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에 비중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 찾는 일상
운동·요리 등 다양한 도전 트렌드
남성의 소비 성향이 여성에 비해 낮다는 것은 국가를 떠나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다. 실제 구매 결정 과정에서 최후의 결정권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동차나 맥주와 같이 전통적으로 남성 품목으로 여겨지던 것들도 구입 브랜드를 결정하는 비중은 여성이 더 높다. 소비 생활에서 한국 남성은 다른 나라 남성과 비교해 여성에 대한 의존이 컸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결정해 구매하는 행위에 서툴렀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남성이 2000년 이후 사용 금액과 구매량에서 압도적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소비 품목이 있으니, 바로 남성 화장품이다.
지난 2015년 보수적인 풍토의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던 때 1990년생 남자 직원과 면담하다가 얼굴 피부가 조금 남달라 보여 화장을 하는지 물었다. “네. 보통 때는 기초화장만 하는데, 피부색이 안 좋을 때는 색조도 좀 해요.” 사실 색조화장을 좀 짙게 한 것 같아서 물은 것이었다.
광고 회사에 다녔던 2005년에는 ‘강한 여자, 예쁜 남자 Ms. Strong, Mr. Beauty’란 트렌드 보고서를 낸 적 있다. 그때 이미 한국 남성들은 주 1회 이상 화장품을 사용하는 비율에서 2위 그룹인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를 2배 이상 앞서고 있었다. “독일은 맥주를 음료로 마실 만큼 물이 워낙 좋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래바람으로 피부가 잘 상해서라지만, 금수강산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왜 이렇게 화장품을 많이 쓸까?”라는 질문을 농담 삼아 던졌었다.
이런 경향은 계속 확대됐다. 2016년 유로모니터라는 조사회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화장품 소비 금액은 2위인 덴마크의 4배 이상이었다. 올해 오픈서베이의 ‘남성 그루밍 트렌드 리포트 2020’ 보고서에서는 한국 남성이 1인당 사용하는 화장품 개수가 8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 같은 남성 화장품 사용의 가파른 증가세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화장품 사용에 부는 바람이 있다. 화장품 사용 단계와 그에 따른 개수를 줄이는 ‘화장품 다이어트’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파데 프리’란 용어가 2017년부터 언급되기 시작했다.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는 것인데, 피부 건강을 지키며 자기다움을 찾는 신념적인 의미가 담겼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꾸안꾸’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결점을 일시적·표피적으로 가리는 것에서 나아가 피부의 건강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며, 속부터 건강한 피부를 가꾸려고 노력한다. ‘좋은 피부를 만드는 방법’으로 ‘이너 뷰티(inner beauty)’가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좋은 피부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자주 언급된다. ‘좋은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과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챙겨 먹는 것’이다. 좋은 생활습관이란 무엇인가? 물 많이 마시고, 잠 잘 자고,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다.
1990년에 큰 화제가 되며 유행어를 탄생시킨 화장품 광고가 있다. 이 광고는 ‘잠이 길을 막았지만, 미인이기에 용서된다’는 멘트와 함께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카피를 보여준다. 이때 잠으로 대표되는 행위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는 아름다움을 위해 상궤(常軌)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래서 아름다워지면 결과로서 용인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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