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건재한 칼

입력 2021. 02. 25   16:09
업데이트 2021. 02. 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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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도검

 
총·화약에 밀렸지만 대표적 개인 병기
장수 권위 상징…제식·의장 활용 높아
롤플레잉게임 속 마법 깃든 무기 인기
‘다크소울’ 다양한 도검류 운용의 재미
‘리니지’ 집행검 억대 가격 아이템 명성


무력을 은유하는 말에는 ‘총칼’이라는 표현이 있다. ‘적들의 총칼 앞에 굴하지 말고’ 같은 표현으로 사용되는 이 말을 곰곰이 뜯어보면 흥미로운데, 당대의 가장 보편적인 무기인 총 외에도 이미 제식 병기로는 한 시대를 지나 버린 칼이라는 이름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화약 병기의 압도적인 사거리와 살상력에 밀려난 근대 이전 냉병기(Cold Weapon·무기 중 화약의 힘을 이용하지 않는 것들을 총칭) 중에서도 사람들은 칼, 도검류를 가장 가깝게 떠올린다. 실제 전장에서의 활용이 창보다 비효율적이었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여전히 우리는 냉병기의 대표 무기로 도검류를 상상하곤 한다. 많은 게임에서 공격 버튼을 칼 모양으로 만드는 배경은 이런 상상에서 나온다.


제식·활용성 겸비한 고전 무기의 대명사

원시 시대에서 나름의 문명을 갖춘 고전 시대로의 진입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으로 농경을 꼽지만, 병기의 체계에서는 도검도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자루의 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이 청동이건 철이건 상관없이 일단 금속을 녹여 제련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광석을 녹여 금속을 추출하려면 그만큼의 높은 온도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했고, 청동검의 출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정한 문명이 도달한 기술적 특이점이었다.

초창기에는 워낙 만드는 데 공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검은 무기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의식용으로서의 의미도 컸다. 실전에서의 활용도 높긴 했지만, 막상 대규모 군세가 맞부딪치는 전장에서는 좀 더 제작 단가가 저렴하고 초심자도 쉽게 쓸 수 있으며 밀집 대형에서 강력한 힘을 내는 장창류를 능가하는 효율이 나오긴 어려웠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고전 시대의 전장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 검은 주로 장군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출정하는 장수의 권위를 실어주기 위해 군주의 보검을 하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도검의 이러한 권위로서의 의미는 검의 실전적 의미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남아 장군 임명 때 주어지는 삼정검과 같은 의장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식용으로의 용도가 컸다지만 그렇다고 도검류가 무의미한 무기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도검은 수많은 전장에서 무수한 적을 쓰러뜨린 분명 강력한 무기였다. 휴대가 간편했고 무겁고 긴 장창에 비해 근접전이나 소규모 전투에서는 매우 강력한 성능을 발휘했다. 날붙이의 발명 이전에 무기로 쓰였던 둔기류에 비해 도검류는 적을 베어 상처를 입힌다는 점에서 둔기보다 높은 살상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단검부터 시작해 양손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로 파생되며 전장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드러낼 수 있었다.

야금(冶金)과 제련(製鍊)이라는 기술적 토대 위에 편의성과 강력함으로 만들어진 공격력, 그리고 다채로운 양상으로의 발전을 통한 전장 적응성으로 도검은 냉병기 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비록 현실의 전장에서는 화약 무기의 등장 이후 사실상 그 실효성이 멈춰버렸지만, 가상의 공간인 디지털게임 안에서 도검은 여전히, 아니 어떤 면에서는 실존했던 모습 이상으로 강력한 무기로 다뤄지곤 한다. 때로는 마법으로, 때로는 물리력으로, 혹은 현금성으로….

