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산다

입력 2020. 12. 01   16:41
업데이트 2020. 12. 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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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일상력 챌린저: 일상을 가꾸는 힘+도전하는 사람-소소한 도전으로 일상을 가꾸는 힘을 기르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에 비중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 찾는 일상
운동·요리 등 다양한 도전 트렌드

남성의 소비 성향이 여성에 비해 낮다는 것은 국가를 떠나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다. 실제 구매 결정 과정에서 최후의 결정권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동차나 맥주와 같이 전통적으로 남성 품목으로 여겨지던 것들도 구입 브랜드를 결정하는 비중은 여성이 더 높다. 소비 생활에서 한국 남성은 다른 나라 남성과 비교해 여성에 대한 의존이 컸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결정해 구매하는 행위에 서툴렀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남성이 2000년 이후 사용 금액과 구매량에서 압도적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소비 품목이 있으니, 바로 남성 화장품이다.



지난 2015년 보수적인 풍토의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던 때 1990년생 남자 직원과 면담하다가 얼굴 피부가 조금 남달라 보여 화장을 하는지 물었다. “네. 보통 때는 기초화장만 하는데, 피부색이 안 좋을 때는 색조도 좀 해요.” 사실 색조화장을 좀 짙게 한 것 같아서 물은 것이었다.

광고 회사에 다녔던 2005년에는 ‘강한 여자, 예쁜 남자 Ms. Strong, Mr. Beauty’란 트렌드 보고서를 낸 적 있다. 그때 이미 한국 남성들은 주 1회 이상 화장품을 사용하는 비율에서 2위 그룹인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를 2배 이상 앞서고 있었다. “독일은 맥주를 음료로 마실 만큼 물이 워낙 좋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래바람으로 피부가 잘 상해서라지만, 금수강산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왜 이렇게 화장품을 많이 쓸까?”라는 질문을 농담 삼아 던졌었다.

이런 경향은 계속 확대됐다. 2016년 유로모니터라는 조사회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화장품 소비 금액은 2위인 덴마크의 4배 이상이었다. 올해 오픈서베이의 ‘남성 그루밍 트렌드 리포트 2020’ 보고서에서는 한국 남성이 1인당 사용하는 화장품 개수가 8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 같은 남성 화장품 사용의 가파른 증가세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화장품 사용에 부는 바람이 있다. 화장품 사용 단계와 그에 따른 개수를 줄이는 ‘화장품 다이어트’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파데 프리’란 용어가 2017년부터 언급되기 시작했다.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는 것인데, 피부 건강을 지키며 자기다움을 찾는 신념적인 의미가 담겼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꾸안꾸’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결점을 일시적·표피적으로 가리는 것에서 나아가 피부의 건강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며, 속부터 건강한 피부를 가꾸려고 노력한다. ‘좋은 피부를 만드는 방법’으로 ‘이너 뷰티(inner beauty)’가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좋은 피부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자주 언급된다. ‘좋은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과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챙겨 먹는 것’이다. 좋은 생활습관이란 무엇인가? 물 많이 마시고, 잠 잘 자고,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다.

1990년에 큰 화제가 되며 유행어를 탄생시킨 화장품 광고가 있다. 이 광고는 ‘잠이 길을 막았지만, 미인이기에 용서된다’는 멘트와 함께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카피를 보여준다. 이때 잠으로 대표되는 행위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는 아름다움을 위해 상궤(常軌)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래서 아름다워지면 결과로서 용인되는 식이었다.


최근에는 올바른 습관으로서 잠을 비롯한 다른 일상 행위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운동이 대표적이다. 지난 11월 11일 자 ‘홈트’에 관한 글에서 말했듯, 삶을 투영하고 소화하며 소소하게나마 이루는 성취와 그곳에서 느끼는 기쁨을 강조한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 류은숙 작가의 『아무튼, 피트니스』 중



‘You Only Live Once’의 각 단어 앞글자를 딴 ‘욜로(YOLO)’가 MZ세대를 넘어서 시대를 대표하는 트렌드 키워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기가 있었다. 2017년 트렌드 키워드로 제시된, ‘현재에 충실하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미루지 않고 의미 있게 즐긴다’라는 뜻이었는데 ‘의미’는 증발하고 ‘즐긴다’만 남았다. 그래서 과소비로 흐르는 듯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약간 겸허해진 느낌의 단어가 다음 해에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MZ세대가 현재에 무게 비중을 높게 두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는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구직자들이 신입사원 면접 때 가장 힘들어하는 질문은 “10년 뒤에 회사에서 어떤 모습일 것 같나?”와 같이 미래의 꿈이나 모습을 그리라는 것이다. 면접에 나선 이들에게 10년은 너무 멀고 그래서 가뜩이나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2017년에 방영된 공중파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주인공 고아성은 그런 질문을 하는 면접관에게 “5년 후의 미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좋게 말하면 현실에 충실한 것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래를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현실이 힘든 것이다. 소확행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해서 ‘채집’해야 한다.



“이제는 안다. ‘마음 놓고 행복해할 수 있는 때’ 같은 건 인생에 없다는 사실을. (중략) 그러니 바쁘더라도 요령껏 시간을 내서 틈틈이 행복해야 한다. 작고 귀여운 기쁨이라도 모아야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김혜원 작가의 『작은 기쁨 채집 생활』 중



하루하루 쌓아가는 ‘소확성(소소하고 확실한 성취)’이 먼저가 되었다. 그 성취를 이루는 과정이 의무처럼 부과되지 않고, 스스로 택하여 도전하는 모습으로 놀이처럼 만들어 즐겼다. 올해 우후죽순처럼 나왔던 수많은 일상 속의 챌린지들이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다. 달고나 커피로부터 시작해 밀키트와 와플팬의 활용에서 더 진화한 요리 챌린지들에서는 계절 식재료를 사용해 손쉽게 조리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작게나마 끊임없이 시도하고 성취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올해를 수놓았던 등산과 명상의 인기도 일거에 100개 산을 오르라고 몰아친다든지, 깨달음을 얻도록 밀어붙이지 않아서 가능했다. 자신들이 알아서 시기나 강도를 조정할 수 있게 했고, 앱들은 정말 그저 거들뿐이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 한 몸은 초개와 같이 희생’과 같은 거창한 명분과 부담 속에 먼 목표를 강조하지 말자. 바로 눈앞에서 이룰 수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을 공감과 함께 내디딜 수 있도록 하자. 그러므로 이전에 한 일의 평가와 질책에 그치기 쉬운 피드백(feedback)을 앞으로 나아가고 격려하며 길을 제시하는 피드포워드(feedforward)로 업그레이드시키자. 그곳에서 MZ세대의 ‘이너 뷰티’가 화사하게 꽃피며, 온 세상을 더욱 밝게 만들 것이다.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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