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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할아버지 애국심 이어받아
1932년생인 박옹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29일 열아홉의 나이에 소위로 임관, 소·중대장으로 싸웠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전쟁 중에만 두 차례의 화랑무공훈장과 한 차례 보통상이기장을 받았다. 상이기장은 전투 또는 작전상 필요한 공무수행 중 부상한 인원에게 수여된다. 이후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으며 38세인 1970년 12월 31일 전역했다. 두 차례 전쟁에 참여한 박옹의 애국심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박 상병 역시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할아버지께서 참전 당시 얘기를 자주, 생생하게 들려주신 덕에 자연스레 우리 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며 “할아버지 팔에 파편 흔적이 남은 것을 볼 때마다 우리 할아버지가 아닌, 군인을 향한 존경심도 함께 품어 왔다”고 말했다.
운명 같은 인연…같은 곳에서 근무
그런 그도 막상 입대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고. 박 상병은 “사실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군인과 나의 입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다”며 “아무래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애국심’보다는 ‘의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9사단 붉은황금박쥐대대로 자대 배치를 받고, 대대장 면담을 하던 중 박 상병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대대장실 벽면에 걸린 ‘역대 지휘관 명패’ 중 21대 대대장에 할아버지의 존함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박 상병은 할머니, 아버지와의 통화를 통해 할아버지와 자신의 근무 부대가 같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할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며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전투복을 입은 제 모습을 보고 얼마나 뿌듯해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박 상병은 9사단 마크를 단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그의 군 생활도 이때를 기점으로 180도 변했다. 할아버지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군 생활할 때만큼은 ‘참군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이후 그는 이등병 때부터 특급전사에 도전, 일병 초 이를 달성했다. 아울러 팬저파우스트(PZF-Ⅲ) 부사수 직책을 맡았던 박 상병은 매주 실시되는 야간사격에 참여해 능숙하게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 박 상병은 육군 창작뮤지컬 ‘메이사의 노래’에서 ‘라만’ 역으로 캐스팅돼 열연하고 있다.
그는 “뮤지컬 오디션 공고가 뜬 것을 확인하고, 내가 가진 장기와 경험을 살려 국가에 헌신하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됐다”며 “할아버지의 애국정신을 이어 남은 군 생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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