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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 불가능은 없다

기사입력 2021. 02. 25   16:50 입력 2021. 02. 25   16: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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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우 소령
육군공병학교 공보정훈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했던가? 공보정훈병과 장교로서 세 번이나 공병부대에서 근무하다 보니 이제는 반 공병이 된 느낌이다.

공병부대에서의 첫 근무는 너무도 강렬했다. 한빛부대 2진으로 파병 당시, 현지 내전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함께한 공병 전우들은 갈 곳 잃은 난민들을 위해 단 며칠 만에 수용시설을 만들고 밤낮으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었다.

또한 보급품이 원활하게 지원될 수 있도록 총성이 울리는 지역에서도 도로를 뚫고 때로는 덤프트럭을 이용해 식량을 나르는 등 난민들이 안전하게 최소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당시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과 현지인들은 “한국군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며,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나는 한빛부대 10진으로 재차 파병을 다녀왔는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322㎞에 달하는 도로 보수 작전을 남북 동시 진행이라는 창의적 발상으로 최소 인원을 투입해 최대 성과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치는 모습을 보면서 공병의 집념과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체험했다.

‘시작과 끝은 우리가!’ 공병의 신조다. 이 짧은 문장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공병은 전장의 맨 앞에서 장애물을 개척하고 도로와 다리를 건설해 아군의 기동을 촉진하며, 동시에 적의 진출을 막는 등 전쟁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다.

6·25전쟁에서는 부대 이동과 전투력 보존을 위해서 공병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전투를 제외하면 불가능이란 없어야 했고, 그것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병은 고도로 숙련된 기술인력을 배출해 전후 국가 재건에 동력을 제공했으며,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며 싸운다’는 모토 아래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공사에 투입되는 등 국가기반시설 건설의 선두에 섰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이 100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던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렇듯 공병은 전시에는 시작과 끝을 담당하면서 첨병 임무를 수행하고, 평시에는 건설과 재건을 통한 대민지원과 국위 선양에 앞장서 왔다.

공병은 오는 3월 1일 병과 창설 73주년을 맞이한다. 나는 육군공병학교에 근무하면서 공병의 과거·현재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보고 있다. 지금 공병은 야전에서 필요로 하는 전투공병 육성은 물론 ‘공병비전 2050’을 바탕으로 미래 전장에서 맹활약할 드론, 레이저, 인공지능 등의 신기술 무기체계 도입을 누구보다 빠르고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온 공병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강한 육군, 내일이 더 좋은 육군’을 만드는 데 선봉에 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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