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군사 선진국들이 국방기술 분야에서 추진하고 있는 혁신 양상이 심상치 않다. 국방기술의 혁신은 기술을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정책과 제도의 혁신을 전제로 한다. 아직 글로벌 거대 방산그룹들의 독점적 지위와 위치를 완전히 흔들어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미 국방부의 제도 혁신 정도는 전통적인 무기체계 획득의 기본 틀과 상식을 완전히 깨버릴 정도로 파괴적이다.
미 국방부와 공군이 2019년 출범시킨 아크넷(ARCNet)의 활동이 단연 눈길을 끈다. 아크넷은 전투원에게 필요한 기술개발을 위해 산·학·연과 정부, 군 간의 컨소시엄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포털이다.
산·학·연은 아크넷을 통해 자금조달부터 기술개발과 시제제작, 군의 전력화뿐만 아니라 민수시장 상용화를 위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을 지원받을 수 있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기술전이 신속획득의 한 형태인데, 중점은 급변하는 전투 소요에 최대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민·관·군 컨소시엄 방식의 연구지원 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아크넷의 세 가지 키워드는 협력과 개방, 그리고 기회다. 이와 함께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신속한 프로세스, 민·군 간 기술과 산업 융합도 주요 덕목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군에서 필요한 기술 요구가 나오기 때문에 군과 국방부가 상위 주체이나 관리와 운영, 참여자 모두 민간 주도로 협력활동을 원칙으로 한다. 컨소시엄의 발굴과 관리, 지원 역시 민간 비영리법인 SPGI가 담당한다.
아크넷 포털에서는 미국 소재 산·학·연이라면 누구나 연 500달러 회비만으로 회원이 될 수 있어서 국방과제 참여에 진입장벽을 아예 없앴다고 볼 수 있다. 회원에게는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나 각 군이 작성한 프로젝트 제안요구서의 요구사항과 목표성능의 상세한 정보가 완전 공개된다. 회원 리스트에는 록히드마틴과 같은 전통 방산 강자들도 있지만 반 이상이 민·방산 가리지 않고 중소기업이나 벤처, 스타트업이며, 회원 간 차등이나 차별은 전혀 없다.
제안서 제출은 요구기술이 있거나 개발능력이 있다면 단독이건 컨소시엄이건 전 회원들에게 열려 있기 때문에 특히 국방조달 실적이 없는 신흥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에게도 거대 방산기업과 동등하고 평등한 기회가 제공된다. 제안공고부터 제안서 제출, 선정까지 60일 이내의 신속한 처리는 기본이다.
철저히 진입장벽을 낮추면서도 대부분 프로젝트는 챌린지 형태의 공개된 개발과 심사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기술이 성숙하고 민·관·군 간의 협력 네트워크가 공고화된다.
아크넷의 지원 대상은 자율기술을 중심으로 정밀항법, 그리고 사이버나 물리체계 기술이다. 프로젝트 리스트는 지능형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나 군집드론, AI엔진과 알고리즘 등 흔히 4차 산업혁명 기술로 통칭되는 기술로 채워져 있다. 군수 영역의 전통강자들보다는 IT, SW 기술에 강한 민간 신흥 벤처와 스타트업들이 힘을 쓸 수 있는 영역이다. 군이 요구하는 기술의 포트폴리오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면에서 이미 소개했던 미 공군의 알파도그파이트 전투기 AI 기동전 챌린지도 아크넷을 통해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50명 규모의 소기업 헤론시스템이 거대 방산기업들을 물리치고 승자가 되면서 아크넷이 지향하는 민·관·군 협동과 개방, 평등한 기회 제공이 현시점에 가장 효과적인 군사기술개발 수단이라는 점이 증명되고 있다.
적어도 이 순간 글로벌 무대에서 민수와 군수기술 간의 장벽이 무너지고 활동 주역들이 바뀌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크넷의 약진은 국방 분야에서 벤처나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국방기술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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