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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된 일상… 공인으로 피할 수 없는 ‘명암’ 교차

기사입력 2021. 05. 11   16:28 입력 2021. 05. 11   1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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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스포츠 스타의 숙명

사인 논란 휘말렸던 두 스타
이승엽, 사인 팔린 것 알고 희소성 언급
팬 서비스 적극 나섰지만 ‘역풍’ 맞아

류현진, 실내 훈련 위해 뛰어갔지만
팬 사인 외면으로 오인 비난 받기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75세 윤여정
수상 앞두고 눈에 실핏줄까지 터져
“월드컵 대표·김연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시절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는 류현진 선수.  필자 제공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의 인터뷰는 지금까지도 수상 소식 이상의 감동을 주고 있다. 75세 여배우의 인생을 담은 내용은 잔잔한 여운을 안기며 온라인에서 뜨겁게 회자됐다. 그중 윤여정이 수상을 앞두고 받은 엄청난 부담감을 토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상을) 받을 생각도 없었고 노미네이트 된 것만 해도 정말 영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 너무 힘들었다. 눈에 실핏줄까지 터졌다. 너무 힘들다 보니 운동선수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2002년 월드컵 때 그 사람들 발 하나로 온 국민이 난리 칠 때 선수들은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김연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내가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받는 스트레스였고, 즐겁지 않았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 힘듦의 경중은 있을지언정 ‘일’이란 힘들기 마련이다. 그중 스포츠를 업으로 삼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승부와 관련된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인기 종목의 선수들일수록 성적과 경기 결과에 따라 매일 희로애락을 오간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노출된 삶은 타인의 까다로운 입맛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팬들과 접촉이 어려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끊임없이 사인 논란에 휘말렸다.

사인과 관련해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은 은퇴해서도 욕을 먹었던 레전드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수년 전 한 인터뷰에서 “사인을 많이 하다 보면 그 희소성이 조금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 내용이 은퇴 후에도 그를 옥죄었다. 이승엽과 관련된 기사는 기사 내용보다 그의 이전 사인 관련 인터뷰 내용이 재언급되면서 비난의 성토장이 되곤 했다.

이승엽은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대사 신분으로 각 프로팀 2군 구장을 돌며 후배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셀프 디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수로 활약하는 동안 누구보다 많은 사인을 했고 팬 서비스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로 역풍을 맞았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던 것.

이승엽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사인 거절 논란과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많은 사인을 반복하다가 우연히 내 사인이 팔리는 걸 알게 됐다. 마침 인터뷰에서 사인 관련 질문이 나와 희소성 운운했던 건데 그 말이 이토록 오랫동안 비난을 받을 줄 몰랐다. 어떤 의도였든 내가 내뱉은 말이라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앞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 싶다.”

메이저리거 류현진도 사인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찍힌 동영상 때문이었다. 당시 팀을 이끌던 LA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현 마이애미 말린스)과 클레이턴 커쇼가 훈련을 마치고 양쪽에서 사인을 하고 있는 가운데 류현진이 팬들을 뒤로한 채 클럽하우스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노출된 것이다. 이후 류현진은 사인 거부 논란에 휘말렸고, 어깨 수술과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동안 팬들의 비난은 더 가중됐다.

류현진은 스프링캠프가 열릴 때마다 다른 선수들 못지않게 팬들의 사인 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팬들의 사인 요청을 뒤로하고 클럽하우스로 뛰어 들어간 영상은 당시 실내 훈련 프로그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속사정을 알 리 없는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류현진으로선 억울한 면도 있었을 터.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누구보다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실제로 시간 될 때마다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걸 주저하지 않았던 터라 영상 하나로 자신의 팬 서비스가 지적을 받는 게 안타까웠던 것이다.

2018년 시즌 초 롯데 자이언츠가 개막 7연패에 빠진 날 사직구장에서 퇴근하는 이대호 등 뒤로 누군가 치킨 박스를 던진 일이 있었다. 등에 치킨 박스를 맞은 이대호는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발걸음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당시 장면은 동영상으로 촬영돼 온라인에 퍼지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아무리 선수들한테 화가 났다고 해도 일부 팬들의 선을 넘는 행동은 큰 비판을 받았다.

훗날 한 선수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팬들이 당신의 등 뒤로 치킨을 던진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는 내용이었다.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 같으면 그 치킨 박스를 집어 들고 퇴근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화를 내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치킨 들고 ‘잘 먹겠다’며 인사하고 나갔을 것이다. 우린 공인 아닌가? 어떤 상황에서도 대중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게 공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영미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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