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식 종교와삶]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입력 2021. 02. 16   15:54
업데이트 2021. 02. 1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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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식 해군교육사령부 군종실·신부·대위
김안식 해군교육사령부 군종실·신부·대위

“‘저녁이 됐다.’(신약 마르코 복음 4장 35절)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몇 주 전부터 저녁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짙은 어둠이 광장과 길거리와 도시로 몰려들었고, 우리 삶을 침묵과 허무가 사로잡아버렸습니다. 그건 지나가는 모든 것을 마비시킵니다. 공기 중에 느껴지고, 몸짓으로 알 수 있고, 눈길로 말을 합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2020년 3월 28일 로마 바티칸에서 진행된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전하신 말씀 중 일부다.

우리는 일상을 잃었고 두려움에 빠져 방황하게 됐다. 그리고 벌써 1년이 지났다. 이제 슬슬 백신이나 치료제 소식이 나오면서 일상으로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니, 이미 일상 전반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시대에 누군가는 묻는다. ‘코로나19 이후, 과연 가시적인 종교가 필요한가?’ 종교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데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물론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종교도 진지한 성찰을 통해 쇄신과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방안도 다양하게 모색해야 함이 마땅하다.

나만 보아도 그렇다. 사실 그동안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성당이라는 공간 안에만 계신다고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요즘 종교시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 많은 사람의 모습을 통해 이제 세상 안에서 신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도 배워야 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군인, 의사, 간호사, 마트 직원, 택배 및 배달 종사자, 자원봉사자 등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매일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공포심’ 대신 ‘공동책임’이라는 가치 아래 희망을 퍼뜨리는 모습에 감동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이제 습관을 고치고, 눈길을 돌리고, 기도를 재촉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행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진짜 일, 우리가 창조된 뜻대로 서로를 보살피고 보호하며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시련이 왜 나에게 닥쳤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코로나19라는 사건은 종말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종교는 이번에도 새로운 시작, 곧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희망은 절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어렴풋이 시작되지만, 그러나 분명히 정오를 향해 나아간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주기에 따라 흘러간다. 이번 일도 거대한 주기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수천 년의 역사 안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분명 ‘종교가 세상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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