1948년 8월 30일부터 함명에 아라비아 숫자로 된 함정번호(선체번호)를 부여, 병행 사용했다. 함종에 따라 번호의 단위가 다르다. 구축함은 900단위이다. 951로 시작하는 울산급 호위함은 구축함은 아니지만 1990년대 초까지 한국형 구축함으로 불렸다. 유도탄호위함은 800단위, 초계함은 700단위로 부여한다.
선체번호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고유명사의 함명은 LCI 서울정, DD 서울함, FF 서울함, FFG 서울함 등에서 보듯 퇴역 후 새로운 함정에 계승되기도 하지만 선체번호는 계승되지 않는다.
선체번호 용법에는 금기와 예외가 존재한다. 우리 함정의 번호를 구성하는 숫자에서 ‘4’는 일종의 금기로서 전혀 쓰이지 않는다. ‘0’의 경우 수상함에서는 쓰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산함의 선체번호 ‘560’처럼 기뢰를 제거하고 부설하는 함정에 예외적으로 쓰이는 사례가 있다. 적이 부설한 기뢰를 모두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잠수함 역시 함 특성을 고려해 3자리 중 맨 앞에 ‘0’을 붙이고 있다. 최초 국산 잠수함정인 돌고래 1번함이 ‘051’이며 1200톤급 장보고함이 ‘061’, 3000톤급의 도산안창호함이 ‘083’이다.
▶ 사업명과 KDX
1975년 7월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군 현대화 계획을 추진하면서 해군에 "구축함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해군은 1978년 ‘한국형 구축함’을 건조하기 위한 특수사업처를 신설하면서 한국형구축함을 건조하는 프로젝트인 ‘율곡571사업’ 을 추진한다. 여기서 한국형 구축함은 현대식 중형의 전투함을 뜻하는 것으로 현재의 광개토대왕급이나 충무공이순신급 함정이 아닌 1,800톤급 한국형 호위함(FF)을 일컫는다.
이렇게 국산 무기체계 획득을 위한 방위사업에 외부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사업명에 ‘익명’을 쓰던 시기가 있었지만 1980년대 해군함정 건조사업을 보면한국형구축함사업단, 군수지원함건조사업단처럼 평문형 사업명이 등장하고, 1990년대 이후 우리말 사업명에 병기된 영문 약칭이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한국형구축함사업에 쓰이는 ‘Korean Destroyer, Experimental’의 약칭인 KDX를 들 수 있다. 해군은 KDX를 모두 3단계로 나누어 추진했는데, 광개토대왕함으로 대표되는 3200톤급 구축함 3척이 1단계, 4400톤급의 충무공이순신함 등 6척이 2단계, 그리고 이지스구축함인 7600톤급의 세종대왕·율곡이이·서애류성룡함이 3단계 사업으로 건조된 함정들이다.
여기서 사업 추진을 구분하는 ‘단계’는 페이즈(phase)로 표기하고 숫자는 그리스문자로 표기했다. 따라서 한국형구축함 3단계 사업은 ‘Korean Destroyer eXperimental, phase-Ⅲ’, 곧 KDX-Ⅲ가 된다. 한때 통례적으로 한국형구축함 하면 영문으로 KDX를 쓰게 되고 함급을 사업단계에 맞춰 KDX-I, KDX-Ⅱ 식으로 표현하곤 했지만 사업명이 아닌 함정 약호로서는 정확한 표기법은 아니다.
▶ 함정 약호에서 ‘X’의 정체
한국형구축함사업에 쓰이는 KDX의 ‘X’는 대체 어떤 의미로 쓰이는 걸까.
KDX뿐만 아니라 호위함사업에 FFX, 대형수송함사업에 LPX처럼 많은 건조사업에 X가 들어간다. 함정 뿐만 아니라 차기전투기사업이 FX로 불리고 또 K2전차를 XK2, K9자주포를 XK9으로 부르는 예가 있듯 무기체계 획득과정 기사를 보면 해당 무기체계에 ‘X’가 붙어 있는 예를 종종 보게 된다.
X는 eXperimental 에서 온 것으로 ‘실험’‘시제(試製)’를 의미하는 ‘기능문자’라고 한다. XK2(전차), XK9(자주포)처럼 무기체계에 이 X가 붙어 있으면 야전에 작전배치된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연구개발 단계에서의 시험용 제품, 즉 시제품을 의미한다.
해당 무기체계를 운용할 소요군 주관으로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는지를 확인하는 시험평가를 거친 후 합참에서 ‘전투사용 적합’ 판정을 받으면 ‘X’를 떼어내고 K2나 K9처럼 완성된 무기체계의 정식 모델번호로 불리게 된다. 며칠 전 초도비행에 성공한 한국형전투기(KFX) 보라매는 부여된 모델번호가 KF-21이긴 하지만 이제 막 시작된 개발단계의 기체 자체만 놓고보면 KF-21시제기이므로 영문약칭을 XKF-21로 쓰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함정에서도 X는 하나의 기능문자로서 ‘향후 작전배치를 위해 건조(시험) 중인 함정’을 뜻한다. 따라서 KDX는 한국형구축함으로서 개발(건조)이 진행 중인 함정을 말한다. 다만, 완공되어 해군이 인수, 취역했다해서 X를 떼어내 약호를 ‘KD’로 표기하지는 않는다. 취역 후 약호 부여는 사업명에서 쓰이는 영문약자와는 다른 것이다.
