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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조명탄] 콩나물 예찬

기사입력 2021. 02. 24   15:16 입력 2021. 02. 24   15: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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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농촌사회연구자·작가



“엄마가 콩나물 300원어치 달래요.” 인생의 첫 비즈니스다. 어린애라고 적게 담아줄지도 모르니 봉지에 손가락으로 금을 그어주면서 “이만큼은 채워와야 300원어치야”라는 엄마의 지령을 받고, 콩나물을 얼마나 담아주는지 또록하게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엄마한테 많이 드렸다고 해”라며 한 줌 더 넣는 액션을 보여주셨다. 콩나물 심부름은 7살 인생에게 주어지는 첫 미션이었고 대체로 ‘미션 클리어!’. 요즘은 포장 콩나물을 사 먹기 때문에 많이 사라진 장면이지만 여전히 전통시장이나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시루에서 덜어서 판다.

가사노동 참여도 콩나물로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콩 껍질을 잘 벗겨내는 일인데 손이 작아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위험하지도 않아서다. 드라마에서 콩나물 대가리와 뿌리까지 떼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어린 눈에도 저걸 다 떼어내면 과연 남는 것이 있을까 궁금했다. 잘사는 집은 원래 저렇게 먹는지도 궁금했다. 대개 보통의 가정들은 콩나물 한 줌도 알뜰하게 먹는다. 그런데 요즘은 콩나물을 다듬는 일도 드물다. 공장에서 길러진 콩나물은 자동세척기를 통과하면 웬만한 콩 껍질은 다 제거된다. 씻어서 나오는 콩나물도 많은데 봉지를 뜯고 바로 요리해 먹을 수 있어서 무척 편리하다.

콩나물과 두부는 가정에서도 군대에서도 필수 식재료다. 특히 콩나물은 사시사철 공급할 수 있는 채소이자 가격이 일정한 편이다. 지금처럼 시설재배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콩나물은 겨울에 먹을 수 있는 신선채소였고 직접 길러 먹는 집도 많았다. 시루에서 기르는 콩나물은 물만 주어도 쑥쑥 잘 자라 ‘콩나물처럼 쑥쑥 큰다’라는 말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빽빽한 시루에서 자기 자리 하나 차지하느라 애를 쓰는 콩나물을 보면 만원 버스가 왜 콩나물시루 같은지도 알 수 있다.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 일대여서 한국은 콩요리가 발달한 지역 중 하나다. 콩나물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콩나물은 중요한 식재료지만 워낙 흔하다 보니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콩나물이 없는 우리 밥상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시중에 나와 있는 콩나물은 크게 두 종류다. 보통 ‘곱슬이’라 부르는 짧고 곱슬곱슬한 콩나물은 국밥이나 무침용으로 많이 쓴다. 소립종 콩을 사용하며 싹이 나면 종종 뒤집어줘 일정한 방향성 없이 자라게 한다. ‘일자 콩나물’도 있다. 일자로 곧게 뻗은 데다 몸통이 통통하다. 한때는 비료 녹인 물을 주어 크게 자라는 것이라는 의심을 했지만 대립종 콩을 원료로 써서 그렇다. 식당에서 많이 쓰는데 아귀찜이나 생선탕에는 일자 콩나물을 쓴다. 그런데 콩이 커서 요리가 지저분해지고 입에 이물감이 커서 주로 머리를 떼어낸다. 도끼빗이라 부르는 머리빗으로 빗어 콩을 떼어내는데 요즘은 ‘두절기’로 처음부터 콩나물 대가리를 제거해 공급하기도 한다. 콩나물 하나에도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집에서 기르든 공장에서 기르든 콩나물은 어둠 속에서 자란다. 흙 한 줌 없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어디서 영양을 공급받아 자랄까 싶지만 제 몸에서 에너지를 내서 자란다. 콩나물 콩에서 싹이 나는 데는 이틀 정도 걸리지만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오랜만에 기억을 더듬어 콩나물을 길러본다. ‘콩순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새벽녘 물을 마시러 가다 콩순이에게 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면서 ‘콩순이 파이팅!’도 외쳤다. 그 응원은 어쩌면 나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콩순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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