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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야 만화도 그린다

기사입력 2021. 05. 25   16:20 입력 2021. 05. 25   16: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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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만화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부고에 부쳐

 
32년간 작품 몰두 건강 악화 사망
장면 대부분 흑백 펜 선으로 표현

 
대부분 만화가 과한 업무 내몰려
프로 정신 이름으로 버티는 상황
열악한 환경을 장인 정신으로 포장
현 상업만화시스템 되돌아봐야

 

‘베르세르크’ 시리즈의 미완결 마지막 권이 된 40권 표지.  필자 제공

대표적 웹툰 연재란인 네이버 웹툰.  필자 제공

지난 20일 일본 하쿠센샤의 청년지 영애니멀 편집부 트위터 계정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5월 6일 자로 소속 작가이자 ‘베르세르크’ 작가인 미우라 켄타로가 급성 대동맥 해리로 사망했으며, 그의 업적에 경의와 감사를 전하며 명복을 기원한다는 소식이다. 향년 만 54세. 그의 작품세계를 접기엔 아직 이른 나이임에 틀림없다. 미우라 켄타로의 사인인 급성 대동맥 해리는 갑작스레 발병해 48시간 내 사망률이 4할에 이른다는 중증 질환이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비통한 심정으로 ‘납득’이란 걸 했다. 아니길 바랐지만, ‘베르세르크’쯤 되는 만화를 남의 손 빌리지도 않은 채 건강이 악화하는 것을 감내하며 그려온 것을 대부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잡지에 실렸던 작가 후기를 보면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는데 별다른 방도 없이 거의 혼자 작업해 오고 있는 모습이 떠올려진다.

미우라 켄타로는 지난 1989년 ‘베르세르크’를 시작한 이래 그 스스로의 인생을 오로지 외출도, 취미도 없이 오로지 이 작품을 그리는 데에만 모든 것을 바쳤다. 컴퓨터 그래픽이 도입된 지 20여 년을 훌쩍 넘어서는 시점에도 그는 장대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 거의 대부분을 흑백 펜 선을 중심으로 표현했다. 업계 관계자 정도가 아니어도 이 장면들에 어느 정도의 힘이 들어가는지는 장면 그 자체로 납득된다 할 법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미우라 켄타로 하면 평가는 늘 ‘만화의 장인’이었고, 늘 국적을 초월해 그 초인적인 표현력에 경의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젊은 시기 등장해 압도적인 그래픽으로 흑백 만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대가의 여정이 이렇듯 완결을 맺지 못한 채 멈추었다는 점에 비통함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은 까닭은 그의 인생과 문자 그대로 ‘인생작’이 되고 만 작품이 빚어내는 비극성 탓이다.

그런데 그 풍경을 쳐다보고 있자면 문득 몇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만화는 대중문화이자 엔터테인먼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분히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창작자가 창작하는 ‘작품’이라는 관점이 공존한다. 그래서 창작자의 예술적 창조물로서 그 결과물은 또한 TV 드라마나 영화만큼의 대형 자본이 투여된 엔터테인먼트와 양과 질적인 면에서 다를 바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격주간도 아니고 주간 연재가 보통인 웹툰 연재 체제에서조차 회당 70~80컷이라는 막대한 분량을 올 컬러로 연재하는 웹툰의 형태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올 컬러에, 주당 70~80컷이라는 압도적인 분량을, 그리 넉넉하지 못한 고료 체계 안에서 소화하기 위해 도와줄 사람을 많이 쓰지도 못하는데 독자들의 피드백은 그나마도 전혀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작가들에게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만약 작품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면 “짧다!”, “작가가 게으르다!” 같은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현재 대부분의 만화가들은, 한국이고 일본이고 말할 것도 없지만 대부분이 과한 업무를 하고 있다. 대부분이 프로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미우라 켄타로는 그 성격상 그나마도 도울 사람을 쓰는 데에 서툴러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하다가 몸을 망친 경우다. 그 유명한 ‘유유백서’ ‘헌터×헌터’의 토가시 요시히로나 ‘닥터슬럼프’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도 만화 연재로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하물며 한국은 어떠할까. 원고료에 비해 업무량은 과도하다. 또한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압박으로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우라 켄타로는 분명 대단한 작품을 남기다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한국 작가는 엄살을 피우고 있는 걸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과 한국 어느 쪽이든, 상업 만화 시스템은 사람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 유지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걸 미덕으로 여기거나 장인 정신으로 포장하고 있다. 미우라 켄타로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살아서도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못하게 된 이들은 지금도 많다.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펜을 꺾어야 할까? 이제 좀 알 필요가 있다. 만화도 사람이 살아 있어야 그리는 것이다.


필자 서찬휘는 새로운 시각으로 만화를 해석하며 꿈을 전하는 만화칼럼니스트로 『키워드 오덕학』, 『덕립선언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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