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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원 조명탄] 우리가 쓰는 말은 다 우리말인가

기사입력 2021. 04. 30   16:31 입력 2021. 04. 30   16: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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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어사전에 실린 우리말이라고 해서 모두 우리가 만든 고유어는 아니다. 국가 간 접촉으로, 혹은 외국인의 이입으로 외국에서 만들어지고 외국인들이 사용하던 말들이 한국어 속으로 들어와 사용되기도 한다. 바로 외래어들이다. 한국어에 존재하는 단어의 30~40%가 외래어니까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이다. 물론 그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한자로 만들어진 한자어들이다. 그런데 한자어라고 해서 모두 중국인이 만든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도 꽤 많고, 우리가 만든 한자어들도 수는 적지만 존재한다.

내가 1990년대에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중국에 ‘주유소’가 없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자동차에 넣는 기름을 파는 가게는 많았지만 그 명칭이 ‘주유소’, 즉 ‘기름을 넣는 곳’이 아니라 ‘가유점’, ‘기름을 더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주유소’가 한자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중국인들이 만들었으리라는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진 날이었다. 그 후 일본에 가게 됐을 때 ‘주유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한자어가 일본인들이 만든 것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신문물과 관련된 많은 어휘를 그대로 외래어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사용하는 한자를 이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특히 사회학·심리학·철학 같은 신학문이나 신문물과 관련한 어휘들이 많다. 이들이 개화기 때 우리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우리말에는 한자어지만 일본어에 뿌리를 둔 외래어가 많이 있다.

나라가 해방된 후 우리말을 되찾자는 강한 열망은 ‘일본말 몰아내기’를 목표로 하는 국어순화운동으로 타올랐다. 그 결과 ‘다마네기, 벤또, 요지’ 같은 일본어들이 ‘양파, 도시락, 이쑤시개’로 순화됐다. 일본어 고유어라서 누가 봐도 일본어가 분명해 보이는 말들은 우리말에서 거의 다 사라진 것이다.

다만 일본에서 만든 ‘일본식’ 한자어들은 일본어 발음 대신 우리식 한자음으로 바꿔 읽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들이 일본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들은 우리말 속에 그대로 외래어 자격으로 남아 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원래는 우리말 표현이 아닌 말들이 한국어로 번역돼 마치 예전부터 우리가 쓰던 것인 양 사용되는 것이다. ‘불후의 업적’ ‘불후의 명작’ 같은 명사구, ‘애교가 넘치다’나 ‘못이 박히다’ 같은 관용 표현들은 애초에 우리말에 없던 것들인데 일본어가 번역돼 들어와 우리말이 된 예들이다.

물론 자국인들이 만든 고유어만 가지고 의사소통하며 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원래부터 있던 고유어에 다양한 외국어 단어와 표현들이 더해지고 이들이 외래어로 인정받아 자국어 사전에 등재되는 과정을 거친다. 외래어는 그 나라의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이점도 지닌다.

현대에 와서는 일본어 외래어보다 영어로 대표되는 서구어로 된 외래어가 늘고 있다. 심지어 아직 외래어로 인정받지 못한 외국어 단어들이 마치 한국어인 양 버젓이 우리말 속에 섞여 사용되기도 한다.

가능하면 우리말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가장 좋다. 만일 우리말에 적절한 단어가 없다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될 때, 마지막 단계로 외국어 단어에 외래어 자격을 부여하고 우리말로 받아들이는 순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어를 그대로 쓰다가 뒤늦게 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힘은 더 들고 효과는 떨어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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