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종교와삶] 제비꽃의 전략

입력 2021. 01. 19   16:19
업데이트 2021. 01. 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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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육군본부 군종실장·법사·대령
이정우 육군본부 군종실장·법사·대령

어릴 적, 같은 들꽃이라도 제비꽃에 대한 인상은 남달랐다. 작고 아담해서도 그렇거니와 어디든 흔하게 있지만 진한 보라 색깔이 왠지 강렬하고 도도하면서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그때 입력된 인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비꽃은 담 밑이나 오솔길의 햇살이 잘 드는 곳 등 어디서든 잘 자란다. 심지어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이나 도시의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어떻게 제비꽃은 견디기 힘든 이런 곳에 씨앗을 뿌려 피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비꽃의 씨앗 겉면에는 ‘엘라이오솜’이라는 젤리 같은 물질이 붙어 있다. 이것을 개미가 아주 좋아하는데, 개미는 이 엘라이오솜을 먹기 위해 제비꽃 씨앗을 통째로 제집으로 물어 간다. 그러니 발이 없어도 제비꽃 씨앗은 멀리까지 갈 수 있고 좁은 틈 사이에도 뿌리 내릴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개미는 땅속 깊이 지어 놓은 자신의 집에까지 제비꽃 씨앗을 물고 들어가는데, 개미의 복잡하면서도 훌륭한 땅속 아파트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되면 씨앗이 깊은 땅속에서 싹을 틔우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웅 제비꽃님은 그것을 이미 계산에 넣고 있다. 개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씨앗에 붙어 있는 엘라이오솜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엘라이오솜을 취한 영리한 개미는 제비꽃 씨앗을 집 바깥 쓰레기장에 분리수거한다. 개미집은 반드시 흙이 있는 곳에 있고, 개미가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는 먹고 남은 식물 찌꺼기도 있어 제비꽃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해서 제비꽃의 종족 번식 전략은 멋지게 성공하게 된다. 이 외에도 가루받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나비나 꿀벌들을 유혹하는 등 제비꽃의 전략들은 군사전문가도 울고 갈 정도로 천재적인 수준이다.

이처럼 한낱 야생초에 불과하다고 믿는 제비꽃마저도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살아가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인간들은 매우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룡이 지구상에서 1억 년 이상을 지배했는데 과연 인간은 앞으로 1억 년 이상 지구의 패권을 잡을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패권을 잡은 지 겨우 몇만 년도 안 된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에도 꼼짝 못하고 팬데믹에 빠진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의 오만과 무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2021년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치밀한 전략을 미리 세워 놓았는가? 2025년, 2030년, 2050년을 위한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는가? 너무나 작고 연약해 보이는 제비꽃마저도 미래 생존을 위해 놀라울 만큼 억센 생명력과 치밀한 작전계획을 가지고 생을 살아가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혹시 안이함과 나태함,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과 조직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우리가 종교에서 ‘깨달음의 경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것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이룬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평소 자신과 조직, 나라를 위한 마음에 항상 노심초사 깨어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1년, 허무하게 보내는 한 해가 되지 않도록 치밀한 계획 아래 최선을 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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