도검류는 집단으로 운용하기보다는 개인 병기에 가깝게 활용되다 보니 게임에서도 주로 개인 무장에서 세세한 정교함이 잘 드러나는 편이다. 독자들 대부분이 아마도 게임에 나오는 도검이라고 하면 상상할 수 있는, 롤플레잉 계통 게임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무기가 대표적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하늘노래 마법검은 도검이지만 물리공격력 대신 옵션으로 붙은 마법효과를 위해 착용한다. 검의 마법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  필자 제공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하늘노래 마법검은 도검이지만 물리공격력 대신 옵션으로 붙은 마법효과를 위해 착용한다. 검의 마법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 필자 제공

도검은 단순한 살상용 무기 이상으로 의장용, 제식용으로서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무기로 등장할 때는 좀 더 마법적인 힘이 부여되는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이를테면 인기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였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도검류들에 붙는 속성들이 대표적이다.

최일선에서 적의 공격을 안전하게 받아내는 역할인 탱커로서의 전사는 두꺼운 판금 갑옷과 방패 외에도 한 손 도검을 장비로 갖춰야 했지만, 공격력보다는 도검조차도 방어력과 생명력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세팅이 요구되었다. 도검에 방어 숙련도 옵션이 붙어 있는 경우를 찾는 등 무기의 역할보다 방어적인 세팅에 알맞은 검들을 찾는 모습이 적지 않았다.

같은 게임의 마법사들도 도검을 착용할 수 있었는데, 클래식 버전에서 마법사들의 인기 도검으로는 ‘하늘노래 마법검’이라는 장비가 있었다. 실제 무기 공격력보다는 착용 효과로 붙는 주문 극대화 확률 및 피해량 증가 옵션이 크게 인기를 얻은 점은 돌이켜보면 도검이라는 무기가 갖는 상징성이 잘 드러나는 사례이기도 하다.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각종 도검류의 미세한 차이가 섬세하게 드러나는 게임도 있다. 어렵기로 유명한 ‘다크 소울’ 시리즈는 검 외에도 다양한 무기를 다루지만, 도검류에서 드러나는 길이와 무게가 만드는 차이가 세밀하게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다크 소울’ 1편에 등장하는 도검류는 단검부터 시작해 특대형 도검까지 다채롭다. 근거리 등에 특화된 단검,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찌르기와 베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한 손 직검, 베기에 특화되었지만 갑주에 덜 박히는 곡검, 양손으로 운영하는 대검과 특대검까지 각각의 도검류는 길이와 무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운용이 필요하다. 한 방 한 방을 둔기처럼 운용하는 대형 도검으로 일격필살을 노리거나, 연속 공격에 특화된 곡검으로 적의 공격을 흘려내며 뒤를 잡는 민첩한 플레이를 무기 선택에 따라 구사할 수 있어 도검의 여러 유형이 갖는 장단점을 체험해볼 수 있다.

도검의 제식성과 활용성을 다룬 게임들은 소개한 것 이외에도 많지만, 만약 유명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아마도 가장 유명할 게임 속 도검 하나를 빼놓기 어려울 것이다.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탄생했는데 사회면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리니지’ 시리즈의 도검 ‘진명황의 집행검’이다.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엔씨 다이노스는 우승 세리머니로 자사 게임 <리니지>의 인기 아이템 ‘진명황의 집행검’ 퍼포먼스를 벌였다. 게임 아이템이 현실에 등장한 독특한 순간이었다.  
 출처=엔씨다이노스 홈페이지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엔씨 다이노스는 우승 세리머니로 자사 게임 <리니지>의 인기 아이템 ‘진명황의 집행검’ 퍼포먼스를 벌였다. 게임 아이템이 현실에 등장한 독특한 순간이었다. 출처=엔씨다이노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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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 세계 내에서 수많은 자원과 시간을 들여야 제작할 수 있는 ‘진명황의 집행검’은 들어가는 공만큼이나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며 게임 내 인기 아이템의 반열에 들었다. 여기에 더해 현금을 통한 아이템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집행검’의 가격은 현실의 화폐로도 하늘을 찌르는 기세를 보였다. 한 자루에 수천만 원, 여차하면 1억 원을 넘어서는 가격은 가상세계의 검 하나를 현실의 뉴스와 이슈란에까지 소환해내며 이제는 현금 거래 가능한 게임 아이템의 가장 대표적 사례로 자리했다.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엔씨 다이노스의 우승 세리머니로 그 명성은 게임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알려졌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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