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병영칼럼] 야구, 또 하나의 문화

입력 2020. 11. 30   16:35
업데이트 2020. 11. 3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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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새로운 승자가 탄생했다. 창단 9년 만에 NC 다이노스가 KBO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줬다. 결승전에서 만난 전통의 야구 강호 두산베어스 팬들은 진한 아쉬움이 남았겠지만, 새로운 승자의 탄생을 보는 일은 모든 야구팬에게 즐거운 일이다. 여기에 우승 세리머니도 큰 화제가 됐다. NC 구단의 모기업이 유명한 게임회사이다 보니 회사의 대표적 게임인 ‘리니지’의 상징인 ‘집행검’을 번쩍 들어 올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스포츠 세계에서 그 누구도 우승을 장담할 수 없지만 강렬한 희망과 의지를 품고(그러고 보니 주장 선수의 이름이 ‘의지’다), 미리 검을 만들어놓았구나 싶어 괜히 멋져 보이기도 했다.

여전히 야구를 잘 모른다. 스트라이크와 볼이 종종 헷갈린다. 게다가 내 고향팀은 언제 이겨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나는 야구와 함께 성장해 왔다. 지금의 중년 세대가 초중생 때인 1982년에 프로야구가 창단됐다. 프로스포츠 창단 과정에서 여러 논란도 많았다. 시민들의 사회적 비판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기 위한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 야구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스포츠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 프로야구팀마다 어린이회원을 모집해 가입비를 내면 소속팀 로고가 선명한 야구점퍼와 모자, 비록 프린트이긴 하지만 선수들의 사인볼 등을 선물로 주었다. 나의 친오빠도 당시 ‘OB 베어스’의 어린이 회원이었는데 연고는 분명 충청도 ‘빙그레’였건만 친구 따라 강남, 아니 서울팀으로 갔다. 첫사랑의 기억은 오래가는지 오빠는 아직도 두산 베어스의 팬이다.

그와 달리 나는 특별히 선호하는 팀은 없지만 야구장 가는 것은 늘 즐겁다. 어릴 때는 잠실 구장에 오빠 손을 잡고 따라가곤 했다. 입장료와 차비 말고는 남는 돈이 없어서 간식을 사 먹을 돈이 없었다. 당시엔 객석을 오가며 음식을 파는 행상이 있었는데 김밥이나 꽈배기 같은 것들에 마음이 빼앗겨 야구 경기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에 갔을 때는 그 한을 풀어보겠다는 심산으로 아예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잔뜩 싸가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야구만큼 가성비 좋은 나들이도 없다. 축구나 배구는 경기 시간이 짧지만 야구는 입장료 한 번 내고 길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야구에는 관심 없어도 응원 구경을 하면서 치킨에 맥주까지 즐기며 소리를 지르는 재미가 있다. 휴가 나온 군인들도 야구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야구장에 어울리는 음식은 단연코 ‘치맥’이다. 야구 경기장 운영은 펜스 광고와 매점운영권 판매다. 그래서 야구장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점들이 입점해 있고 산처럼 시원한 맥주를 쌓아 놓고 판다. 대체로 평일 저녁 즈음에 경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저녁 식사 겸 치맥을 즐기고 아이들은 치킨과 콜라를 먹으며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존’도 있고, 판매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보는 재미에 먹는 재미, 그리고 응원하는 재미까지 3요소가 갖춰진 스포츠가 야구다. 그래서 ‘그깟 공놀이’가 대중적인 여가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소소한 행복도 누릴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도 있었고 관람객 입장 제한에 함성을 지를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먹는 재미’가 없는 야구장은 정말 재미가 없다. 부디 내년에는 야구장에서 치킨을 먹으며 응원가를 목청껏 부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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