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송 견장일기] 호국영령도, 전사자 유해 찾는 장병도 모두 영웅!

입력 2021. 06. 24   16:32
업데이트 2021. 06. 2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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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 송 육군7사단 포병여단·중령
이 기 송 육군7사단 포병여단·중령

‘6·25 전사자 유해 발굴’. 들어본 적은 많지만 직접 경험한 군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7사단 왕자포병대대장으로 임무 수행 중인 나 또한 20여 년 군 생활에서 처음으로 6주라는 긴 여정을 유해발굴에 동참했다.

준비하면서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간부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원활하게 작전이 진행됐다. 유해발굴작전에 투입된 장병들은 한 구의 유해라도 더 찾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고 그 결과 유해 44구와 유품 1350여 점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유해발굴지역은 강원도 화천군 신읍리 887고지로서, 국군 6사단 7연대가 1951년 6월 철원-김화-화천을 연결하는 와이오밍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중공군 제20군과 약 3일간 치열하게 싸웠던 역사적인 장소다. 887고지는 급경사이며 자주 로프에 의존해 이동해야 할 정도로 험한 지형이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곳에서 조국 수호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신 호국영령들께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70도 이상의 급경사에서 대대 장병들은 낙석사고 등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 안전을 강조하면서 각자 지정된 구역에서 유해발굴을 했다.

유해 및 유품은 887고지 곳곳의 능선에서 다수 발굴됐다. 전방위적으로 치열하게 전투한 흔적이었고, 전장 실상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유해는 두개골, 팔·다리 등 부분 유해가 다수였으며, 녹슨 허리띠·버클, 전투화 깔창 등 다양한 유품들을 발굴했다.

유해와 유품을 보면서 70여 년간 차디찬 땅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바라고 계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또한 20여 년간 군 생활을 한 대대장으로서 나라사랑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군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유해발굴작전에 투입된 부하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이처럼 유해발굴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국보훈의식을 높이고, 선배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을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신교육이 됐다. 사단장님께서도 이를 강조하셨고, 사단 내 대다수 부대가 유해발굴 현장을 견학했다. 발굴에 참여하지 않은 장병들도 유해 및 유품, 발굴 현장을 견학하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에 대해 생각해 보고, 군인으로서의 사생관을 다졌다.

6주간의 유해발굴은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큰 성과와 함께 끝났다. 이는 군인으로서 대적관과 사생관을 확립하고 부대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격려해 주시고 지원해 주신 사단장님과 행정부사단장님, 여단장님, 국방부 유해발굴단장님, 국방부 및 군단 유해발굴팀과 발굴을 위해 절실하게 노력한 대대 전 장병 등 성공적인 유해발굴작전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준 모든 분께 대대장으로서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육체적·정신적 피로에도 불구하고 유해발굴이라는 숭고한 임무를 묵묵하게 수행해 준 부하들과 국방부 및 군단 유해발굴팀은 조국 수호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한 호국영령과 더불어 진정한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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