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입틀막’ 검색결과에… 공감, 각성은 확산됐지만

입력 2021. 10. 08   17:09
업데이트 2021. 10. 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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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격차 지수 156개국 중 102위…갈 길이 아직 멀다
<100> 성 평등 광고
 
유엔 여성기구, 양성 평등 광고 캠페인
구글 자동 완성 기능 활용 4편 제작 배포
성적 차별 콘텐츠 심각성 폭로 큰 충격
해시태그·메시지 전 세계에 공유 열풍
여성 문제 넘어 모든 분야 불평등 환기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 (2013). 필자 제공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세계 도처에 성적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탈레반 정권에서 자행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실로 참혹한 실정이다. 여성 인권은 아예 없고, 공포정치만 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인식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2011년 설립된 유엔 여성기구(UN Women)는 성 평등 문제를 세계인들에게 환기하는 광고 캠페인을 전개했다.

2013년 9월 구글 검색 결과에서 여성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으로 표현한 내용에 실망한 유엔 여성기구는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 평등 문제를 온 세계인에게 시급히 촉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엔 여성기구는 매일 60억 건 이상의 검색 결과가 제공되는 구글 자동 완성 기능을 활용한 광고를 만들어 성적 불평등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폭로했다. 선진국에서 살든 개발도상국에서 살든 지구인들은 이 캠페인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광고회사 미맥 오길비(Memac Ogilvy)는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숨겨진 진실’ 편(2013)을 만들었다. 광고를 보면 다소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의 얼굴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4편의 광고로 구성된 캠페인에서는 인종이 다른 여성 4명의 얼굴이 보이는데, 모두 입이 가려있다. 검색 창이 입을 가려버렸다. 말할 권리를 빼앗겼다는 숨겨진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구글의 자동 완성 기능으로 검색한 결과를 여성의 입을 가린 채 검색 창에 노출했다. 검색 창에 나타난 내용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카피는 검색 창에 나타난 검색 결과를 그대로 활용했다. 각 광고의 카피를 보자.

1편에서는 “여자는 ~할 필요가 있다(Woman need to~)”라는 검색 결과를 활용했다. 카피는 이렇다. “여자는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여자는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여자는 통제할 필요가 있다. 여자는 규율을 지킬 필요가 있다.” 2편에서는 “여자는 ~해야 한다(Woman should~)”라는 검색 결과를 카피로 썼다. “여자는 집에 머물러야 한다. 여자는 노예가 돼야 한다. 여자는 부엌에 있어야 한다. 여자는 교회에서의 발언을 금해야 한다.” 3편에서는 “여자는 ~해서는 안 된다(Woman shouldn’t~)”라는 검색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카피는 이렇다. “여자는 권리를 가지면 안 된다. 여자는 투표하면 안 된다. 여자는 일하면 안 된다. 여자는 주먹질하면 안 된다.” 4편에서는 “여자는 ~할 수 없다(Woman cannot~)”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를 카피로 활용했다. “여자는 운전할 수 없다. 여자는 주교가 될 수 없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 여자는 교회에서 말할 수 없다.”

이 캠페인에서는 구글 콘텐츠에 성적 불평등에 관한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줬다. 성적 불평등 문제를 도덕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구글 검색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사람들이 느끼게 했다. 사실에 바탕을 둔 아이디어라 공감의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검색 결과를 여성의 입 위에 배치한 것은 이 광고에서 가장 빛나는 아이디어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입을 막고 말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광고가 나가자 전 세계에서 성 평등에 대한 주제로 열띤 토론과 대담이 진행됐다. 소셜 미디어, TV 토크쇼, 라디오 방송국, 블로그, 국가 간 정상 회담, 그리고 전 세계 교실에서 토론전이 벌어졌다. 수많은 언론에서는 캠페인의 가치를 보도했다. 유엔 여성기구에서 처음으로 트윗한 ‘#womenshould’는 하룻밤 새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해시태그와 메시지는 50개국 이상에서 1억3400만개의 트위터 노출을 생성함으로써 글로벌 현상을 만들어 냈다. 광고 전문지들은 7억5500만 명 이상이 광고를 봤다고 보도했다. 광고 전문지 ‘애드위크(Adweek)’는 이 캠페인을 ‘2013년에 가장 많이 공유된 광고’로 선정했고, 미국공익광고협의회(Ad Council)도 ‘2013년을 대표하는 사회공헌 캠페인’이라고 평가했다.

광고에 대한 호응에 자신감을 얻은 유엔 여성기구는 지구촌 곳곳에 만연한 성적 불평등 의식을 척결하기 위해 다시 캠페인의 불씨를 살려냈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아랍어, 만다린어로 카피를 번역해 여러 나라에서 쓸 수 있도록 저작권을 개방했다. 그러자 전 세계 개인과 조직에서 캠페인의 디자인을 복제하고, 각 나라의 실정에 알맞게 광고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원작 광고를 거의 변형하지 않고 디자인의 기본 형식을 따르며 캠페인의 연속성을 유지했다.

각국에서 넘쳐난 광고 콘텐츠는 세계 곳곳에 산재한 여러 불평등 문제를 폭로하는 새로운 출구로 작용했다. 비단 여성에 대한 성적 불평등 문제만이 아닌 종교, 정치, 성적 취향, 인종, 질병, 세대 간 격차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차별과 불평등 문제들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캠페인의 실로 경이로운 성과는 많은 사람이 광고를 보고 나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는 점은 물론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의 각성이 널리 공유되고 확산했다는 사실이다. 처음의 광고 메시지에서 다른 차별 문제까지 부각시키며 새로운 각도로 메시지가 확장됐으니, 원작 광고가 새끼를 낳은 셈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발표한 ‘성 격차 지수’를 보면 한국은 0.687(1에 가까울수록 평등)로, 156개국 중에서 102위에 머물렀다. 성 격차 지수는 양성평등의 수준을 나타낸다. 한국은 아시아권 국가인 중국(107위)과 일본(120위)보다 높지만, 필리핀(17위)과 라오스(36위)보다 뒤처져 여전히 성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지구촌의 사회 전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격차를 해소하는 데 앞으로 135.6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유엔 여성기구의 광고 메시지는 실로 충격적이다. 여성을 속박의 굴레에 옥죄는 나라가 아직도 많다는 뜻이다. 성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가야 할까 싶다. 세계의 ‘성 격차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00위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다니 놀랍고도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 모두 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야겠다.


필자 김병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광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PR학회장, 한국광고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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