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버전보기

국방일보

2021.04.15(목)

속보 보러가기
오피니언  < 조명탄

[황두진 조명탄] 부모님 인터뷰

기사입력 2021. 02. 10   14:42 입력 2021. 02. 10   15:12 수정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카카오톡 바로가기

황 두 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깨달았다. 그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물론 다섯 살 무렵 이후의 기억이야 없을 리가 없다. 통상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오갈 정도의 대화는 있었고, 딱 그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아버지가 어렸을 때 혹은 청년이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갖고 사셨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이제 전혀 알 길이 없게 됐다.

상실감은 사람에게 색다른 용기를 주기도 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신다. 어머니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어머니는 하하 웃으시며 “부모 자식 간에 무슨 인터뷰냐” 하셨다. 하지만 예정된 날에 찾아가니 옷을 갖춰 입고 제대로 준비를 하고 계셨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녹음기를 켜고 작은 수첩을 꺼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아들과 어머니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원산에서 태어나셨다. 김일성 치하의 이북에서 공산주의도 경험하셨다.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전쟁이 났고 결국 가족과 헤어져 홀로 흥남부두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전차상륙함(LST) 조치원호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는 ‘금순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처음으로 밟은 이남 땅은 거제도. 여기서 얼마간 지내다가 부산으로 나갔고, 결핵에 걸려 마산 요양소에 계시다가 전쟁이 끝날 무렵 서울로 올라와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잡지사에 근무를 했단다. 그러다가 하숙집 친구의 소개로 아버지를 만나고….

듣다 보니 이것이 개인의 이야기인지, 역사책의 한 구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태어나서 나를 낳을 때까지, 한반도가 가장 요동치던 한 시절의 이야기를 다 이야기하고 난 어머니는 생끗 웃고 계셨다. 하지만 정작 인터뷰를 진행한 나는 멍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너를 낳았어. 그 이야기가 궁금했던 거지?” 하시는 어머니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 같았다. 청춘이 있었고, 희망과 좌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여자, 한 사람이었다. 수십 년을 모자지간으로 살아왔지만 이날을 계기로 어머니와 나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후 인터뷰에 재미를 들였다. 장모님께로 눈길을 돌렸다. 장모님의 고향은 함흥, 원산이 고향인 어머니와는 같은 함경도 출신이다. 혹시 두 분의 인생 궤적이 겹치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장모님은 “우리 사위가 웬일로 나를 인터뷰하자고 할까” 하시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역시 옷을 단정하게 입고 나를 기다리던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대를 이어 기독교를 믿었던 장모님 집안은 공산 치하에서 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몰래 기차를 타고 철원까지 내려왔는데, 이미 철도는 거기서 끊겨 있었다. 한밤중에 한탄강을 맨발로 건너 38선을 넘었다. 소련군과 미군을 번갈아 만나며 서울로 왔다. “서울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길도 좁고 집들이 게딱지같이 산등성이까지 들어서 있어서 처음엔 좀 실망했어.” 이렇게 시작된 장모님의 이남살이였다. 그러다가 장인어른을 소개받았고 첫딸을 낳았고….

이 역시 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일부러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면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적어도 한 번은 그 살아온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결국 사람과 사람은 서로 연결되고 인생은 수많은 인연이 교차하는 장대한 드라마다. 어떤가, 다음 휴가 때 부모님을 인터뷰해 보심이?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0

의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