▶ 사업명으로서 '광개토급'
한국형 구축함을 의미하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광개토’급이 있다. 광개토대왕함부터 가장 최근의 서애류성룡함까지, 나아가 향후 건조될 한국형구축함을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함종’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3200톤급을 광개토-I급으로, 4400톤급을 광개토-II급으로, 7600톤 이상의 이지스구축함을 광개토-III급으로 세분한다.
하지만 이는 취역 전 건조사업단계의 구축함을 일컬을 때 쓰는 ‘위장형 사업명’으로서 취역한 함정들에 대해서는 호칭되지 않는다.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형 구축함의 함급명으로는 현재 광개토대왕급, 충무공이순신급, 세종대왕급이 존재한다.
광개토대왕함을 건조할 당시 ‘광개토-I급’이란 말이 없었듯 이렇게 위장형 사업명이 등장한 것은 2006년께인데 당시 방위사업청이 관장하는 무기체계 획득사업 대부분에 이같은 사업명이 부여됐다.
예를 들면, 인천함으로 대표되는 유도탄호위함(FFG)을 건조하는 차기호위함사업(FFX)은 한국형호위함 1번함인 ‘울산’함의 함명 따 울산급, 잠수함사업은 1200톤급 1번함인 ‘장보고’함의 이름을 따 ‘장보고급’이라고 정했다. ‘울산급’‘장보고급’이라는 용어는 1800톤급의 호위함(FF)의 함급 이름과 차기호위함사업 이름으로 동시에 쓰여 일부 혼선이 있을 수 있다.
공군의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KMSAM)의 경우 사업명은 ‘철매-II’ 였으나, 취역한 후의 애칭은 ‘천궁’이며 탄도탄도 타격할 수 있도록 한 성능개량형의 애칭은 천궁-II이다.
▶ 건조 단계를 구분하는 배치
곧 진수식을 가질 최신 한국형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을 보면 ‘광개토-III급 배치-II’라는 용어가 나온다.
배치(batch)란 한 번에 또는 일괄 처리되는 집단, 묶음, 양 등을 나타내는 말로 함정 건조에서는 동일한 제원과 동일한 성능을 갖는 함정 그룹을 건조하는 묶음 단위를 의미한다. 배치가 I→II→III으로 갈수록 함형이 발전되고 성능도 개선·향상된다.
따라서 광개토-III급 배치-II는 한국형 이지스구축함이되, 배치-I격인 현재의 세종대왕급 보다 발전된 성능의 함정을 건조하는 ‘한국형구축함 3단계 두번째 건조사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건조단계 또는 성능향상 단계를 구분하는 용어로는 페이즈나 배치 외에 이지스 전투체계의 성능 단계를 구분하는 베이스라인(baseline)이나 항공기 등에서처럼 블록(block)이 쓰이기도 하는데 그 범위나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과거 포항급 초계함(PCC)이나 울산급 호위함(FF)을 건조할 때는 1차, 2차, 3차 등의 차수로 또는 전기·중기·후기형으로 구분되기는 했지만 배치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현재는 유도탄호위함(FFG)을 건조하는 차기호위함(FFX)사업, 잠수함 건조사업에서도 사업단계를 배치로 구분해 추진하고 있다.
▶ 함명과 약호를 잘 쓰려면
함정은 ‘세종대왕함(DDG-991)’이나 ‘충남함(FF-953)’처럼 함명 뒤에 약호와 숫자로 조합해 병기한다. 함정의 명칭과 용어에 익숙하다면 이 자체로 충분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지스구축함’ ‘한국형호위함’‘유도탄호위함’ 같은 함종 명칭을 앞에 써서 ‘7600톤급 한국형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DDG-991)’으로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자칫 함정 명칭과 관련한 표현은 건조단계나 성능까지 포함하다 보면 점점 길어질 수가 있다.
또 FFG-Ⅱ처럼 약호에 배치(batch) 숫자도 추가하는 예도 있는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형구축함 중 광개토대왕급(3200톤)과 충무공이순신급(4400톤)은 DDH(Destroyer Helicopter)라는 동일한 약호를 쓰지만 건조 단계나 함정 크기가 다르다 해서 굳이 DDH-I급이나 DDH-II급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다. DDH-976 형태로 표기하지 DDH-II 976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유도탄호위함의 경우도 사업명 영문약칭으로 FFX-Ⅱ는 가능해도 취역한 함정의 약호로서 FFG-Ⅱ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름과 용어는 간략하고 명확한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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